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신라의 천하사상

 
 

  신라는 왜 우산국을 정벌하려고 했을까. 개개의 침공은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데, 우산국은 왕래가 불편한 것에 비해 특별히 취해야 하는 산물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신라가 우산국을 복속시켜서 얻은 경제적 이익은 많지 않았다. 영토의 확장이나 경제적 이익을 생각했다면 우산국이 아니라 다른 주변국을 치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런데도 신라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우산국의 정벌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자를 보이는 계책까지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려 했던 것은 천하사상의 실현으로 보아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국가들은 자국을 절대시하는 천하사상을 가지는데 신라 역시 그러했다.
  천하는 천상에 대응하는 공간과 천상을 지배하는 천제의 명을 받은 천손이 지배하는 공간을 같이 의미하는데, 국가의 정통성을 확인하는 천하는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 천하사상은 자타를 차별하는 ‘화이사상’과 자국이 야만의 주변국을 계몽시켜야한다는 ‘왕화사상’으로 구성된다. 그래서 이웃나라를 치는 일은 침략이 아니라 무덕으로 계도하는 시혜행위였다. 
  그런 천하사상은 상대의 양해나 인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객관적일 필요도 없다,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추진하면 된다. 천하사상은 중국이 처음으로 구축한 것으로 한자를 사용하는 국가들이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주변국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대내적으로는 자국을 천하의 중심으로 보는 천하사상을 구축하고 주변국끼리 서열을 다투었다. 그래서 천하사상을 가지지 않는 국가는 없었다. 중국이 두려워 천하라는 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는 못했지만 ‘소중화‘와 같은 사상은 구축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는 국가가 있다면 그것은 국가가 아니라 세력집단에 불과하여 아무리 위세를 떨친다 해도 곧 소멸되고 만다.    
  그런데 천하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동서남북을 의미하는 사방이 상용되었다. 천하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기도 확실하지 않으나 공자 시대까지는 사용되지 않았고, 보다 혁신적인 묵자 이후에 사용된 것으로 말해진다.  그 사방이라는 용어가 신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지증왕이 신라라는 국호를 제정할 때도 ‘사방을 망라한다’는 의미의 라를 채택할 정도로 의식하고 있었다. 
  신라가 사방이라는 용어에 민감한 것은 신라의 지리적 조건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는 동방의 왜, 서방의 백제, 남방의 가야, 북방의 고구려로 둘려 싸여 있다. 그런 지리적 조건을  근거로, 사방에 주변국을 위치시키고 신라가 그 중앙에 존재한다는 천하사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렇게 천하사상을 구축한 이상 주변국을 복속시켜야 한다.    
  그런데 고구려는 물론 신라도 동방의 왜를 좋아하지 않았다. 광개토왕비문의 고구려는 왜가 나타나면 추방할 뿐이지 속국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왜와는 천하를 같이 할 생각이 없었기에 취할 수 있는 대응이었는데, 그것은 신라도 같았다. 혁거세가 건국한 해부터 나타나 약탈하려는 왜를 신라가 좋아하지 않았다. 신라는 멋대로 나타나는 왜를 격퇴시키거나 원하는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신라의 천하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신라라는 국호와 국왕이라는 군주호를 제정한 지증왕도 마찬가지였다. 지증왕은 신라의 천하에서 왜를 제외시키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사방의 동방이 결락되는 것을 고민하며 왜를 대신할 수 있는 동방국을 찾으려 했다. 신라의 동방에는 석탈해가 건너왔다는 다파라국과 우산국, 그리고 왜가 존재한다. 그런데 다파라국은 신화상의 국가로 실체는 확인할 수 없고, 왜는 제외하고 싶은 대상이었기 때문에 남는 것은 우산국뿐이었다. 그래서 우산국의 정벌을 계획하고 이사부에게 명한 것이다.
  그런 필연성이 있었기 때문에,  이사부가 우산국의 정벌에 나섰으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뜻을 굽히지 못했다. 따라서 신라의 우산국 정벌은 영토 확장이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라가 중심이 되는 천하사상의 실현을 위한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
 

권오엽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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