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출신으로 장군까지 진급한 임문균(기계설계·83) 동문을 만나다

 

▲먼 곳까지 취재온 기자를 향해 환한 웃음으로 맞이해주는 임문균 동문


   우리나라는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와 8개의 도로 구성되어 있다. 또 총 75개의 자치시와 86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넓은 대한민국이 365일 평화롭게 있을 수 있는 데에는 국군장병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다. 이런 대한민국의 안보를 올곧이 담당하고 있는 임문균(기계설계·83) 동문을 만났다.


   Q1. 현재 부대에서 맡은 임무는?

   직위는 지휘관이다. 국방부에는 육·해·공군·해병대가 있고 그 육군에 예하 조직들이 있다. 그 중에서 서부전선을 담당하는 전방 지휘관의 임무를 행사하고 있다. 또한 부대 전반적인 작전을 준비하면서 장병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Q2. 만약 우리 나라에 북한과의 전시작전 상황이 닥친다면 소속한 부대의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가장 최근 북한과 첨예하게 대립하는 내용은 NLL이고 육상지역에서도 DMZ 안에서 도발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서부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군은 적이 도발한다면  다시는 도발의 의지를 가지지 못하도록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
 

   Q3. ROTC 출신으로 장군에 진급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직위가 올라가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을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질문하신 것에 답이 있는데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답이다. 소위 때부터 30년 동안 군인 생활을 하면서 진급이라는 것이 최종 목표는 아니었다. 통상 우리 사회에서는 군인들은 진급이 목표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나는 진급이 목표는 아니었다. 진급이라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다. 장군을 달기 위해서 무엇을 했다? 이런 것은 없다. 단, 주어진 상황에 충실하고 정말 국가를 위해서 또 안보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생각을 늘 지니고 있다.


   Q4. 군인으로 생활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뜻 깊었던 경험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애지중지해서 도움을 주었던 병사들이 전역을 하고 나서 나를 각별하게 대해줄 때다. 손목을 그으며 죽겠다고 했던 병사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지휘 조치를 해서 생명을 버리지 않고 전역을 하게 했다. 그 친구는 사회에 나가 이후 나를 찾아와 줬는데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대장을 할 때까지는 근무했던 병사들이 형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에는 연배가 있어서 인지 형님이라 불렀던 병사는 없고 장군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는 병사들은 있다. 그렇게 부르고 따라 줄 때가 정말 고맙다. 병사들이 나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따뜻한 형, 아버지 같은 존재로 봐주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군 생활을 하며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다.


   Q5. 기계설계 공학과를 졸업했는데 전공과 진로 사이에 고민은 없었나. 어떻게 자신의 진로를 군인으로 삼게 되었는가?

   처음부터 진로를 군인으로 삼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정 형편이 누구의 도움없이 학업을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학교 내에서 ROTC가 최소한의 생활여건을 보장해주고 병역의무로 가야하는 군대를 장교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국가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겨 ROTC에 지원하게 됐다. 지금까지 주어진 대로 그때그때 맞게 최선을 다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
 

" 대학생 시절 야학 운영 큰 자산 돼

국가의 안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늘 생각해 "
 

   Q6. 학창시절 본인은 어떤 학생이었는가. 자신의 학창시절을 돌아보며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1학년 때 RCY란 동아리 활동을 했다. 1, 2학년 때 RCY 활동을 하면서 농촌 봉사활동을 하고 방학 때에는 항상 농촌에 가서 육체적인 노동뿐만 아니라 농촌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쳐줬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갈마동에서 야간학교를 운영했을 때다. 당시 학업 기회를 놓친 연세가 많으신 분들부터 정상적인 학업을 해야 하는 또래 친구들에게 교사가 되어 가르쳐주고 야학을 운영해 나갔다. 하지만 내가 RCY회장이 된 해 야간학교를 폐교시켜야 했다. 학생들의 능력으로 시설을 유지하는 것도 벅찼었고 여기저기 지원이 끊기다 보니 폐교해야 했다. 그때 학생 아주머니들과 우리들이 교실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지금까지 짠하게 생각난다.
 

   Q7. 교내 ROTC에 자원하고자 하는 여러 학우들이 있다. ROTC 장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몸가짐은 무엇인가?

   우선 ROTC를 적극 추천한다. 요즘 ROTC는 28개월을 하고 일반 병사로 가면 21개월을 하니까 7개월의 공백이 있다. 하지만 이 공백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다. 소대장을 하면 최소한 34명을 지휘하는데 34명의 소대원 부하들을 지휘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소대장 밖에 없다.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또 세상에서 자신의 진로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과를 성적에 맞춰 선택해 들어와 방황하는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적성이 맞는지 모르고 들어온 군대에서 오히려 장기복무를 해서 직업군인의 길로 선택할 수도 있다.
   ROTC 장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군인은 월급을 받는 사람들이 아니다. 군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받는 봉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안보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 할 수 있는 각오를 가지고 와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을 가진다면 ROTC장교가 되기 위한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다.
 

   Q8. 본인의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재밌게 잘 사는 것이 인생 목표다. 만약 물질적인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면 사람이 슬퍼지고 그것에 너무 얽매이게 된다. 때문에 나의 인생 목표를 재밌게 잘 사는 것으로 잡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저 사람이 목표 달성을 했어, 못 했어’ 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내가 재미있고 잘 살면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후배들에게는 앞으로 창창한 자기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토익을 몇 점 받고, 장학금을 얼마 받고, 학점은 몇 점 이상, 어느 기업에 취직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꿈을 펼쳐보기 전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높다.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하더라도 조그만 회사에 가 재미있게 회사 생활을 해서 내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이 더 좋은 기회일 것이다.
 

   Q9. 끝으로 인생 선배로서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30년이 지나 학생일 때를 돌이켜보니까, 학교 다닐 때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라.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온 정열을 쏟아서 하고, 공부할 때는 공부에 최선을 다하고, 놀 때는 노는 것에 최선을 다해라. 순간순간에 투자하는 것에 따라서 사람의 앞날이 좌우된다.

   군인이란 신분보다는 마음씨 따뜻한 아버지 같았던 임문균 동문. 그와 같이 항상 자신보다 국군장병들을 따뜻하게 생각할 줄 아는 장군이 있기에 우리 장병들이 힘든 군 생활을 보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수많은 장병들의 따뜻한 형이자 아버지가 될 임문균 동문을 응원한다.

글 / 사진 충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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