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알아주는 것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
존 그린, 북폴리오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죽기 전에 세상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말이다. 이 격언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느끼는 불안감과 소망을 엿볼 수 있다. 누구든지 세상을 떠난 후 남은 사람들에게 잊힐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진짜 ‘죽는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잊히는 것이라는 말도 얼핏 들은 것 같다. 내가 떠난 후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을까봐, 한때 살았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지난 호(1085호) 청춘독서에 분명 ‘시한부 인생의 끝자락을 다룬 어떠한 창작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호에는 말기 암 환자들의 연애 이야기를 소개한다. 우리나라에 개봉돼 꽤 인기몰이를 했던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바로 이것이다. 처음 제목만 읽고서는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내용일 줄만 알았다. 그러나 첫 장을 넘기면서부터 병과 죽음에 관한 범상치 않은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지독한 병에 걸린 10대 연인들은 죽음을 가볍게 혹은 누구보다 아프고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16살의 헤이즐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말기 암을 앓아왔다. 앓다가 더 심해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주 강한 암을 앓았다. 폐에는 물이 차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산소탱크에 연결된 고무 튜브를 통해서만 숨을 쉴 수 있다.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자신의 폐가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진작부터 알았고, 각종 약물들로 이미 미룰 만큼 미뤄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아주 어릴 때부터 딱한 시선에 익숙해진 터라 ‘암적 부작용’이라던가 ‘암적 이득’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다.
   아동 암 환자들을 위한 기도 모임에서 흔히 하는 ‘병과 용감하게 싸웠다’는 표현을 가장 싫어하지만, 부모님의 등쌀에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한다. 그러던 중 그 곳에서 뼈에 암이 있는 매력적인 남자친구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난다.
   골육종을 앓아 다리 한 쪽을 잘라버린 어거스터스는 다리를 잘라내면서 암이 재발할 확률은 20%로 줄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가 뇌에 생긴 암으로 고생하다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다. 헤이즐과 마찬가지로 소아 암 환자를 향한 동정에 익숙하고, 세상이 소원을 들어주는 공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헤이즐과 어거스터스는 ‘죽음’이라는 교집합 안에서 빠른 속도로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 헤이즐이 성경처럼 여기는 소설 ‘장엄한 죽음’의 결말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마지막 순간이 마지막 순간인줄도 채 모르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랑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죽음을 향한 속도가 빨라진다. 그동안 아껴둔 최대치의 고통으로 떠밀려가며 헤이즐은 살고 싶은 이유를 어렴풋이 헤아린다. 사실 알아주길 바라고 있는 우주를 최대한 오랫동안 알아주고 싶은 것이다. 그 우주는 연인 어거스터스일 수도 혹은 헤이즐 자신일 수도 있다. 10대 청소년의 풋풋한 사랑이나 죽음을 앞둔 이들의 삶을 향한 간절한 외침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암 또한 내 몸의 일부라거나, 누군가의 무한대는 어떠한 무한대보다도 클 수 있다는 것, 나의 끝이 상처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주인공들의 몸부림은 분명한 울림을 준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u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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