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 카페에서 인터뷰하는 남명렬 동문(임학과 ·78)

 

배우 남명렬(임학과·78) 동문을 만나다

  중후한 목소리, 뚜렷한 이목구비, 배우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분위기. 배우 남명렬을 보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지난 18일, 배우 남명렬 동문이 모교를 찾았다.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일하다 20년 후 배우가 되어 지금은 그 회사 제품의 광고 모델이 되었다는 남명렬 동문을 만났다.

   Q1. 어떻게 배우의 길을 걷게 됐나?

   대전은 연극을 비롯한 많은 예술 분야가 다른 지역에 비해 그다지 활성화 되어 있지 않다. 대학교 입학 전까지는 정식 연극을 접한 적이 없었다. 대학교에 입학한 1학년 축제 때 연극 동아리 시나브로의 연극을 보게 됐다. 흥미가 생겨 시나브로에 가입했고, 재학 중 시나브로에서 활동했다. 졸업 후 연극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제약회사 영업부에서 회사 생활을 6년 정도 했는데, 나하고는 맞지 않아 무작정 그만뒀다.
   그만두고 뭘 할지 생각해보니 나는 연극할 때 가장 즐거운 사람이었다. 연극을 전업으로 삼기로 결심하고 대전 극단에서 2년 정도 공연을 했는데, 유명한 연출가 분이 내 연극을 보고 배역 제의를 하셨다. 불감청이면 고소원이라고, 서울에서 연극하는데 뜻이 있어 서울에 올라가 그때부터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Q2. 배우로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으로 연기를 하겠다고 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모한 결정이었다. 결혼도 했었고 부양해야 할 아이들도 있었다. 누구나 봐도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경제적 어려움이다. 그런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가지 잘한 선택이 있다면, 그 중 하나가 연극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Q3.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두 가지가 있다. 95년도에 <이디프스와의 여행>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고 실험적인 작품이라서 기억에 남는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주의, 리얼리즘 연극만 했었는데 그 작품은 연극을 바라보는 시각을 많이 넓혀준 작품이었다. 또한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주의 연극은 보편적인 사실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그럴듯하게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고려할 점이 많다. 그런데 실험적인 연극의 경우 연출가와 배우의 해석에 따라 그 생각을 무대에 펼치면 된다. 이전까지 사실주의 연극만 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표현해야 할지 머릿속에 인식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을 하면서 상상력과 사고의 방향은 예술가가 어떤 사고를 하는가에 따라 굉장히 다양하게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13년에 연극계의 가장 센세이션 한 작품 중 하나였던 <알리바이 연대기>라는 작품이다. 작가 겸 연출가인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아버지 인생 이야기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한국에서 살아온  삶의 여정과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아주 적절하게 엮어서 만든 작품이다. 그 작품을 보면 마치 대한민국 현대사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현대사 강의같은 연극이라 딱딱할 것 같지만, 그 안에 위트와 유머가 넘쳐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다.

   Q4. 대학생 시절에 어떤 학생이었나?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시나브로 활동이다. 군대 가기 전 1, 2 학년때는 아무 생각없는 학생이었다. 학점도 별로 좋지 않았다. 시나브로에 가입은 했지만 활동은 별로 한 것이 없었다. 2학년 때는 회장도 역임했지만 내가 뭘 해야 하는 지도 몰랐고 사람도 적었다. 2학년 마칠 때까지 작품도 무대에서 단 한번 했다. 유신정권으로 대한민국이 들끊는 시기였지만 나의 1, 2 학년 시절은 너무나 평온한 시절이었다. 제대 후 복학하고 시나브로 활동을 학업과 같이 했는데 2년 동안은 내 연극 인생에 많은 것을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열심히도 했었고 공연할 때 좋은 평가도 받았었다. 지역사회에서 배우로서의 어느 정도 입지를 갖게 될 수 있었던 것도 2년간의 시나브로 활동을 통해서라고 생각한다.

   Q5. 연극-드라마-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데, 어떻게 연습하는지?

   변신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대본 속에서 그 인물을 면밀히 분석한다. 삶에서 끄집어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니 나와 주변을 잘 관찰하려 한다. 책을 통해서 얻거나 또 다른 상상을 통해 얻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결정하면, 그 안으로 최대한 빨리 들어가 보려고 애를 쓴다. 인물 변신을 위해 일부러 과장하거나 설정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미묘한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제품의 품질을 결정짓는 것은 큰 덩어리가 아니라 그 덩어리 속에서의 세부적인 부분이다. 사회가 분화되고 발전될수록 그런 디테일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는 것처럼, 연기도 마찬가지다.

   Q6. 본인에게 연극이란 어떤 의미인가? 연극에 대한 본인만의 철학은?

   존재 증명의 행위라고 생각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었지만 남명렬이란 인간이 태어나서 50년을 넘게 살았다. 연극은 나의 존재감을 매일매일 확인시켜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연극은 타인보다 조금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연극을 통해서 나는 만족하고 행복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연극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다.

   Q7.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은?

   비교적 나이가 든 다음에 전업으로 연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햄릿이나 로미오, 에쿠스의 알런, 갈매기의 드레블레프 등의 젊은 배우라면 한 번쯤은 해보고 싶을 법한 역할들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세월을 되돌린다면 그런 작품을 해서 번민하는 젊은 주인공을 하고 싶다.
   왠지 작년부터 파우스트를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연극을 보면 늙은 파우스트와 젊은 파우스트가 나온다. 두 명의 파우스트를 모두 연기하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두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힘이 아직 남아 있다. 더 나이가 들면 하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못할 것 같다. 그러나 파우스트가 대작이라서 웬만한 제작비를 가지고 하기에는 쉽지 않고, 소망만 하고 있다.

   Q8. 본인에게 충남대란 어떤 의미인가?

   청춘이자 푸른 기억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한참 뒤에 바보 같은 대학생활을 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대학생활이란 권리는 무한하고 그에 비해 책임은 정말 적다.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한 시절은 없는 듯하다. 그 생활을 왜 4년 밖에 안했는지 후회스럽다. 연애도 좀 더 다양하게 해 보고, 휴학도 해 보고, 군대에 다녀와서 바로 복학하지 말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 충남대는 잊을 수 없는 청춘이다.

   Q9. 학교 후배들에게 선배로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늦어도 괜찮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시기는 중요하지 않다. 물론 늦어지면 그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해야겠지만 인생은 길다. 시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전업으로 연극을 시작한 것이 33살이고 서울에 올라간 것이 35살이다. 동료들에 비하면 10년 이상 늦은 셈이었다. 그 과정을 겪어내면서 오래 존재하는 사람, 결국 끝까지 남는 사람이 승리자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지 끝까지 남을 수 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결국 이도저도 아닌, 후회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세상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그 결과를 가지고 행동할 때 조금씩이나마 세상은 변한다. 지금 사회는 변화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젊은 사람들이 깨어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남명렬 동문은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무대에 설 수 있는 배우, 나이에 걸맞게 변화하는 배우, 조금 흐물흐물하지만 잊혀지지 않고 길게, 내가 원하는 것을 오래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며 “당연히 그에 맞는 가치를 유지하려 하고, 스스로 다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뤄 낸 남명렬 배우의 이면에는 뚜렷한 본인만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의 소망대로 배우 남명렬을 오래동안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글/최유림 기자 hahayoorim@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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