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기성회비 판결 해부해보기

 

 

  대학생활 중 얼핏 한번은 들어봤을 법한 기성회비라는 단어는 대학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등록금 고지서 속 수업료와 함께 빠짐없이 등장한 그 이름이지만 정작 기성회비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3년 부족한 교육시설과 운영경비를 지원하기 위해 각 대학에 기성회를 설립했고 기성회에서 자발적 후원금 형태로 걷기 시작한 것이 기성회비다.
  이후 대학에서 기성회비를 수업료와 함께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징수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기성회비의 법적근거와 사용처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리고 이는 2010년 각 국립대 기성회를 상대로 한 국·공립대 학생들의 부당이득금(기성회비를 칭함) 반환소송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기성회비 반환소송에서 1심과 2심 재판부 모두 ‘기성회비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한 법령이 없다’, ‘자발적 납부로 볼 수 없다’를 이유로 ‘기성회비를 반환하라’고 판결한다. 하지만 지난 6월 대법원 확정판결로 인해 기성회회계가 폐지될 것이라고 예측한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다르게 대법원은 “부당이득으로 볼 수 없다”며 기성회비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쟁점 1 - 기성회비는 국립대학 이용료인가?
  기성회비를 둘러싼 논쟁 중 하나는 ‘기성회비 징수가 법률상 근거를 갖고 있는가’이다. 이에 대법원은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는 수업료와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며 그 밖의 납부금이란 항목을 통해 기성회비 징수의 법률적 근거를 두고 있다고 판결했다. 즉 기성회비가 고등교육법상 그 밖의 납부금에 해당돼 적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납부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국립대의 설립자·경영자이기 때문에 이에 해당하지 않는 기성회가 그 밖의 납부금을 받는 것은 법률유보원칙(행정권의 발동은 법률에 근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공법상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기성회는 법인 아닌 사단으로서 엄연히 별개의 단체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하주희 변호사는 “고등교육법상 수업료 및 기타 납입금을 받을 수 있는 주체는 (국립대) 설립·운영자”라며 “대법원의 판결은 법의 문헌을 벗어난 해석”이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지적에 대해 대법원은 “국립대학이 학생으로부터 납부 받을 수 있는 고등교육법 제11조 제1항의 등록금은 영조물인 국립대학의 이용에 대한 사용료를 의미한다”고 언급한 후 ‘등록금의 기준은 형식적 기준뿐 아니라 그 실질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납부금을 받게 된 경위, 필요성, 사용처, 납부금액, 납부방식, 금액을 획일적으로 납부하고 있는지 여부, 학생이나 학부모의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시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성회비는 실질적으로 등록금처럼 취급돼 왔었다고 대법원은 적시한다. “기성회들의 기성회비의 결정 및 납부 절차를 실질적으로 각 국립대학의 총장이 주관하였고, 국고회계(수업료)를 통한 지출대상 경비와 기성회회계(기성회비)를 통한 지출경비가 동일하였으며, 등록금 책정절차에서도 수업료뿐만 아니라 기성회비도 등록금심의위원회의 심의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에 대해서 기성회비와 등록금은 서로 법적 성질이 다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기성회비는 기성회 회원들이 납부하는 회비이고 국·공립대학생들은 이미 수업료를 납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국립대 교육시설 제공에 대한 대가는 ‘수업료’로 책정·징수되고 있었기 때문에 (기성회비 징수는) 이중 징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쟁점 2 - 기성회비 징수에 대한 의사 합치가 있었나?
  이번 대법원 판결 중 또 하나의 쟁점은 ‘기성회비 징수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동의가 있었는가’의 여부이다. 대법원은 의사 합치의 경우 묵시적으로도 가능하다고 보았다. 대법원은 “국립대학들은 부족한 교육재원을 마련하기 위하여 기성회를 통하여 학교시설 확충 등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여 왔고, 학생이나 학부모 역시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 국립대학의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려는 의사로 기성회비의 납부에 응하였다고 보는 것이 국립대학에서의 기성회비 납부에 관한 실체에 부합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학생의 입장에서는 기성회비 납부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자발적인 납부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김병국 전국대학노동조합 정책국장은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의하에 기성회비를 납부한 것이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동의하는 국공립대 학생과 학부모가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며 “고지서 어디에 봐도 기성회비 징수에 관한 동의를 묻는 내용은 전혀 없다. 대법원이 현실을 전혀 모른 채 내린 잘못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학생들에게 기성회비는 선택이 아닌 등록을 위해 강제적으로 납부할 수밖에 없는 비용”이라며 “학생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의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강제적 징수이며 의사합치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당사자의 의사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그 계약이 체결된 동기 및 경위, 당사자가 계약을 통하여 달성하려고 하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도록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한편, 이 같은 기성회비 부과방식은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란 비판도 나오고 있다. 헌법 제21조 제1항의 결사의 자유에는 가입하지 않을 자유와 탈퇴할 자유도 포함되는데 기성회들이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수백만 원의 회비를 부과하면서 가입을 강제하고 탈퇴를 불허하는 것은 헌법상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OECD 국가의 기성회비
  기성회비 징수에 관한 대법원의 첫 확정판결이 나왔지만 아직도 각 국립대 기성회를 상대로 한 많은 소송들이 남아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소송들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황인성 팀장은 “정부의 교육재정 지원이 미약해서 발생한 문제”라고 운을 뗀 후 “근본적으로 기성회비를 두고 학교와 학생이 갈등 구조로 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국립대의 교육환경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국가에 있는 것이기에 교육재정의 파이를 더 키우는 쪽으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고등교육재정 비율은 0.65% 수준으로 OECD 평균(1.1%)과 대통령 공약(1%)에 크게 못 미친다. 3월 3일 국회에서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올해부터 기성회비가 수업료 명목으로 고지됐지만, 이전까지 기성회비는 국립대 등록금 중 80%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제 기성회비는 사라지지만 기성회비 반환소송으로 대표됐던 국립대에 대한 국가의 재정부담 강화 목소리는 결코 사라져선 안 될 것이다.
 

최윤한 기자 juvenil@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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