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이수경 <내가 너였을 때>展

   미술의 영역을 접하다보면 설명없인 이해할 수 없는 낯선 작품들을 만나곤 한다. ‘뭘 말하고 있는거야’하고 제목을 보고 작품을 여러 번 쳐다보고 생각해도 도무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제목은 모호하고 작품이 무엇인지 영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모호한 것들을 약간의 유머와 재치있는 발상이 담긴 그림으로 보여준다면 감상의 시작은 어렵지 않다.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이수경 작가의 <내가 너였을 때>전의 작품들 또한 그렇다.

 

   다양한 미술적 시도, 다채로운 주제를 담아내다

   전시는 커다란 샹들리에 두 개와 함께 시작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정체모를 크리스탈 샹들리에 두 개가 크게 걸려있고 그 아래에 조그마한 무대가 있다. 그리고 맞은 편엔 전통춤을 추고 있는 한 여인이 보인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번 전시 제목과 동일한 <내가 너였을 때>(사진1)다. 짝을 이룬 샹들리에 중 하나는 깜박이며 신호를 보낸다. 샹들리에 아래에서 관객들은 맞은 편에 보이는 화면을 따라 춤을 출 수 있다. 이런 퍼포먼스 작품을 통해 작가는 관람객들과 전시회를 통해 소통하고 관계를 맺자는 의도를 전하고 있다.
   실험적인 샹들리에를 지나면 넓고 둥근 판위에 흰색의 작은 물체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가까이 보면 귀여움이 느껴지는 작품 <모두 잠든>(사진2)은 소녀와 돼지부터 마리아까지 모두 잠들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3D프린터로 만들어진 조각으로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복잡하고 피곤한 삶을 잊은 듯 낮잠을 곤히 자는 조각들을 보고 있으면 같이 잠들어 버릴 듯 하다.  
   이 작가의 <불꽃>은 심오함의 절정을 보여준다. 옅은 빨강색 선으로 그려진 그림들과 그런 그림들이 큰 캔버스에 연속적으로 놓인 모습은 무엇을 그린 것인지 한 눈에 파악하기가 힘들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형상이 보이고 제목처럼 불꽃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 속 옅은 빨강 선의 재료는 붉은 안료인 경면주사(鏡面朱砂 : 수은)다. 경면주사는 옛날부터 신경안정제로 사용되고 부적을 그리는데 이용돼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심오한 재료만큼 대형 캔버스에 담긴 그림에는 호랑이와 요괴, 불교의 보살과 크리스트교의 피에타 등 주술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안료를 가지고 대형 캔버스 앞에 무릎을 꿇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심오한 표현기법처럼 작가도 이러한 작업을 통해 수련하듯 작품에 집중했다.
   주술적이고 심오한 그림은 <전생퇴행그림>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실제로 최면을 통해 전생을 경험했고 이를 토대로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전생에서 사슴과 곰도 되고, 아프리카 흑인 사내가 되기도 한다. 만개한 꽃들 사이에서 심장이 칼에 꽂혀있거나 복숭아 나무 아래에서 해일이 된 작가의 모습도 그려진다. 그림체가 웃기기도 하면서 어딘지 모를 해괴함과 심오함도 느껴진다. 이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전생체험처럼 무의식의 세계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새로운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동식 사원>(사진3)은 재밌는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병풍 속 불상과 보살상들은 모두 뒤돌아 있다. 복을 빌어주는 이들이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냉정해 보이고 황당하게 느껴진다.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가 바라만 보던 보살이 우리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모습은 그들이 절대자라긴 보단 동반자같은 느낌이 들게 만든다. 그들이 우리와 같이 기도하고 명상하는 대등한 입장임을 독특한 발상으로 느끼게 해준다. 
   14개의 모니터가 전시관 한 편에 둥글게 배열돼 있다. 이 작품은 <환상의 섬>(사진4)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특이하다. 14개의 모니터 안에는 각각 14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2003년 한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프랑스 니스지역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니스에서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동양 물건을 가진 프랑스인들을 찾았고 그들에게 그 물건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만들고 촬영을 했다. 모니터에 나오는 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는데 한 그룹은 과거 프랑스령이었던 베트남 지역 출생으로 그곳의 삶과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들이고 다른 그룹은 니스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저렴한 동양물건을 선조에게서 받은 귀한 물건인양 꾸며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니스 벼룩시장에서 산 물건을 진귀한 물건인양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허구’인 사람들의 모습이 어설프게 느껴지고 웃음이 나온다. 작가는 이런 꾸며진 실험으로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세상의 모습을 담아냈다.
   쓸모없는 것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면 이런 모습일까. <번역된 도자기>(사진5)는 멀리서 보면 층층히 쌓은 높은 도자기 탑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깨진 도자기들로 이뤄져 있다. 서로 모양이 달라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묘하게도 도자의 색과 문양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장인이 정성들여 만들었지만 완성품으로 인정받지 못한 도자기 파편들이 모여 멋진 작품으로 탄생했다. 또, 깨진 도자기들이 만나는 이음새마다 입혀진 금박은 도자기 파편을 더욱 영롱하게 만들고 있다.

   ‘서로 다름’이 만나 하나가 되다

   <내가 너였을 때>전의 독특한 특징은 서로 다른 영역에 존재하는 것들을 하나로 엮어냈다는 점이다. <전생퇴행그림>에서는 최면의 무의식의 세계와 현실의 모습이 뒤섞였고, <변역된 도자기>에선 불완전한 도자기 파편들의 모습이 결국엔 완전한 도자기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내가 너였을 때>는샹들리에 아래서 춤추는 이들을 통해 작품을 제대로 보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전시 제목 <내가 너였을 때>도 결국은 서로 다른 나와 네가 결국은 하나로 만날 수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작가는 조각, 회화,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으로 이질적인 것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이번 전시회는 대구미술관에서 5월 17일까지 열리며 관람료는 천원이다. 관람 시 작품 옆 벽면에 붙여진 QR코드를 찍으면 작품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이수경 작가는 1963년 출생의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한 미술가다. 2008년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가 50인>에 선정되었고 여러 프로젝트와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글 / 사진 이예원 기자 wowno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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