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조항으로 사라져가는 학생 자치

 

   지난해 3월 대학본부는 ‘충남대학교 학생 징계에 관한 지침’에 문제 조항을 추가해 학생들의 거센 반발로 해당 조항을 삭제한 적이 있다. 당시 논란이 된 조항은 ‘성행이 불량한 자’를 ‘학내에서 특별한 정치 활동을 한 자 등’으로 규정한 조항이었다. 위 문제 조항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에 어긋나는 조항으로 정치적 자유를 침해한다. 이렇듯 현재까지도 우리 학교를 비롯한 많은 대학들이 기본권을 침해하는 학칙들을 유지하고 있다.

   헌법 위의 대학 학칙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 차별받지 않을 것을 명시하며,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지고 있음을 명시한다. 그러나 대학 학칙 일부 조항들은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진후 의원이 대학교육연구소에 의뢰해 2012년에 발표한 ‘대학 민주화 실태 진단 보고서’를 확인하면 ‘집회 사전 승인’조항이 있는 대학이 74.4%(134개교)에 이르렀다. 또한 ‘간행물 간행 시 지도, 배포 시 총·학장 승인’조항이 있는 대학은 77.2%(139개교), ‘정당, 정치적 목적의 사회단체가입불가’조항이 있는 대학은 55.6%(100개교)로 나타났다.(표1 참고) 이러한 통계결과에 대해 대학교육연구소 연덕원 연구원은 “다수의 학교 학칙들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법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은 최상위법이기 때문에 기본권을 제약하는 학칙이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4월 ‘반민주적 비인권적 학칙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한 ‘대학, 안녕들하십니까’ 최하영 팀장은 “학교 밖에서 보장되는 권리라면 학교 안에서는 더욱 보장되는 권리여야 한다”고 말했다.
   학칙들은 실제로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 덕성여대는 총학생회 주최로 <진보 2013>을 학내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정치행사라는 이유로 학교 측으로부터 시설 사용 불허통보를 받았다. 고려대 역시 2013년 9월 국정원 선거개입 관련 표창원 강연회를 교내 강당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지만 정치적으로 편향된 행사라는 이유로 학교 측에서 대관을 취소했다.
   지난 1월 ‘대학의 학생 자치 침해에 대한 대학생 공동 토론회’에 참석한 성신여자대학교 홍희진 부학생회장은 “특정 대학에 재학 중이라는 이유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라고 꼬집었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 연덕원 연구원은 “지식의 전당에서 학생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것은 명백한 문제”라고 말했다.

   학생자치 제약하는 대학 학칙
   기본법에 어긋난 대학 학칙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학생 자치활동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성신여대 홍희진 부학생회장은 “학교의 학생자치 개입을 명문화하는 것은 학내자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학생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자치를 제약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를 야기한다. 임재홍 교수는 “초등학생들도 민주주의를 훈련하기위해 자치를 경험한다”며 “대학이 민주주의 훈련을 막는 것은 대학의 구조적 문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학 민주화 실태 진단 보고서’를 참고하면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침해하는 학칙으로 ‘학생단체 조직 시 사전승인’조항이 있는 대학은 78.3%(141개교), ‘기간 또는 개인에 대한 학생활동 후원 요청 또는 시상의뢰 사전승인’조항이 있는 대학은 55.0%(99개교), ‘학교 운영 관여불가’조항이 있는 학교는 12.8%(23개교)로 나타났다. 실제 많은 학교들이 학칙을 학생자치 통제도구로 이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이화여대는 학칙에서 규정한 대표자의 성적기준 자격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학생회를 인정하지 않아 총학생회장이 사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또 2011년 11월 중앙대는 학내에서 대학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토론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학생 3명에 대한 징계 여부를 논의했다.
   성신여대 홍희진 부학생회장은 “성신여대 또한 학생 대표자 후보자격에 성적제한을 두는 학칙으로 인해 학교가 학생회 선거에 개입해 특정후보의 낙마에 힘을 실었던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학생자치를 침해하는 학칙에 대한 법적 구속력 여부 역시 논란으로 떠올랐다. 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임재홍 교수는 “대학 학칙은 법적으로 행정규칙이기 때문에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은 현재 대학 학칙을 뚜렷한 근거 없이 구속력이 있다고 판결한다. 대해 임재홍 교수는 “학칙이 자치규범으로서의 역할을 한다면 구속력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학내 구성원들이 자치입법권을 행사한다는 근거가 없다면 자치규범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학생 자치가 침해되는 상황에서 총장 1인이 실질적으로 좌지우지하는 학칙은 자치규범이 아니며 구속력 역시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임재홍 교수는 “교수 자치, 학생 자치가 없는 상태에서 학칙을 자치규범으로 보는 것은 총장 자치만을 뜻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학도호국단에서 이어진 독소조항
   이러한 비민주적인 대학 학칙의 원류에는 ‘학도호국단’이 있다. 연덕원 연구원은 “유신시대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대학가를 잠재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학도호국단”이라며 “학도호국단 당시 만들어진 학칙이 개정되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학 민주화 실태 진단 보고서’에는 ‘사전승인 · 간행물 · 조직승인 · 지도 · 금지활동 · 징계’의 학도호국단 학칙이 현재까지 유사내용으로 잔류되고 있음을 명시했다.
   임재홍 교수는 “80년대 들어 학도호국단이 사라지고 학생자치의 기본인 학생회가 들어섰다. 그러나 사회전반의 민주화가 우선되다보니 학칙 개정까지는 가지 못했던 게 학도호국단 독소조항 잔류 원인”이라고 말했다.
   민주화가 한창이던 시기에 개정되지 못한 독소조항들이 외환위기를 맞으며 대학사회에서 잊혀진 것이다. 또 ‘대학, 안녕들하십니까’ 최하영 팀장은 “학생운동과 학생회가 건실했을 당시, 학칙이 탄압수단으로 이용되지 않자 굳이 학칙을 개정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꼽았다.
   사문화된 채 남아있던 독소조항은 학생회의 힘이 약해지자 슬며시 부활했다. 연덕원 연구원은 “학생들의 의사표현이 줄어들자 학교는 소수의 반대 목소리를 탄압하기 위해 독소조항을 꺼내들었다”고 말했다. 학교 측이 학생들에 대한 행동을 언제든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학 학칙 앞으로의 방향
   지난해 4월, ‘비민주적 반인권적 학칙 개정을 위한 토론회’가 장하나 의원과 대학, ‘안녕들하십니까’ 주최로 개최되었고 지난 1월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대학생 학생자치 침해에 대한 대학생 공동 토론회’가 개최되는 등 꾸준히 학칙 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돼왔다. 그러나 실질적인 학칙 개정은 미미한 수준이다.
   임재홍 교수는 “학칙개정 노력이 산발적으로 일어나 한계가 있었다”며 “학생 사회와 교수 사회가 연대해 개정 요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덕원 연구원은 “공론의 장을 만들기 위해 학생사회가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야 하고 정부의 학칙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대학들이 이런 조항들을 자체적으로 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홍 교수는 “OECD 국가들의 경우 학칙이 기본권 보장은 물론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인권적인 조항까지 포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 학칙들은 인권조항은 고사하고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마저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고등학교에서도 ‘인권조례’가 만들어지는 시점에서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의 현주소가 어디쯤인지 대학사회 스스로 성찰해야 할 것이다.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