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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보다는 ‘살아남았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죠”지역 화폐 ‘두루’ 이용하는 대전 지역 다자간 품앗이, 한밭레츠
성진우 기자 | 승인 2015.11.16 16:16|(1106호)

 

  ‘맥가이버 할아버지’라 불리는 이규석 할아버지는 직접 비누를 만들어 한밭렛츠를 통해 ‘두루’를 벌어들인다. 비누의 가격은 2000원. 재료인 잿물 값 현금 1500원과 500두루로 나눠 받는다. 이렇게 번 두루로 할아버지는 ‘민들레 의료원’에서 정기 검진을 받는다. 또 할머니에게 한약도 지어준다. 한약 값인 27만원 중 반은 두루로 계산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 내용 참조)
  이는 대전 지역 화폐인 ‘두루’를 통한 지역 품앗이 운동 ‘한밭레츠’의 실제 거래 내용이다. 지역 공동체 정신도 되살리면서 가계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한밭레츠와 미래 지역 화폐의 방향에 대해 알아본다.

   
▲ 지난 9월 자투리 시장 풍경. 출저 한밭레츠 홈페이지
   
▲ 작년 11월, 민들레 의료원 건강검진센터 확장 이전 기념식
출저 민들레 의료생협 홈페이지

  두루두루 나누자, 지역 품앗이 한밭레츠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란 특정 지역에서 통용되는 재정과 서비스를 교환하는 통화 체계를 이용해 이웃 간 필요한 물품과 노동을 제공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지역 공동체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레츠는 시장경제가 불안할수록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나라에도 수원의 ‘수원시민화폐’, 서울 은평구의 ‘은평e품앗이’ 등의 지역 품앗이 거래가 생겨났다. 그러나 현재는 대전의 ‘한밭레츠’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레츠가 실패로 끝났다.
  한밭레츠의 시작은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사회는 IMF 경제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대전의 시민운동가 박용남 씨와 지인들은 자본에 종속돼 있는 삶 속에서 대안적인 삶을 찾고자하는 취지로 한밭레츠를 창립했다. 99년 10월부터 회원을 모집해 2000년 2월 약 70여명의 회원들로 창립총회를 열었다. 그리고 약 16년이 지난 현재 한밭레츠에는 총 660여 가구가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또한 총 거래액은 4억원, 거래 건수는 1만 6000여 건에 달한다.
  한밭레츠의 거래 화폐는 ‘두루’다. ‘두루두루 널리 쓰인다’는 뜻에서 두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밭레츠 회원이 되면 회원 간 거래하는 물품이나 노동은 두루로 거래된다. 그러나 거래방식이 반드시 두루로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한밭레츠 김찬옥 두루지기(두루 거래를 관리하는 실무자)는 “거래는 두루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100% 두루만 사용하는 건 아니다. 두루는 최소 30% 이상만 사용하면 된다. 현금과도 같이 사용이 가능하다”며 “보통 원자재 비율만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이익은 두루로 받는다. 그러나 농산물은 원자재 비율이 높아 20%로 예외를 뒀다. 여기서 일하는 실무자들의 급여에도 두루가 일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가입한 회원들은 ‘두루통장’을 지급받는다. 두루는 실제 통용되는 화폐라기보다 ‘가치의 확인 수단’으로서의 의미다. 때문에 1두루는 1원의 가치지만 현금으로 두루를 사거나, 두루를 현금으로 환전할 수 없다. 회원이 ‘얼마나 남에게 베풀었는지, 도움을 받았는지’를 나타내는 증표인 셈이다. 회원들은 한밭레츠 등록소에 직접 오거나, 홈페이지의 ‘거래하고 싶어요’란을 통해 회원 간 자유롭게 거래한다. 품목은 농산물, 장난감, 반찬, 전자제품까지 다양하다. 또한 ‘악기 레슨’, ‘영어 수업’ 등과 같은 노동도 거래 품목이 된다.
  거래 내역은 통장에 (+), (-)로 표현돼 찍힌다. 두루의 가장 큰 장점은 (-) 계좌가 가능하다는 것과 여기에 이자가 붙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래서 거래 자체가 거래의 목적이 되는 일이 드물다.
  김찬옥 두루지기는 “거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면대면의 관계’다. 등록소는 거래 중개 역할도 하지만 회원 간 면대면 기회를 늘리는 일도 한다. 품앗이 만찬, 품앗이 학교 등 회원들이 서로를 따뜻한 이웃으로 느낄 여러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관계가 선행돼야 비로소 거래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지역 사회와의 연계로 품앗이 활용도, 접근성 높여
  한밭레츠의 성공요인을 요약하면 철저한 준비 단계와 지역 사회와의 연계성을 꼽을 수 있다. 가톨릭대 천경희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한밭레츠는 지역 주민들이 지역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자 만들어졌고, 준비 기간도 2년이나 된다”며 “지역 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한 거래 시스템, 지역 경제와의 연계성 부분에서 다자간 품앗이 기능을 강화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한밭레츠 회원들은 두루를 통해 현대적 방식의 다자간 품앗이에서 이웃 간 관계 회복과 정을 느낀다. 김찬옥 두루지기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품앗이 활동을 자신이 필요한 물품과 노동을 제공받고, 자신도 제공하는 관계라고 협소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활동을 계속할수록 자신의 새로운 가치를 찾게 된다”며 “현재 한밭레츠에는 아주머니들이 굉장히 많다. 품앗이 활동으로 다른 세상을 엿볼 수 있어 육아, 집안일에 매달려 있던 여성들에게 사회진출의 징검다리가 된다. 이것이 두루를 통한 다자간 품앗이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또한 병원, 약국, 카페를 비롯해 지역 농가와도 연계해 두루를 사용할 수 있다. 법동에 위치한 ‘민들레 의료원’은 한밭레츠 회원들 주도로 만들어진 의료생활협동조합이다. 초기 회원들 중 의사 몇 명이 사회에서 받은 혜택을 환원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이곳에서 두루를 받아주면서 한밭레츠의 두루 거래가 많이 늘어났다. 또 주위 개인 약국도 동참했다. 약국을 운영 중인 오민우(42·법동) 씨는 “한밭레츠 회원들이 오시면 약을 처방할 때 보험을 제외한 본인 부담금 중 3000두루까지 받는다. 보통 감기약이 3000원 정도하니까 현금 없이도 약 조제가 가능한 경우도 있다. 수익보다는 지역 이웃과의 관계를 생각해 가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농업에 종사하는 회원들에게도 다자간 품앗이 네트워크는 큰 도움이 된다. 또 회원들은 두루를 통해 질 좋은 농산물을 더 싸게 구입할 수 있다. 회원 간 두루 거래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지인 소개로 가입했다는 회원 김수산나(37·충남 금산) 씨는 “현재 양봉, 표고버섯 등의 농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엔 판로가 없어 매우 힘들었다”며 “한밭레츠에 가입하니 홍보도 되고, 판매한 두루로 약국, 병원도 이용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쌓을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두루를 사용하는 품앗이 네트워크는 기존의 현금거래보다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본이 적은 상인들은 아예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밭레츠는 지역 품앗이 거래에 지역 농산물의 판로를 저렴하게 제공해준다.
  김찬옥 두루지기는 “시장에 진입하려면 물량도 있어야 되고, 단가도 맞춰야 된다. 그런데 이는 자본이 적은 소상공인이나 소농인들에겐 리스크가 크고 힘든 일”이라며 “회원들은 일손 돕기를 통해 직접 농가를 방문하고 그 대가로 두루를 받기도 한다. 이는 다자간 지역 품앗이가 갖는 분명한 장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또한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아트 프리마켓 형식으로 열리는 ‘자투리 시장’이나 원도심을 거점으로 하는 ‘원도심 레츠’ 등 많은 품앗이 활동이 두루를 통해 지역 사회에 연계돼 지속 중이다.

  지역 화폐에 대한 우려의 시선
  그러나 우려되는 점도 존재한다. 두루라는 가상 화폐가 거래 수단으로 작용하며 생기는 부작용 때문이다.
계속 (-) 상태만 유지하는 유령통장은 어떻게 할 것인지, 두루를 사용하면 할수록 실제 원화 화폐의 재산 가치는 점차 감소하는 것 아닌 지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두루는 한밭레츠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므로 두루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원화 가치가 있는 물품, 노동을 많이 팔았다는 뜻이다. 즉, 한밭레츠에서 거래를 하면 할수록 현금 거래가 가능한 실질적인 재산은 줄어든다는 의미다. 또한 판매자가 두루를 많이 쌓아두었는데 공급이 이에 상응하지 못해 두루 소진이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런 이유들에서 지역 화폐가 기존 화폐 체계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시선도 있다.
  이에 김 두루지기는 “두루를 이용한 지역 품앗이는 지역, 사람에 있어 분명한 한계가 있어 두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지 못한다. 또한 모든 거래는 상호 동의 원칙이 전제되며, 등록소의 승인이 있어야 두루가 넘어가고 거래가 완료된다. 만약 탈퇴하더라도 반드시 두루통장 잔고는 0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실제로 판매자에 비중을 두어 상대적으로 두루가 많은 회원들은 두루를 대부분 의료에 소진한다. 두루를 소진할 곳은 충분하다”라고 설명했다.
  김 두루지기는 “거래 내역은 전체 회원에게 공개해 조금의 계산 착오도 없게 한다. 애초에 수익을 목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아니니 기존 화폐 체제의 방법으로 부당하게 이득을 취할 수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레츠의 전국적 활성화 방안은?
  지역 품앗이 레츠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되기 위해선 한밭레츠의 성공요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가톨릭대 천경희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한밭레츠는 두루를 이용한 지역 품앗이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 지를 지역 사회에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지속해 왔다. 또 지역 사회에 맞춰 변화해 왔다”며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적절한 홍보가 지역 품앗이를 활성화시키는 주요한 방법이다. 결국 사람이 모여야 운용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천 교수는 “레츠는 복지, 사회경제적, 심리적 측면에서 다양한 활용이 가능함에도 현재까지는 복지 측면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 레츠는 화폐 시스템을 통해 시민들이 필요한 물품과 노동을 제공받는 현대판 품앗이 제도다. 현재 기존 화폐 체제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점들을 지역 품앗이가 해결할 여지가 많다고 생각한다. 지역 주민들이 체감하기 쉽게 다가가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진우 기자  politpeter@cnu.ac.kr

성진우 기자  politpeter@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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