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다녀온 태안화력발전소 농성현장

   “그럼 여기서 교섭 접을까요? 두 분이서 계속 텐트 치고 버텨 보세요. 1년이든 2년이든 상관 안 할 테니까” 웹툰 ‘송곳’에 나오는 노동조합과 회사 간의 교섭 장면이다. 이 장면은 비단 웹툰 속 상황이 아니다.
   충청남도 태안군에 위치한 태안화력발전소 9·10호기 공사현장은 우리나라에서 100만㎾ 발전소를 건설하는 두 곳 중 한 곳이다. 태안화력발전소 성창E&C 노동자들은 지속된 임금체불과 단체협약 위반으로 쟁의행위를 시작했고 이 후 사측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해고자들과 정직자·미복귀자들은 단식농성과 천막농성을 이어가며 복직을 주장했다. 농성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달 18일, 그 현장에 기자가 직접 다녀왔다.

 

1. 서문 앞 천막농성장

   임금체불에서 천막농성까지
   2시간에 걸쳐 도착한 태안화력발전소 정문에는 파란 농성천막이 있었다. 농성은 이철 플랜트 건설 노동조합 비상대책위원장(이하 이철 비대위원장)이 단식투쟁 중인 정문 앞 천막농성장과 해고자와 정직자 · 미복귀자들이 농성 중인 서문 앞 천막농성장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임금체불은 쟁의행위를 처음 시작한 계기가 됐다. 해고자 홍성민(남 · 32) 씨는 “처음에 요구한 것은 기존에 협약을 맺었던 입금단체협약을 준수하라는 것이었지 임금단체협약을 새로 하거나 임금을 인상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창E&C 측은 교섭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성창E&C 공경호 소장(이하 공경호 소장)은 “사전연락이 없어 교섭자리가 있는지 몰랐고 참석할 수도 없었다”며 “교섭단체분리신청을 했기 때문에 참석 의무 역시 없다”고 전했다. 반면 김혜영 플랜트 건설 노동조합 교선국장(이하 김혜영 교선국장)은 “성창E&C는 충남지부와 단체협약을 체결했기 때문에 교섭에 참석해야 하나 참석하지 않다가 새로 당선된 임원들과 단 한 번의 교섭자리만 가졌다”고 말했다.
   교섭 자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자 조정이 중지됐고 쟁의행위가 시작됐다. 작년 10월 23일 1차 경고파업을 시작으로 성창E&C 노동자들의 쟁의행위가 진행됐고 성창E&C는 11월 10일 돌연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이 직장폐쇄 기간 중 노동자 7명의 해고, 8명의 정직이 결정됐다. 이철 비대위원장은 “해고되신 분들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며 “현장의 불합리한 부분들에 대해 시정할 것을 요구한 사람들이 해고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 11월 29일에 진행된 직장폐쇄 철회 및 현장복귀 조합원 찬반투표 결과로 지난달 1일 현장에 전원 복직하게 되었으나 그 과정에서 미복귀자가 생겼다. 김혜영 교선국장은 “직장폐쇄 이후에도 노동조합 활동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현장복귀를 시키지 않고 있어 100여명의 조합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공경호 소장은 “일의 순서대로 충원을 했을 뿐이다. 선택적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아닌 순차적으로 복귀시키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단식농성과 천막농성은 부당해고 철회와 쟁의행위 중 발생한 정직자, 미복귀자의 현장 복귀를 위해서이다. 이철 비대위원장은 “해고, 산업재해, 임금체불 문제에 있어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2. 단식농성 중인 이철 비대위원장
3. 천막농성 중인 박영섭 책임자

   지속된 임금체불과 부실한 안전교육
   “안전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싶다”
   박영섭 책임자는 “임금체불이 쟁의행위를 시작한 동기”라며 임금체불의 심각성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1 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6번의 임금 체불이 있었다. 체불 기간도 처음에는 5일에서 10일이었지만, 이후에는 한 달 이상 임금 지불이 늦어졌다. 홍성민 씨는 “체불이 계속돼 제 때 돈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신용불량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성창E&C 측은 임금체불은 전혀 없었다는 입장이다. 공경호 소장은 “임금 지급 날이 25일인데, 보통 일요일이나 공휴일이 끼게 되면 미뤄서 지급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2~3일씩 늦춰졌을 뿐이다”라며 “가장 많이 늦은 것이 다음달 1일이다. 몇 달간 돈을 안 준 것이 임금체불이지 이것은 임금지연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해 본 급여 내역에는 작년 8월 임금이 10월 1일에 지급되었으며 9월 임금이 10월 28일에 지급되는 등 분명한‘임금체불’이 있었음이 나타났다. 지난달 12월 임금 역시 지급 날짜를 지나 체불됐다.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문제였다. 홍성민 씨는 “법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안전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1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앞에서 마이크 잡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사인을 하는 것이 안전교육의 전부”라고 말했다. 박영섭 책임자 또한 “식당에 노동자들을 모아두고 외부에서 물어봤을 때 이렇게 대답하라는 식으로 암기시킨 것이 안전교육이었다”라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건설 일용근로자에게 실시해야 하는 교육시간은 4시간이다.
   허술한 안전교육은 안전사고를 불러왔다. 기자가 찾아가기 며칠 전에도 바닥자재 낙하사고로 노동자 두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홍성민 씨는 “작업현장 5층에서 바닥자재가 낙하해 1층에 있던 노동자 두 분이 중경상을 입었다. 허리를 다친 노동자분은 중상을 입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머리를 다친 노동자분은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 사고 바로 다음 날 회사에서 출근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그는 “후유증이 있어 어떻게 될지 모름에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회사는 산재처리마저 해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노동자는 “원래는 층마다 안전망이 있어야 하는데 이 현장은 안전망이 없다. 이번 사고도 안전망이 없어 일어난 사고”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전교육이 허술하다는 주장에 성창E&C측은 터무니없다는 반응이다. 공 소장은 “매달 1일마다 안전교육을 실시하는 등 법적 4시간 거의 지키고 있다. 추측이지만 안전교육을 해도 노조원들은 제대로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4. 정문 앞 농성장을 정리하는 박영섭 책임자

   교섭단위 분리 판정
   “교섭단위가 분리됐으니 쟁의행위  불법”

   작년 9월 24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으로 태안화력발전소 성창E&C 교섭단위가 분리됐다. 우리나라는 복수노조가 인정돼 교섭 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밟아 교섭대표노동조합을 통해 교섭을 하도록 되어 있다. 쉽게 말해 복수노조들 중 대표를 정해 교섭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표가 아닌 노동조합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면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할 수 있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 관계자는 “교섭단위 분리를 하기 위해서는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교섭 관행의 차이, 분리 필요성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며 “태안화력발전소 성창E&C 교섭단위 분리의 경우 위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을 내려 분리 판정했다”고 말했다.
   교섭단위 분리 판정에 따라 성창E&C는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자체가 불법행위의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공경호 소장은 “교섭단체가 분리되어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요건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진행 중인 쟁의행위는 불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공 소장은 “교섭단체가 분리되었기 때문에 교섭의 의무 역시 없다”고 했다.
   그러나 플랜트 건설 노동조합은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충남지역 어디에서 일하든 동일한 임금과 단체협약을 적용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혜영 교선국장은 “이미 체결된 단체협약은 소급해서 불법으로 만들 수 없다. 교섭분리 결정에 따라 교섭절차를 모두 진행했고 과반수 조합원을 차지한 민주노총 플랜트 건설 노동조합이 태안화력발전소 성창E&C와 교섭대표 지위를 갖는다”고 했다.

 

5. 태안화력발전소 전경
6. 현재 공사 중인 태안화력발전소 9 ·10호기

 

 

   단식농성과 천막농성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
   기자가 농성장에 찾아간 날은 천막농성 16일째이자 단식투쟁 16일째에 들어선 날이었다. 힘겨운 단식투쟁을 이어나가고 있던 이철 비대위원장은 “지역 사회단체 분들, 활동가분들, 조합원분들, 노동자분들이 많이 찾아와 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아직 힘든 점은 없다”고 말했다. 취재 당일도 안전사고로 머리를 다친 노동자 분이 술을 사들고 찾아와 응원하고 있었다. 해고자들과 정직자, 미복귀자들이 있는 농성장에 찾아 온 한 노동자는 “농성을 함께 하는 것이 당연하나 생계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단식투쟁이 지속될수록 주변의 걱정도 커져가고 있다. 이철 비대위원장은 “방금 전에도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많이 걱정하면서도 지지해주고 있다. 이기고 돌아오라고 했는데 지면 돌아오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박영섭 책임자 또한 “얼마 전 태안에서 투쟁문화제가 있었다. 위원장님이 연설을 하며 ‘저는 조금 더 있다 집에 가야할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8살 된 위원장님 딸이 ‘나는 어떡하라고!’라며 소리쳤다. 아마 위원장님 아내 분의 걱정은 생각 이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의를 위해 지지해주시는 대단한 분들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달 23일, 충남지부 1000여명의 조합원들과 농성자들이 원청사 SK건설 G.PLANT 본사로 상경투쟁을 다녀왔다. 상경투쟁에서 농성자들은 SK건설 G.PLANT 상무에게 성창E&C와 노동조합을 만나 해고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튿날 협상이 진행됐고 미복귀자 한 명과 해고자 홍성민 씨를 오늘자로 복직시키기로 합의를 봤다.
   상경투쟁 당일인 단식 21일차에 쓰러진 이철 비대위원장은 병원에서 회복 중이며, 지난달 26일로 태안화력발전소 농성현장은 마무리됐다. 이로써 농성은 끝이 맺어졌으나 앞으로의 성창E&C와 플랜트 건설 노동조합의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민 씨는 “우리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농성을 하는 이유는 현재 상황을 바꾸고 싶은 것도 있지만 더 나아가 후배들의 앞길을 닦아주기 위함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글 / 곽효원 기자 kwakhyo1@cnu.ac.kr
  사진 /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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