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림은 어려운가? 어떻게 접근할까?

 
 
  

 

  사람들은 그림 속에서 어떤 의미나 상징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림 보는 법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그림의 의미를 해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미술가의 작품을 보더라도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또한 탁월한 드로잉,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들이 괴상한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한다.  그림의 이해하는 방법, 괴상한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알아보자.

 

  좋은 감상이란, 좋은 그림이란?
  몇 백만 원, 몇 억 원을 호가하는 그림이 있다.  당신이 소비자라면 이 그림을 사겠는가?  이런 그림은 흔히 명화라고 평가받는 그림일 확률이 높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나’ 의심을 품는다.  어떤 그림이 명화라고 할 수 있는가.
  언어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사이토 다카시의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은 아래와 같이 자신만의 타당성을 가지고 명화의 이유를 제시한다.
  1.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탁월한 표현력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 로코코 시대, 신고전주의, 사실주의에서는 대체적으로 사물의 사실성과 표현력을 중시했다.  표현력은 화가가 화공으로 불리던 시절, 기술적으로 뛰어난 그림이 좋은 그림이라고 평가됐기 때문에 당 시대에 화가들이 인정받기 쉬웠으며 클래식한 느낌을 준다.
그림을 보면, 여자의 드레스 가장자리에 둘러진 모피의 잔털에서 실제 그 느낌이 전해질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졌다.
  2. 누구도 흉내 내거나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유한 양식, 스타일 (르누아르, 물랭 드라 갈레트)
화가의 스타일은 화가가 그리고자 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교적 사회에서 남녀상열지사의 파격적인 그림을 그린 신윤복과 서민의 일상을 그린 김홍도를 예로 들면 알기 쉽다.  둘의 그림에는 그림을 보면 주인을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양식이 있다.  이처럼 그림체와 소재 등은 화가의 스타일을 만든다.
  행복한 화가라고 불리는 르누아르의 그림에는 인상주의 특유의 붓 터치도 있지만 다른 화가들과 구분되는 풍부한 색채, 생기 있는 활발한 이미지가 담겨있다.
  3. 시대에 곁눈질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고집하는 자기 세계(피카소, 우는 여인)
자기 세계란 당 시대의 유행처럼 번지는 화풍에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 시대를 앞서 보는 능력, 또는 자신에 대한 확고한 신념, 그것을 발전시켜 자신의 것을 만드는 고집을 뜻한다.
  피카소는 실험 정신이 강한 화가다.  원근법을 무시하는 것도 사물의 앞·뒷면을 함께 표현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4. 캔버스의 좁은 틀을 벗어난 독특한 아이디어(마그리트, 공동의 발명)
  아이디어는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과 상징·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구도와 색채를 말한다.  그림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곧 작가의 아이디어이다.  초현실주의 그림을 보다 보면 작가들의 참신한 발상과 질문을 마주할 수 있다.
  인간인가 물고기인가.  현대에는 이런 복합적 형태의 문제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정의를 내려야 할까?  본질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본다면, 그림은 수많은 남성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고기인 이성을 사랑할 것인가, 이성인 물고기를 사랑할 것인가.
  5. 수많은 그림들 속 가장 큰 경쟁력의 원천 몰입(몬드리안, 구성)
미술관을 둘러보고 나왔다고 가정해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은 무엇인가?  당신이 주의 깊게 본 그림은 무엇인가?  감상자에게 각인시키는 능력은 작가의 경쟁력과 같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온통 직선과 사각형 안의 빨강, 노랑, 파랑으로 밖에 구성되지 않은 그림. 기억되지 못하면 화두에도 오를 수 없다.  사이토 다카시는 무수히 많은 그림들 중에서 명화를 결정짓는 조건을 보여줬다.  그러면서도 그는 명화의 절대적 기준은 없다는 여지를 남겨둔다.  누군가의 틀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수긍한다면 그림에 대한 가치관이 될 것이고, 아니라면 그 이유가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될 수 있다.
  우리 학교 회화과 심웅택 교수는 “양질의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은 나뉠 수 있다.  하지만 예술과 비예술을 명확히 나누는 것은 어렵다.  애초에 명화라는 단어 자체는 자본주의 부르주아 계급의 산물이다.  물론 명화라고 일컬어지는 그림들이 양질의 그림인 것은 맞지만 훌륭하다는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부르주아와 투자자들이 과대포장한 명화의 기준 같은 것에 얽매여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가치관을 통한 아름다움, 감탄 찾기
  명화는 모든 작품의 지향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림에 공식 같은 것은 없다. 이번에는 그림에 담긴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그림에서 아름다움과 감탄을 찾는 것은 곧 그림을 감상하는 길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찾는 법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그림을 감상하는지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그것에 수긍하거나 반박하는 과정 속에서 나의 관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림은 철학과 같아서 같은 것을 보고도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감상과 평가를 내리곤 한다.  심 교수는 “미술과 인문학, 철학은 연관성이 깊다.  이런 관점에서 공부하는 것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만의 감상과 평가를 내리는 것, 자신의 가치관을 알아가는 것은 그림을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펠트만의 감상법은 보편적으로 널리 알려진 감상법이다.  서술(처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확인)-분석(작품 안에 보이는 시각적인 요소들(색, 질감, 형태 등)을 생각)-해석(작가의 의도, 작품의 배경 등을 확인)-판단(작품의 미술사적 의의나 가치를 판단)으로 구성됐다. 펠트먼의 방법에 따라, 그림6을 감상해봤다.
  잔혹, 비극이 느껴진다. 활량하다. 시간이 흐른다면, 마치 몇 초 뒤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 두 번째로 작품 안에 보이는 시각적인 요소들을 본다.  무기를 든 무장한 무리와 나체의 임산부와 여성들, 아이들이 눈에 띈다.  여인들은 울고, 낙담하며 체념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저항의 의지는 없어 보인다.  다음 작가의 의도, 배경을 확인한다.
  이 그림은 6.25 전쟁 때 피카소가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전쟁으로 학살되는 민간인의 참상을 드러낸 작품이다.  피카소에게 전쟁과 평화는 끊임없이 재생되는 작품 소재로 등장한다.  그림 안에서 폭행을 자행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지 않다.  이를 통해 피카소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잔혹함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마지막으로 판단 단계에서 작품의 의의와 가치를 판단한다.
  피카소는 “회화는 아파트를 장식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적과 대항하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전쟁의 도구”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는 작품‘게르니카’와 같이 전쟁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자 혁명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감상 마무리이다.
  펠트만의 감상법은 선 직관, 후 분석을 통해 감상자 스스로 그림에 대한 판단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림을 보고 나니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직관이다. ‘작가가 어떤 것을 보고 느꼈는지’가 순순한 직관적 감상의 전부다.
  심웅택 교수는 “작품에 대한 단계적이고 기계적인, 분석적인 접근은 진정한 감상을 방해한다.  그림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방법은 그림을 많이, 자주 보며 익숙해지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미술 감상하기
  현대미술은 놀랄 만큼 해괴하다.  좋은 그림인지 판단하는 것조차 감상자를 힘들게 할 수 있다.  심웅택 교수는 “어떤 감상법이나 그림의 이해를 돕는 서적은 그림의 양식이 붕괴되기 이전인 근대 이전, 고대 미술의 작품을 감상하기에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미술이 어려운 이유는 바로 ‘양식의 붕괴’ 때문이다.  이전의 그림들은 특정한 양식을 가지고 있어 그림들 간 비교가 쉽고 보편적 기준을 갖기 수월했지만, 현대미술은 그렇지 않다.  현대작가들은 보편적인 것도 독창적으로 표현한다.  틀에 갇히지 않고, 정착과 수치화를 거부하며 자신만의 길을 모색한다.  그들은 타인으로부터, 타인의 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친다.
  심 교수는 “화가의 의무는 새로운 존재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작품은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체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미술은 이미지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화가는 자신이 어떤 오브제를 통해 느낀 세계, 체험을 전달한다.  보편적인 것을 독창적으로 표현한다.  때문에 감상자는 작품이 익숙지 않고 불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깊이 없는 그림은 좋은 그림이 될 수 없다.  인문학과 철학은 미술의 청진기 같은 역할을 한다. 어느 정도의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술 감상에서는 직관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인문학, 철학과 함께 감상하는 것도 풍부한 감상을 도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 역시 미술을 전공 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술은 어렵다.  4년간 그림을 그렸고,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책과 인터넷을 통해 공부했다.  기자는 작가, 그리고 감상자로서 독자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당신의 체험과 느낌을 눈치 보지마라.  그림에서 진리를 탐색하지 마라.  애초에 그런건 없으니까.”


박윤희 수습기자 uni65@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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