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악 논란 빚는 선거제도 개혁

 

대전 진보혁신회의 대전모임이 우리 학교 정문에서 선거제도 개혁 선전전을 펼치고 있다.

  “학생, 시민 여러분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합니다!” 지난 9월 30일, 우리 학교 정문에서 진보혁신회의 대전모임의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선전전이 진행됐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간 인구편차 2:1 조정 결정을 계기로 바야흐로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가 다가왔다.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은 이해관계 충돌로 아직까지 성과 없이 표류하고 있다.

  지역 대표성 잃는 농어촌
  지난 9월 19일,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의 예비 획정 기준이 발표됐다. 예비 획정 기준의 주요 내용은 지역구 의석수 244석~249석 범위 내 조정이다. 위 내용이 발표된 후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과 시민단체 사이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먼저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으로 나뉜다. 현재 우리나라 19대 국회 총 의석수는 300석이며 이 중 246석이 지역구 의석, 54석이 비례대표 의석이다. 국회의원 정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세종특별시 1석 추가를 제외하고 고정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3:1이었던 인구편차를 2:1로 조정하는 결정에 따라 지역구 의석수를 244석~249석으로 조정해야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지역구 의석수 재편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인구수가 적은 농어촌 지역의 경우 4개 군이 하나의 지역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9월 23일 KBS와의 인터뷰에서 농어촌-지방주권 지키기 의원모임 소속 새누리당 장윤석 의원은 “도시의 경우에는 30분도 안 되는 거리가 한 지역구인 반면 강원도, 전라북도의 경우 한쪽 끝에서 한쪽 끝까지 2~3시간 이상 걸리는 면적이 한 지역구다”라고 말했다. 인구수를 기준으로 지역구가 재편되면 넓은 면적을 1명의 국회의원이 대표해야 해 농어촌 대표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농어촌 지역구 의원과 새누리당은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여서라도 지역구 의석수를 늘리자는 입장이다.

  표의 등가성 위한 비례대표제
  시민단체 역시 예비 획정 기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다. 지난 6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등 전국 174개 시민단체는 ‘2015 시민사회단체 정치개혁안’을 발표하며 비례대표 의석수 확대를 주장해왔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비례대표제 확대와 같은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비 획정안은 현재 선거 틀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시민단체에서 비례대표 의석 확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표의 등가성 문제다. 현행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단순다수 소선거구제다. 가장 많은 표를 받은 1명이 당선하는 방식이니 당선자를 제외한 나머지 표는 모두 사표가 된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전체 투표수 가운데 47.6%의 표가 사표가 됐다.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42.8%의 전국 득표율로 50.7%의 전국의석을, 영남 지역에서는 54.7%의 지역득표율로 94%의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통합당은 36.5%의 전국득표율로 42.4% 전국의석을, 호남지역에서는 53.1%의 지역 득표율로 83.3%의 의석을 차지했다. 이는 표의 등가성 원칙이 어긋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비례대표제는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당별로 득표한 비율에 맞춰 의석을 배분한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지역구에서 버려지는 표를 비례대표에서 보완해줄 수 있어 비례대표가 늘면 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의석 배분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석수가 지역구 의석수보다 적다보니 사표발생 및 득표율-의석점유율 불일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진보결집더하기 김윤기 대표는 “득표율과 의석점유율을 일치시키는 제도를 정치개혁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지역구 의석수는 늘어나고 비례대표 의석수는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형국이다. 김 대표는 “의원정수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지역구 의석수가 늘어날수록 비례대표 의석수는 준다”며 “지역구 선거는 인물위주로 가는 양상이 크다.  소외계층을 대변할 의원이 나올 확률이 낮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고 지역구 의원수를 늘려 지역 대표성을 지켜야한다는 입장과 표의 등가성 원칙과 소외계층 대변을 위해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한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진보결집더하기 김윤기 대표는 “지역 대표성은 결국 현 체제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에 주장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대전의 경우 서구를 갑과 을로 나눠 국회의원을 뽑는다. 그러나 주민들이 서구 갑 지역과 서구 을 지역으로 따로 인지하고 살지는 않는다”며 “중대선거구 등으로 확대해 대전 전체에서 1등~6등까지 당선시켜도 지역 대표성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구 의원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지역 대표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 역시 “농촌과 어촌 지역에 사는 국회의원이 실제 농어민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비례대표 수를 대폭 늘려서 17대 강기갑 국회의원 같은 실제 농민대표를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의원정수 확대
  온도차 큰 국민 여론

  그러나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여론은 부정적이다. 먼저 비례대표제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낮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비례대표 의원이 지역구 의원보다 인식이 낮고 불신이 높다”며 “공천현금 등의 부정적인 일이 있었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비례대표 의원들이 뭐 하는지 모르겠다는 시선도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나 비례대표 후보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이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져왔다. 독일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면 부정적인 인식은 타파 가능하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선거인이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고 선택한 정당의 명부 내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대전시민자치참여연대 문창기 사무처장은 “정당 내에서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한다면 국민적 신뢰가 회복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제도 개혁 논란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해결책은 의원정수 확대다. 현재 우리나라는 87년도 이후 의원정수의 확대가 없다. 1948년 제헌국회 당시 국회의원 200명, 인구 2천만 명으로 국민 10만 명당 1명의 대표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수가 5천만 명임에도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에 불과해 의원 1인당 대표하는 인구수가 16만 8천명에 달한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문창기 사무처장은 “간접 민주주의에서 의원 1인당 대표하는 수가 는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사회는 의원정수를 최소 360명까지 늘릴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의원정수 확대를 둘러싼 국민들의 여론은 좋지 않다. 전국 남녀대학생 10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클린정치운동본부, 9월 14일~17일)에서 국회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줄여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77.8%로 가장 높았다. 정치권 역시 국민들의 여론 때문에 의원정수를 늘리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이러한 국민들의 인식은 극심한 정치 불신에서 기인한다는 게 시민사회의 해석이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국회나 정치를 통해 개인의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의원정수를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들 의 눈에 제대로 일도 안 하면서 의원 수만 늘리는 것으로 비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개별의 국회의원에 대한 평가와 국회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나타난다. 이 간사는 “무능한 국회의원을 떠올리기 전 국회의 역할이 민의를 대표하는 것임을 이해한다면 국민들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보결집더하기 김윤기 대표는 “국회 예산 동결이나 국회의원 특권을 줄여 국민적 이해를 구해 의원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하며 “국회의원 본인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그 문제를 근거로 국회의원 수를 늘려서는 안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올해 초부터 시작된 선거제도 개혁은 아직까지도 진통을 겪고 있다. 결국 국회의원들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이선미 간사는 “밥그릇 싸움이기 전에 유권자 표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의 표와 내 표가 최대한 같은 가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라며 이번 선거제도 개혁의 의의를 설명했다. 민주국가에서 선거제도 개혁은 결국 정치 전반의 개혁을 의미할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선거제도 개혁이 실현되길 기대한다.

글 /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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