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나누는 아름다운 대화
‘내가 지금까지 본 그림은 무엇이었나?’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든 생각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봐왔던 그림이지만 책을 통해 바라본 그림은 처음 보는 그림이었다. 책장을 따라 작품을 찬찬히 바라보면, 그 안에는 당시의 이야기가 풍부하게 녹아 있었다. 미술관의 학예 연구사, 대학의 겸임교수로 다양하게 활동한 저자는 옛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하마터면 스쳐 지나칠 뻔 했던 작품들은 저자의 설명을 통해 생기 넘치는 움직임으로 다가온다. 예를 들어 김홍도의 「씨름」에서는 씨름판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후끈한 열기와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선수들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림 한 장에 어른을 공경하는 아이들의 몸가짐, 씨름 경기의 승패까지 엿볼 수 있다. 김홍도의 「씨름」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그림이라는 것을 교과서를 뒤적이며 시험공부를 하던 지난밤에는 미처 몰랐다.
저자는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고 있다. 그의 설명을 옮기자면, 옛 그림은 옛 사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아니, 몇 백년 전의 사람이 한 폭의 그림에 풀어놓은 이야기를 지금 어떻게 아느냐고? 신기하게도 저자의 설명을 따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한 폭의 그림에는 구석구석 갖가지 색깔의 이야기들이 물들여져 있다. 먹물로 한 획 한 획 점잖게 그린 줄만 알았던 그림들은 생각보다 수다스럽다. 잘 짜여진 구도와 적절히 배치된 여백까지 모두 나름의 목소리가 있다. 작품에 찍힌 낙관까지 모두 그림을 그린 작가의 치밀한 계획 속에서 찍힌 것이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림이 거는 말은 끝나지 않는다. 옛 그림들은 이렇게 몇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잘조잘 말을 걸고 있었다.
옛 그림들을 소개하는데 제목을 ‘한국의 미(美)’라고 지은 이유가 있다. 옛 그림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변상벽의 <모계영자도>에서는 잡아온 꿀벌을 새끼들에게 나눠주는 암탉의 모정을 표현했다. 특히 <모계영자도>에는 그 많은 병아리들의 몸짓이 모두 다르다. 따뜻한 볕 아래서 선 채로 졸고 있는 병아리나 물을 마시고 있는 병아리, 뒤늦게 쫓아오고 있는 병아리, 먹이만을 기다리고 있는 병아리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꿀벌을 잘게 부숴 먹이려는 암탉의 표정까지 생생하다. 이렇게 병아리 한 마리까지 자세하게 그릴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바로 사물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이토록 아름답다. 옛 그림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의 원천은 대상을 향한 관심과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림과 아름다운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 역시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
안수진 기자 luckysujin@cun.ac.kr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