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면 너머의 이야기

 

 

  기사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이 여러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가 대전 시민들도 대전 수요집회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를 공감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첫 기사의 주제를 알리고 나서 주위 반응은 냉랭했다. 자신의 진심만 굳건하면 되지 굳이 집회에 직접 참석할 필요는 없다는 반응이었다.
  물론 매체를 통해 수요집회를 접하는 것과 직접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것이 ‘진심’에 있어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는 생각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그러나 직접 집회에 참여하고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위안부 할머니와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지면 너머에 정말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저 매체로만 위안부 문제를 접하는 것은 진심의 정도는 비슷할지 몰라도, ‘정성’의 정도는 분명히 다르다.
  인터뷰에 응해 주신 나눔의 집 ‘이옥선 할머니’께서는 15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곳을 위안소가 아니라 ‘도살장’이라고 부르는 게 옳다고 말씀하신다.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짐승과 다름없던 삶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할머니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또한 할머니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느끼는 안타까움과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눈, 빗속에서도 참 할머니들 고생 많았어.” 담담하지만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해방된 후, 국민들은 나라를 찾았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지금까지도 온전한 ‘나 자신’을 되찾기 위해 투쟁 중이시다.
  사실 이옥순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여러 사정 때문에 안타깝게도 본 기사에 실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라도 꼭 전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살면서 위안부에 대해 많은 것을 들어왔지만 이번 취재 중 위안부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가슴 먹먹한 경험으로 계속 남을 것 같다.  명필의 대기자가 쓴 위안부 기사 몇 편을 아무리 훑어본들, 과연 당시의 그 찡했던 감정을 다시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
  진심은 정성으로 표현될 때 비로소 빛이 날 수 있다. 대전 지역의 학생으로서 직접 대전 수요집회에 참여한 경험이 소파에 앉아서 본 위안부 다큐멘터리에서 느낀 감동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었다. 첫 기사의 경험을 살려, 지면 너머의 이야기가 최대한 전달되는 기사, 독자의 진심이 정성으로 발화될 수 있는 촉매와 같은 기사를 쓰도록 노력하겠다.


글 / 성진우 수습기자 politpeter@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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