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침묵하는 국가

 

민간차원의 적은 인력으로 유해 발굴 중인 대전 산내학살 유해 발굴 장소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국가의 역할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사실은 한 가지다. 국가를 구성하는 첫 요소는 국민이고 국민이 없는 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특히나 민주국가가 된 현대에 와서 국민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민주주의는 민중에 의한 지배를 뜻한다. 즉, 국민이 곧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사에 있어 우리나라는 국민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지배세력의 입맛에 맞춰 변하는 과거사 정책은 다수의 피해자, 국민들을 무시하는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2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대전 골령골에서 민간차원의 산내학살 유해발굴조사가 진행됐다. 기자가 골령골에 찾아간 당일은 유해발굴조사가 한참 진행되는 중이었다. 유해발굴조사지는 참으로 처참한 상황이었다. 민간인 희생자가 7000~8000여명으로 추정되는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피해학살지라는 말이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인원이 유해발굴에 참여하고 있었다.
   30명 안팎의 인원은 각자 분주하게 유해 발굴터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 삼분의 일은 유해 발굴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닌 단순 자원봉사자였다. 자원봉사자가 흙을 파서 나르면 유해 발굴 전문가와 전공자들이 유해를 찾는 방식의 유해 발굴 조사였다. 일반인이 함부로 접근하면 유해가 손상될 수 있음에도 발굴현장은 민간인 자원봉사자의 손길마저 필요로 했다. 유해는 끝없이 발견됐다. 턱뼈를 비롯해서 수많은 유해들이 발견되었고 총알이 지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나온 두개골, 웅크린 자세를 취한 유해도 발견됐다. 한국전쟁 당시 국가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 65년 만에 바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는 침묵하고 있다. 유해 발굴 요청에도 위령제 사업 지원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정부는 끝내 유족들이나 시민들이 스스로 유해를 찾을 때까지도 가만히 있을 뿐이다.
   민간발굴단은 유해 발굴조사 기간 동안 간이화장실이라도 만들어달라고 동구청에 요청했지만 동구청은 끝내 예산부족을 이유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 사소한 성의를 보여주는 것조차 힘드냐며 한 발굴단 관계자는 분통을 터뜨렸다. 기자가 찾아간 당일 발굴 4일차까지도 동구청은 물론이고 대전시청까지 그 누구도 발굴지에 찾아오지 않았다. 국가로 인해 죽어간 이들을 위한 자리에 국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국민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가의 역할은 자명하다. 국가의 존재 이유 역시 명확하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고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는 국가라 칭하기 부끄럽다. 국가에 의해 희생된 수많은 국민들에 대한 진실 규명과 배상이 시급하다. 고령인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시간은 그리 길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국가, 국민에게 사과하지 못하는 국가에게 어떠한 발전과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글 / 곽효원  기자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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