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에 드리운 영어의 그림자

 

 

 

  ‘카이0스’, ‘찰스0롭’, ‘이지0’ 등 궁동에는 영어상호를 가진 음식점과 간판이 많이 있다. 조사 결과 418개의 음식점 상호 중, 41.14%가 영어를 포함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치킨과 같이 영어가 포함된 음식 이름을 상호에서 제외한 결과다. 궁동의 음식점뿐만 아니라 타 분야의 가게들 실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학교 학우와 궁동의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외국인에게 더 친숙할 궁동의 거리
  인근 학교 홍민영(20) 학우는 “평소 영어간판들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다. 할머니와 아이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생각하니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궁동에 거주하는 김 씨(58)는 영어 간판으로 피해를 받는 당사자로서 적극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나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갑갑할 수밖에 없다. 작게라도 한글이름이 있으면 좋겠다. 간판이 영어로 돼 있다 보니, 눈에 익지 않아 길을 찾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있다. 우리 학교 A학우는 “평소에 인식은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라기보다는 세계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신입생 시절, 그리고 지금도 가끔 가게를 바로 찾을 수 없어 불편하다. 그래도 바꾸기보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둘러싼, 우리를 에운 언어
  생활 속에서 우리는 자주 외국어, 외래어들과 마주친다. 우리 학교 언어학과 류병래 교수는 “대부분 방송 매체를 통한 유행어에서 비롯된 말들인데, 이러한 외국어의 혼용으로 인한 국어의 오염은 매우 심각한 정도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게다가 요즘 유행하는 'This is competition’, ‘힘을 내요. 슈퍼파월’ 등은 올바른 언어사용이 아니며 외래어도 아니다.
  물론 외국어, 외래어 사용이 전부 잘못됐고, 한국어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어로 충분히 의미 전달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외국어로 대체된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선진적이고 세련됨을 느낀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가령 수업시간에도 ‘프레젠테이션’, ‘테스트’, ‘프린트물’, ‘멘토’, ‘멘티’… 등을 쓰는 것에 어떤 어색함도 없다. 더욱이 이런 단어의 사용은 수업이 마치 앞서가는 교육인 것처럼 포장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모범이 되고 한글을 선도해야 할 방송과 뉴스는 ‘뉴스투데이’, ‘뉴스데스크’, ‘뉴스와이드’, ‘뉴스뱅크’, ‘뉴스n이슈’ 등과 같이 명칭 자체를 영어로 쓰기도 한다.
  류 교수는 ”2014년 4월 통일부가 최근 10년 동안 입국한 탈북자 32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한국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외래어로 인한 의사소통 문제(41.4%, 115명)’가 꼽혔다. 우리말의 오염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조사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7080, 감성 포크에서 현대 k-pop
  영화 <쎄시봉>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우리나라 1970-80년대 음악계를 장악했던 포크 음악은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한글가사로 우리에게 감동을 전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주변의 음악들 특히 k-pop이라 일컫는 댄스 음악들의 가사에는 영어가 여과 없이 난무하고 있다.
  류 교수는 “대중가요에 쓰인 외국어 사용실태 분석 보고서를 보면, ‘SG워너비’, ‘슈퍼주니어’, ‘플라이 투 더 스카이’, ‘씨야’ 등 외국어의 가수 이름 비율은 65% 정도로 압도적인 비율이었다. 가사에 쓰인 한국어와 외국어 단어의 비율은 대략 32%로 거의 반에 가까운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는 실정”이라고 언급했다.
  빅뱅의 ‘bea bea’, 'bang bang bang', 레드벨벳의 ‘Dumb Dumb’ 등의 곡들이 그 예다. 이 곡들은 그룹명부터 제목, 후렴구 부분까지 영어로 구성됐다. 또 ‘Show me the money’와 같은 랩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힙합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아지는 가운데 힙합 가사의 외국어, 외래어 남용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물론 힙합의 유래가 먼 미국의 뉴욕이라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정착하고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우리만의 특색과 한국 힙합의 고유성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리 곁의 낯선 간판
  집을 나서 걷다보면, 여러 가게들을 보게 된다. 편의점부터 옷가게, 빵집 간판까지 낯선 나라의 말이다. 대형 마트의 임대매장, 백화점 같은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알록달록한 상가의 간판들은 우리의 시선을 즐기며 우리에게 의문을 남긴다. 그들의 이름은 왜 영어로 돼 있을까. 영어의 간판이 우리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일까.
  토탈 브랜딩 에이전시 <브랜드>메이저의 2012년 조사 자료에 따르면, 92%가 한글 브랜드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고 응답해 고운 우리말 브랜드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외국어, 외래어 상표가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말 브랜드에 대한 요구가 크다는 것을 증명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글 브랜드는 ‘딤채(10.3%), 풀무원(8.3%), 푸르지오(8%)’이었으며 업종별로는 ‘참이슬’, ‘댕기머리’, ‘눈높이’, ‘다음’ 등이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다양한 산업분야에서의 한글 브랜드 개발이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다. 한글 브랜드는 한글이 가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하여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창출한다. 정지원 브랜드메이저 대표는 “국내 기업 브랜드의 80~90%가 영어인 현 상황에서, 한글날이면 우리말과 글을 오염시키는 주범으로 브랜드가 지목되곤 한다”며 “범람하는 영어 브랜드 사이에서 순수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한글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독특한 매력으로 소구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왜 한글을 사랑하지 않는가
  이처럼 외국어의 범람으로 모국어가 위협받고 있는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류 교수는 외국어 오용과 남용의 원인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사용자의 옳지 못한 언어사용 습관이다. 세계화의 흐름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사용자는 외국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마치 세계 시민이 된 것처럼 착각한다. 둘째는, 자극적인 효과를 노린 의도적인 사용이다. 광고 언어나 상표, 대중가요의 가사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국어 사용이 그렇다. 류 교수는 “대중가요를 많이 접하는 청소년들은 언어사용에서 의미도 모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현실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요인으로는 당국의 확고한 국어정책의 결여가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원인으로부터 해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류 교수는 “사용자의 옳지 못한 습관적 언어사용과 자극적인 효과를 노린 의도적인 언어사용은 여러 방면에서 동시에 이루어져야 바로잡을 수 있다”며 “학교에서는 교육을 통하여, 사회에서는 계도를 통하여, 법적으로는 일정한 제재를 가하는 등의 방법으로 바른 언어습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자국의 언어를 제도적으로 보호하며 국민의 언어 자긍심 또한 높기로 유명하다. 프랑스어의 지위는 헌법과 법률을 통해 제도적으로 보장되며, 교육부는 정교하고도 치밀하게 개발된 교육 과정을 통해 국민들의 자국어 능력 배양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점을 안겨 준다.
  류 교수는 “교육과 문화를 담당하는 당국의 국어 정책적 확고함이 필요하다”며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우리말의 옹호와 선양을 위해서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글 / 박윤희 기자 uni65@cnu.ac.kr
사진 / 유지수 기자 jsrrrrr02@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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