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 철학의 교집합을 찾다

 

 

▲철학이란 답이 없는 학문이라며 학생들에게 질문을 유도하는 강한록 박사

   

 

 

충남대 정치외교학과 졸업(89학번)
現 옥스퍼드대학교 의료인문학 박사

  

   이제는 학문 간의 장벽을 허물고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융합’의 시대다. 지난 10일 김승영 박사의 <테마로 보는 철학산책>에서 옥스퍼드대학교 강한록 박사를 초청하여 ‘의학과 철학의 만남’이란 주제로 특강을 가졌다. 인문학 열풍이라지만 ‘현대 의학에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박사의 전공은 의료인문학이다. 이마저 처음 들어보는 낯선 학문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그를 둘러싼 세계의 중심에는 ‘공감’이 있었다. 반갑게도 그는 우리 학교 동문(정치외교·89)이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려 18년 만에 모교를 방문한 것이다. 

  이번 특강을 통해 말하려 했던 것은 무엇인가?
  “대개 의학이 한국에서는 과학, 특히 생명과학으로 정의가 내려진다. 우리나라 의료계에 가장 큰 문제는 의학이 지나치게 생명과학 쪽으로 해석되고 그에 따라 모든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실제 인간은 제외됐다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그리스의 의학자)의 ‘Life is short, Art is long’이라는 경구에서 원래 예술은 의학을 뜻한다. 왜 의학을 예술로 표현했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실제 많은 의료 행위의 상당수는 인간을 다루는 문제기 때문에 의학은 인문적인 주제가 된다. 생명은 과학적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런데 의학에는 가치적인 부분, 인문적인 사고가 빠져 있다.
  가령 대표적으로 서구에서는 의대를 나온 독일의 최고 엘리트들이 나치에 부역하면서 인간을 손쉽게 생체실험 대상으로 사용했다. 인간의 생명을 과학적 실험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다. 전후에 서구 학계는 의학이라는 문제를 인문적인 문제로 되짚어봐야 한다는 반성의 움직임을 보여왔다. 의학에서 왜 철학이 필요한지 이러한 차원에서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한 감회가 새로울 것 같다. 대학 시절을 회상해본다면?
  “1989년도에 입학했는데 그때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끝물이었다. 우리 학교는 전국 최다 제적인원으로 유명했다. 동맹파업을 심하게 벌였다. 4학년이 거의 다 졸업을 못하게 돼서 여름방학도 없었다. 1학년 2학기까지 정상적인 생활은 못 했다. 실제로 친구들 중에는 투신한 친구도 있고 감옥 간 친구도 있다. 그러다 군대를 갔다 왔는데 대학가가 완전히 바뀌었다. 사회적 이슈들은 다 잊어버렸고 이제는 취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저주의 89.’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은 세대에서 개인적 이익에 몰입해야 하는 세대로 가는 과도기였다.”
 
  그는 대학에 다닐 때 철학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한 주제는 ‘몸’에 관한 것이었다. 몸을 어떻게 해석하면 정치적으로 행위가 일어나는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영국 지도교수가 그에게 전공을 바꿔보라고 제안한다. 몸을 생물학적으로 보면 어떠냐는 것이다. 교수의 권유로 우연한 기회에 그는 전과를 선택한다.

  전공과목이 조금 낯설고 생소하다. 의료인문학은 어떤 학문인가?
  “의료인문학은 최근 서양의 학문 동향이다. 이제는 문과와 이과의 벽뿐만 아니라 전공의 벽도 허물어지고 있다. 의료인문학은 결국 의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이 서로 소통하는 장이다. 실제로 의료 행위는 가장 복합적 분야이다. 병원이 의사로만 이뤄졌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병원 하나에 가장 종합적인 사회가 들어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잊고 산다. 의료인문학은 병원, 의료라는 것이 결국 사회, 문화라고 말한다.
  개념적으로는 의료를 인문적이고 사회과학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의료인에게는 어떻게 의료단체나 병원이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학문이다. 동시에 일반인에게는 당신이 살고 있는 사회라든가 행위에 얼마나 많은 의료적인 부분이 개입되는지를 보여주는 학문이다. 가령 메르스(MERS)는 단순한 질병의 발병인데 엄청난 사회적 패닉을 불러왔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명박 대통령 때 광우병 파동을 많이 얘기한다. 모든 역사적 질병을 보면 처음에는 병의 문제였다. 그런데 대개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 공황상태에 휩싸인다. 이처럼 의료인문학은 상당히 우리 가까이에 와있다.” 
 
  인도주의 활동도 하며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전공과목과 인도주의는 어떤 관련이 있나?
  “인문학이 가진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감수성이다. 쉽게 말해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 지금까지 의료 행위 자체는 과학적이어야 하고 이성적인 것으로만 포장이 됐었다. 그런데 의료 행위를 인문적인 시선이라든가 사회과학적 시선으로 봤을 때는 인간의 가치문제를 어떻게 투영해야 할지가 중요해진다. 결국 의료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지향점은 인간적인 의료 행위에 있다. 그렇다 보니 의료인문학을 하는 시선이 자연스레 인도주의로 가는 것은 공감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 같다.”

  인도주의 하면 심오하고 어려운 느낌이 든다.
  “인도주의라는 게 별게 아니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아니면 제3세계, 빈곤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시리아 난민 문제가 전 세계로 이슈화됐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가 상당히 공개되다 보니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많아졌다. 지금은 전 세계가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 이제 남의 고통은 결국 나와 분리될 수 없는 문제이다. ”

  그는 우리의 인도주의 현상을 반성할 때라고 말한다. 한국 언론은 시리아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 유럽 사회의 미온적 난민 수용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과연 우리는 어떤가’하는 의문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난민인정률이 낮기로 유명하다. 강 박사는 “한국은 OECD 국가 중 ODA(공적개발원조) 분담금이 가장 낮은 축에 든다.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 이익과 맞닿아 있는 문제를 돕는다는 것이다. 인도주의 행위라면 동기가 순수해야 되는데 상당수의 ODA 행위들이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비판했다.

  인도주의와 관련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인도네시아 발리 옆에 동티모르라는 인구 120만 명의 조그만 나라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나라다. 때문에 포르투갈로부터 450년, 일본한테 3년, 인도네시아한테 24년을 지배받아왔다. 2002년 5월 공산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철권통치를 했던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하는데, 이를 도왔던 사람이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김 대통령은 미국을 설득하고 독립을 도우면서 평화유지군을 보내 수만 명의 학살을 막았다.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그들한테 최고의 나라다.
  동티모르는 나라도 작고 아직까지 미국과 호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보니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FRIEND FOR FRIEND’라는 단체를 만들어 교육지원을 하고 있다. 보통 한 아이들이 원화로 2~3만 원 정도만 있으면 노동을 안 하고 공부를 할 수 있다. 큰 액수가 아니니까 그런 아이들을 고등학교까지는 돕고 있다.
  한국어는 이 나라에서 꿈의 언어다. 한국어를 하면 한국에 노동자로 올 수 있고 자기 나라에서 잘 살 수 있다. 그런데 돈이 없어 한국어 센터에 못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국어교육 사업을 통해 가난한 아이들한테 기회를 주고 있다. 또한 물을 관리해주는 사업을 한다. 전 세계적인 현상인데 기후변화 때문에 급속한 사막화가 일어나고 있다. 여기는 물 관리를 전혀 못하는 상황이다. 하나의 댐도 하나의 저수지도 없고, 빗물을 받아쓰다가 없으면 마는 시스템이다.”

 

▲인터뷰 내내 기자의 시선을 놓치지 않고 말하던 강 박사

 

  인도주의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나는 굉장히 행운인 사람이다. 오만일 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을 지구의 많은 수의 사람들은 10분의 1도 못 누리고 산다. 처음에는 돕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갔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우쭐대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현지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가 되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는 의사 후배는 난민 지역에서 일을 많이 하는데, 의사로서의 생명을 다시 찾아간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인간이 인간으로서 함께 하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많다.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도 그렇고 사회에 나와서도 지방대라는 굴레를 철저하게 느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성적으로 대학을 결정하고 그것이 평생을 가는 이상한 시스템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냉혹하지만 내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어떻게 앞으로 걸어갈 것인가이다. 사회적으로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 이제는 꿈조차 갖지 않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꿈을 잃지 않는 것이다. 또 하나 도전적으로 어떻게 보면 전투적으로 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시야를 외국으로 넓히는 것도 좋다. 외국에 나간다고 해서 성공을 하고 모든 게 해결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도를 안 하면 아예 기회조차 없다는 것이다. 지금 그 나이가 경험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나이다.”

   길고 긴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 시절의 기억’이다. 옛날에는 정문 앞이 큰 벌판이었고 궁동 일대가 논이었다. 그는 몰라보게 바뀐 학교에 아직 어리둥절하다. 강 박사는 “학교가 좋았던 것은 (지금은 건물이 많아졌지만) 숲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고 말했다. 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날, 그는 지금 의료인문학 박사이자 인도주의자로 강단에 섰다. 인도주의 하면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행위나 몹시 이타적인 행위를 생각하기 쉽다. 강 박사는 “인도주의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인도주의 산업, 인도주의 시장도 등장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많은 국제 기업들이 인도주의 활동을 하고 있다. 어떤 전공을 하더라도 인도주의 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이 많아졌다.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보라”고 말했다.  
 

글/ 허채은 기자 gwo12@cnu.ac.kr
사진/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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