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오주석, 솔
   보자마자 감상보다 작가와 제목이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있다. 개인적으로 외국 작품 중에는 피카소와 고흐, 뒤샹이 그렇고 우리나라의 작품으로는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 그렇다. 아마 미술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소개된 작품이라 그럴 것이다. 미술 교과서에 단골로 실린 작품은 시험에 자주 출제된다는 뜻이니까, 그만큼 작품 제목과 작가의 짝을 맞추느라 씨름했다는 뜻도 된다. 김홍도의 「서당도」와 「씨름」이 서민들의 생활을 잘 표현하였다는 것을 아는 정도면 충분히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필수 교육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자에게 걸 맞는 교양 지식이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을 펼쳐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림은 무엇이었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든 생각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던 그림이지만 책을 통해 바라본 그림은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책장을 따라 작품을 찬찬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녹아 있었다. 미술관의 학예 연구사, 대학의 겸임교수로 다양하게 활동한 저자는 옛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마터면 스쳐 지나칠 뻔 했던 작품들은 저자의 설명을 통해 생기 넘치는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김홍도의 「씨름」에서는 씨름판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후끈한 열기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림 한 장에 어른을 공경하는 아이들의 몸가짐, 씨름 경기의 승패까지 엿볼 수 있다. 김홍도의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그림이라는 것을 교과서를 뒤적이며 시험공부를 하던 지난밤에는 미처 몰랐다.
   저자는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고 있다. 그의 설명을 옮기자면,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아니, 몇 백년 전의 사람이 한 폭의 그림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지금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하게도 저자의 설명을 따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폭의 그림에는 구석구석 갖가지 색깔의 이야기들이 물들여져 있다. 먹물로 한 획 한 획 점잖게 그린 줄만 알았던 그림들은 생각보다 수다스럽다. 잘 짜여진 구도와 적절히 배치된 여백까지 모두 나름의 목소리가 있다. 작품에 찍힌 낙관까지 모두 그림을 그린 작가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찍힌 것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림이 거는 말은 끝나지 않는다. 옛 그림들은 이렇게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잘조잘 말을 걸고 있었다.
   옛 그림들을 소개하는데 제목을 ‘한국의 미(美)’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옛 그림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변상벽의 <모계영자도>에서는 잡아온 꿀벌을 새끼들에게 나눠주는 암탉의 모정을 표현했다. 특히 <모계영자도>에는 그 많은 병아리들의 몸짓이 모두 다르다. 따뜻한 볕 아래서 선 채로 졸고 있는 병아리나 물을 마시고 있는 병아리, 뒤늦게 쫓아오고 있는 병아리, 먹이만을 기다리고 있는 병아리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꿀벌을 잘게 부숴 먹이려는 암탉의 표정까지 생생하다. 이렇게 병아리 한 마리까지 자세하게 그릴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사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이토록 아름답다. 옛 그림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원천은 대상을 향한 관심과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림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역시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안수진 기자 luckysujin@cu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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