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세상은 미래를 입을 것이다

출처. SK Energy Company Blog(왼), 구글 글래스 소개영상(우)

   영화 『007』의 주인공 제임스 본드는 시계를 전화처럼 사용하고 메시지까지 출력한다. 2054년을 배경으로 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주인공이 길거리를 걸을 때면 각종 광고판이 그의 망막을 스캔해 개인정보와 심리상태를 분석한 뒤 주인공이 필요한 맞춤형 광고를 전달하고, 아이언맨은 슈트만 걸치면 지구를 구원할 최첨단 영웅으로 변한다. 이 같은 영화 속 장면들이 웨어러블 기기와 함께 하나 둘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상에서 옷과 액세서리 같은 형태로 자연스럽게 착용이 가능한 웨어러블 기기가 첫 선을 보인 것은 지난 1961년, 도박을 좋아했던 수학자 에드워드 소프(Edward Thorp)가 담뱃갑과 구두에 세계 최초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를 장착하고 카지노에 들어서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자그마한 크기의 이 장치는 카지노 룰렛의 회전 속도를 분석, 공이 안착할 위치를 예측해 도박사의 무선 이어폰으로 신호를 보내 승률을 높였다. 비록 불량한 의도에서 탄생했지만 웨어러블 기기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이후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혁신기술로 급부상하게 된다.
   MIT 미디어 랩에서는 웨어러블 기기를 “신체에 부착하여 컴퓨팅 행위를 할 수 있는 모든 전자기기를 지칭하며, 일부 컴퓨팅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까지 포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초기에는 착용하기 무겁고 투박한 형태, 제한된 기능 등의 기술적 한계로 시장 형성에 실패했던 이 기기는, 최근 배터리를 비롯한 하드웨어의 초소형화, 경량화, 디자인 개선, 다양한 기능 추가 등 웨어러블 기기 시장을 활성화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 일상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의 공통된 목적은 소유한 사람의 미세한 동작을 인식하고 주변 정보와 상황을 인지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외부 환경을 스스로 탐지하고 판단하여 필요한 작업을 자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능형 반도체 기술이 함께 뒷받침되는 것이 중요하다. 흔히, 웨어러블 기기는 사물들 간에 인터넷이 연결되어 정보를 교환하는 사물 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과 연결된 한 부류라고 할 수 있는데, IoT의 장점인 센서와 통신 기능을 연결하여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기기와 공유 또는 상호 작용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웨어러블 기기는 군사, 소방, 제조업 등의 특수한 목적을 위한 것부터 생활보조, 피트니스 헬스케어, 흥미 유발 등 일상생활에서의 편의제공까지 우리 생활 깊숙하게 관여되어 있다. 2012년 타임지에서 그 해의 최고 발명품 중 하나로 선정된 ‘구글 글래스’는 안경에 부착할 수 있는 소형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통해 정보 검색은 물론 화상 채팅, 비디오 촬영, 내비게이션, 음성 메시지 등의 기능을 수행하며 네트워크와 연결해 증강현실(사용자의 현실 세계에 3차원 가상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과 SNS 사용까지 가능한 서비스 구현을 시작했다. 기기를 착용한 상태에서 거리를 걸으면 마치 영화 속 아이언맨이나 터미네이터처럼 주변 정보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또 앞이 뚫린 양말과 같은 웨어러블 기기인 ‘유아 모니터(Baby Monitor)’를 아기의 발에 착용시키면 부착된 여러 가지 센서를 통해서 심박수, 혈중 산소농도, 체온, 수면상태, 자세 등을 측정해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말 못하는 아기가 왜 우는지, 어디가 아픈지 즉각적으로 모니터링해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해 일본 돗토리 대학에서는 헤어밴드 형태의 기기를 활용한 자동차의 생체 인식 보안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장치는 사람마다 특정 신호에 반응하는 뇌파의 형태가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뇌파를 측정하고 신원을 인식해 자동차의 보안을 강화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운전자가 음주 상태에 있거나 너무나 피로해서 졸음운전의 위험이 있을 시에는 이러한 뇌파 신호를 체크해 자동차가 동작하지 않도록 기능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삼성,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기업들의 제품들 그리고 펜던트, 의류, 신발 등의 웨어러블 기기가 저마다 성능을 진화시키며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4년 안에 시장 규모가 최소 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한편, 김대건 KISDI 통신전파연구실 연구원은 보고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동향과 시사점」을 통해 현 시점에서 향후 스마트폰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차세대 모바일 기술로 웨어러블 기기를 꼽으면서, 기기 사용 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스마트 안경의 경우, 사용자가 단말을 착용한 상태에서 바라보게 되는 장면들이 촬영되고 무분별하게 인터넷에 올려져 타인들과 공유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인에 대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 본인 또한 웨어러블 기기를 항상 착용하고 있는 만큼 사용자의 평소 모든 생활패턴 등이 기기에 저장될 텐데 만약 이 디바이스를 해킹 당하게 되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심각한 위협에 처하게 된다.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철학자인 노암 촘스키 MIT 교수도 구글 글래스가 사생활 침해로 인해 인간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디어와의 한 인터뷰에서 촘스키 교수는 “구글 글래스가 전체주의적 사고의 결과이자 마치 조지 오웰의 『1984』를 보는 듯하다”고 지적하며 사회, 윤리적 이슈에 대한 대안마련이 시급함을 역설했다.
   단순히 사람을 흉내 내는 수준을 넘어, 사람처럼 사고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하는 기기의 등장은 인간의 오랜 꿈이었다. 이를 방증하듯 스스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기기들은 다양한 영화와 소설의 모티프가 되어왔고, 인간의 신체로는 제한되었던 일을 알아서 척척 해결해주는 웨어러블 기기가 스마트폰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우리 일상에 자리잡은 것처럼 이제 대중화를 눈 앞에 두고 있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의 존재는 사회 전체를 벗어날 수 없는 감옥 즉 ‘감시사회’로 만든다. 하지만, 질 들뢰즈의 ‘통제사회’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안전이나 편리성 등의 이유로 감시와 통제를 스스로 원하는 사회이다. 통제 사회에서는 통제가 사회 전반에 너무나 만연해 있어 구성원들은 자신이 통제를 받고 있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많은 선택권을 갖고 살고 있다고 믿게 된다.


최영 대학원생 기자  now_and_here@hanmail.net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