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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문학에 나타난 문화현상엘리트적 편협성 극복위한 대중의 물결
충대신문 | 승인 2014.11.10 11:33|(711호)

고급문화·저급문화의 2분법 지양
대중의 의식을 감지하여 대안마련

 자본주의 심화발전은 그 필연성으로 퇴폐적, 소비적 놀이 문화를 양상시키고 후기 산업 시대에 이르러서는 놀이문화 일반이 한국 문화현상의 전부를 대표하기라도 하듯이 일반 대중의 의식은 자리 잡혀가고 있다. 문화 영역뿐만 아닌 정치적, 경제적 선진효과를 독특히 해내고 있는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인해 저급하고 순간적 쾌락을 요구함으로 자아상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는 오늘날의 문화 생활 전 영역을 지배하게 되었다.신세대 문화라는 용어가 새삼 크게 대두되는 오늘날이 말해주는 것은 저급문화라고 통칭되던 키치적 요소가 예술 일반 속에서도 공공연히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현 상황을 보여준다는 것과 이것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창작대응을 예술계에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식과 선호를 추수적으로 쫓아가는 것이 아닌 그들의 물결을 감지해내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당위로부터 문학은 키치 전반을 재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을 요구한다.
 '키치'라는 용어는 '경박한것, 저속한 작품'이라는 뜻의 독일어로 원래 19세기 말 미술에서 나온 용어로 알려져 있다. 대중문화와 결탁한 조야하고 천박한 자료들을 소재로 쓸뿐만 아니라, 모조물이나 복제물을 원본인 양 착각하면서 누리는 대리충족의 환상이 그 핵이 된다. 소위 후기 산업사회라고 불리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모더니즘이 갖고 있던 엘리트주의에 대한 발발로써 대중성이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진지함에 대한 패러디가 시작되면서 키치적인 요소가 확산되고 이것이 또한 무비판적으로 대중문화에 이용되게 된다. '20세기에는 고유한 원본은 없다. 모든 것이 반복이고 모방이다'라는 주장 속에 상업주의와 결탁되어 대중의 환상과 욕망을 복제문화로써 충족시켜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읽히고 변화됨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이라면 그 대상의 새로운 물결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한다면 키치문화의 면밀한 분석, 종합과 함께 과정으로써 부정이 왜곡되지 않고 또 다른 긍정을 받아 안아야할 과제로써 다가오고 있다해도 진정 실언은 아닐 것이다.
 키치문화라는 새로운 개념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을 요구하는 것만으로 그치는 것을 아쉽게 생각하며 키치적 요소를 풍기고 있는 80년대 90년대의 대표작들을(황지우, 유하) 일부 선별하여 볼 수 있도록 한다.
a.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기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 앉는다.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 구나>
b. 여기는 초토입니다.

    그 우에서 무얼 하겠습니까.

    파리는 파리 목숨입니다.

    이제는 울음 소리도 없습니다.

    파리 여러분!

    이 향기 속의 살기에 유의하시압!
황지우 <에프킬라를 뿌리며>
 80년대 초 언뜻보면 도무지 시의 존재가 될 수 없을 듯이 보였던 안의섭의 만화나 신문 광고, 벽보, 비디오 등을 처음으로 시의 소재나 재료로 사용한 장본인이 시인 황지우다.
 키치적 요소를 갖는다는 것은 시인이 택한 자료들의 제목만으로도 또는 한 번의 해석만으로도 어디서 따온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대중적이고 낯익은 것들을 소재로 한다는 것이다. 즉 대중문화의 요소를 패러디한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실상 패러디가 인용하고, 희화시킴으로 풍자하는 문학 수법임을 알 것이라 생각되며 그러한 의미에서 위의 두 시는 시인의 패러디 수법이 키치문화와 깊게 결탁해서 우회적이면서도 역설적으로 현실의 정치성, 재중자아를 은근히 꼬집어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90년대 키치적 요소를 한 몸에 담고 있다는 유하의 작품을 살펴보자.
c. 까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에 자주 오는
    심혜진 닮은 기집애가 묻는다. 황지우가 누구예요?
    위대한 시인이야 서정윤씨보다두요? 켁켁…
    쩝쩝대는 파리크상, 흥청대는 현대백화점, 느끼한 면발 만다린 영계들의 애마 스쿠프, 꼬망딸레브 앙드
    레 곤드레 만드레 부띠끄 무지개표 콘돔 평화이발소, 이랏 샤이 마세 구정 가라, 오케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필 수 없는 나무다.
        *황지우의 시를 부분적으로 패러디하거나 인용했음을 밝혀둔다.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3>
 유하 시인의 경우 이 땅에서 키치문화의 본거지로 생각되는 압구정동이라는 특수 지역을 소재로 삼고 있다. 그것은 상당히 기발하고 의미있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시를 읽어봄으로 알 수 있지만 시속에 드러난 여러 가지 키치적 문화 요소는 그의 중심사상, 즉 그가 풍자하려고 하는 시대의 건너편과 깊은 관계를 갖고 있지 못하다.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일상의 키치요소를 일정한 긴장감과 거리감을 유지하며 날카로운 현실풍자로 이끌어냈던 황지우와 비교해 볼 때 그의 시는 전체가 키치문화 그 자체로만 넘실대는 느낌이 강하게 올 뿐, 비판적 거리나 긴장이 결여되어 있다.
 실상 키치적 요소를 문학 속에 도용하므로 획득할 수 있는 세대풍자는 사라지고 저급하고 소비적인 문화에 안주해버리고 말게 되는 것이다.
 키치문화를 만학에 패러디하므로써 대중들의 유토피아적 환상을 깨고 진정한 지상의 새 땅을 인식시키는 것이 올바른 문학의 위상이라고 할 때, 키치적 현실에 안주해버리고 마는 잘못된 형상은 자본체제 속에서 상업주의적 문학으로 전락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경박하다, 비속하다, 자신들의 고급한 인식론적 고민도 없이 현실에 대한 철저한 고뇌도 찾아 볼 수 없었다라는 식의 비평가들의 입을 막을 수 있는 힘을 잃게 될 것이다.
 키치에 대해 우리는 대중들의 통속성 저속성에 그저 함몰되고 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광범위한 양식으로 끄집어 내어 엘리트적 편협성을 극복하는 대중의 물결의 방향을 감지하여 그 현실의 모순을 통렬히 풍자해내고 새로운 대안까지 의문을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학은 언제나 선두에서 먼저 고민하고 새세계, 새로운 인식을 창조해내야 한다. 우리는 적을 알고 자신을 알 때 승리할 수 있다는 말을 놓치지 않는다.
 이것은 자본주의 일반의 모순을 뼈저리게 느끼고 그것을 부정의 토대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당위를 말한다. 첨예한 대립이 존재하고 그로인한 모순이 현대인들의 애정과 책임을 결핍시키고 있는 현실 상황 속에서 모순에 칼질을 해내는 무기로써의 문학을 잊어서는 안되는 경구가 아닐까.
 새로운 토대는 구토대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 부정과 부정을 통한 질적도약으로만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는 문화영역에서도 끊임없는 질적 도약을 위한 부정 다시 부정이 행해졌을 때 새로운 토대를 위한 몸부림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이희랑(국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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