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잔혹, 비극으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하는 블랙코미디

 

   작품을 보고 한바탕 웃고 나서 씁쓸함을 느낀 적이 있다면? 블랙코미디는 죽음, 슬픔, 잔혹이라는 불행한 소재들을 보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는 우리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지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심오한 장르다. 그런 블랙코미디가 지금 우리 20대의 현실과 만난다면 어떤 모습을 그려낼까. 우리가 마주한 현실보다 더 사실적이고 생동감있게 다가온 블랙코미디 속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블랙코미디, 그 심오한 세계
  블랙코미디란 죽음, 폭력 등의 웃음이 나지 않는 잔혹하고 비극적인 소재로 웃음을 유발하는 하나의 장르다. 주로 사회 문제나 무거운 주제를 희화화해 풍자하는 경우가 많다. 보기에 불편하고 어렵고 머리 아픈 주제를 우리에게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게 만들어줌으로써, 우리가 다가가기 불편한 모습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장르다. 주로 블랙코미디는 사회의 부조리함을 느끼게 하는 역설적인 유머를 사용한다. 풍자와 희화화, 패러디 등을 통한 웃음은 밝고 쾌활하기보다는 씁쓸한 웃음을 통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블랙코미디라는 용어는 1940년 프랑스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이 『블랙 유머 선집』이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블랙 유머, 블랙 코미디라는 말을 쓴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살인광 시대』,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등이 대표적인 블랙코미디 작품으로 꼽힌다.

 

  씁쓸한 웃음 속 우리를 보다
  # 영화 베테랑(2015)
  2015년에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블랙코미디 액션 영화다. 안하무인의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와 베테랑 형사 서도철(황정민)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 형사 서도철이 중고차 사기단을 잡으며 싸우는 부분에서 ‘나 어떡해’라는 다소 코믹한 배경음악을 삽입한 장면, 거리한복판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긴박한 상황에서 말리기보다 태연하게 가게 앞을 치우고 가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등을 통해 류승완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적인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는 고용주에게 굴복해야하는 장면, 고위 공무원이 자녀의 일자리를 청탁하는 장면을 통해 아르바이트 갑질 문제, 취업 비리 문제 등 최근 들어 사회의 ‘을’로 전락해가고 있는 20대의 아픔을 통렬하게 전달했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사회 문제인 갑질 문화를 비판하고, 조태오의 범죄 행동들이 묵인되는 모습을 통해 범죄에 무감각한 사람들을 향한 메시지를 유쾌하고도 시원하게 풀어내 많은 호평을 받고 천만이 넘는 흥행을 했다. 실제 CGV 조사에 따르면, 베테랑은 개봉 이후 2030 관객 비율이 38.9%로 다른 세대의 관객보다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코미디와 액션을 결합해 효과적으로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이를 유쾌하게 풀어냈다. 사회에서 ‘을’이 되어간다고 느낄 때 보기 좋은 영화이다.

  # 드라마 초인시대(2014)
  초인시대는 공대 복학생 남자와 그의 친구들이 25세 생일이 지나 초능력이 생기고 이를 이용해 취업과 사랑을 쟁취하려는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성장 드라마다. 주인공의 스펙으로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어렵다며 눈높이를 낮추기만을 강요하는 취업상담센터 직원과의 대화 장면이나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인문학 박사인 사람들이 황당하게도 공사장에서 논문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 장면 등은 웃음이 나지 않는 씁쓸하고 외로운 상황에서 우리의 웃음을 유도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아프면 병원가야지’라고 말하는 대사, 공대생을 ‘버그잡을 때 빼고는 필요없다’고 말하는 모습 등을 보면 현대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심각하고 진지한 대사로 풀어내지 않고 코믹하면서도 현실적인 관점으로 표현해 서글픈 우리 세대의 문제를 풍자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생인 주인공이 겪는 상황들에는 현재 20대들이 겪는 인간관계 문제, 취업난, 학점 등의 문제들이 그대로 녹아있어 많은 20대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비록 후반부에는 내용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코미디적인 요소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을 받았으나, 한국 블랙코미디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연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5)
  취업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5포 세대를 대변하는 주인공 수남(이정현)은 자격증을 14개나 딴 일명 고스펙의 인물이지만, 기계에게 자신의 일자리를 내어준다. 취업에 실패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노력해도 수남은 연이은 고난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재개발이라는 부동산 문제로 인해 이웃끼리 다툼이 생기고, 수남은 연쇄살인마가 된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능력을 갖춰도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한 수남의 아이러니한 현실과 수남의 살인 방법이 식당 일, 신문 배달 같이 평소에 했던 아르바이트에서 배운 것이라는 점 등은 영화를 보다 저절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수남의 실패는 높은 스펙임에도 취직을 하지 못하고 불명확한 미래를 걱정해야 되는 20대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초인시대가 5포세대의 현실을 패러디 등을 통해 유쾌하게 풀어냈다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5포 세대의 아픔을 냉소적으로 풀어내 같은 5포세대를 다룬 영화라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감각적인 연출을 통해 블랙코미디 장르의 특징과 기승전결을 잘 살려 2015 JIFF(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받기도 하였다.

  위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블랙코미디는 신랄하게 현실을 풍자하면서도 관객들의 씁쓸한 웃음을 유도한다. 박호선 영화 평론가는 “블랙코미디의 웃음은 가슴을 아리게 하면서 아프게 나는 웃음이다. 바로 그렇게 가볍지 않고 내면으로 들어가는 웃음이 블랙코미디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평론가는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블랙코미디는 우리에게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우회적이고 좀 더 세련되었으며, 고차원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따라서 다른 장르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르 중 하나다”라고 평가했다.

  블랙 코미디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리고 현실은 점점 블랙코미디화 되어간다.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며 잔혹한 현실 앞에서 사람들은 애써 웃는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라는 노래 가사처럼. 우리는 언제까지 우리를 희극을 빙자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사회 앞에서 씁쓸한 웃음을 지어야 할까.


김채윤 기자 yuyu730@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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