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부재와 무관심 속 잊혀져가는 송전탑 반대투쟁

 

 
▲경북도청 앞에서 농성중인 삼평리 마을주민

   경상북도 청도군에 위치한 삼평리는 작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하지만 2009년, 345㎸ 북경남 송전탑 사업으로 인해 마을에 22~24호기 송전탑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삼평리 마을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2009년부터 현재까지 약 6년간 농성을 이어나가고 있는 삼평리 주민들을 직접 찾아갔다.

     청도 삼평리와 송전탑
   청도 삼평리는 기차를 타고 3시간을 달린 뒤 마을버스를 타고 1시간 가량 들어가야 하는 시골 마을이다. 조용한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 삼평리 농성현장에는 2차선 도로 한쪽에 엉성하게 지어진 천막이 있었다. 천막 옆 굳게 닫힌 공사장 입구에는 삼평리 주민들과 시민 단체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고 앉아 있었다.
   삼평리 주민들과 전국에서 모인 활동가들은 매일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있다. 아침 6시면 농성장 앞에서의 집회로 일과가 시작된다. 집안일이나 밭일 등을 틈틈이 하며 낮 동안 농성장을 지키고 저녁 7시 30분에는 촛불을 켜고 모여 하루 일상을 이야기하는 ‘삼평리 이바구’시간을 가진다.  
   2009년 3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에서 갑작스럽게 마을회관에 공사를 위한 설명회를 하겠다고 나타난 후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 마을 전체가 찬반으로 나뉘어 싸웠고 가족같던 작은 마을은 산산조각이 났다. 청도 345㎸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 이보나 상황실장은 “공사로 인해 가족관계가 깨진 할머니가 한 두 명이 아니다”라며 “어떤 할머니 한 분은 제사만 다가오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1년 넘게 우울증과 신경불안증 치료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춘화(63·여) 씨는 “송전탑 공사로 찬반이 나눠질 때 이장이 반대 주민들을 많이 협박했다. 소송을 거니, 벌금 많이 나오면 손자대까지도 갚아야 된다느니. 찬성, 반대로 나뉘고 서로 상처를 많이 줬다”고 말했다.
   망가진 건 마을 뿐만이 아니다. 농성을 이어가는 주민들의 일상 역시도 망가진 지 오래다. 이억조(75·여) 씨는 “농사는 6년 동안 거의 손도 못 댔다. 지금은 우리 할아버지가 하고 있는데 꼴이 엉망이다”고 말했다. 삼평리 마을 주민들의 주된 수입은 과실농사와 밭농사다. 농성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들의 다수는 농사일조차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공사 중 헬기로 자재를 운반하며 생기는 소음으로 인해 소와 개가 죽는 일도 일어났다. 송전탑 공사 시작 이후 삼평리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다.

    한전曰
    “우리는 법적 절차를 준수했다”

   청도 삼평리 송전탑 건설을 둘러싼 갈등에는 소통의 부재가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한전과의 마찰로 인해 발에 실금이 가 붕대를 감고 있는 삼평리 이은주 부녀회장(47·여)은 “한전은 모든 게 다 비공개”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전 측은 2006년 환경영향평가 당시 주민설명회를 개최한 후 3년 뒤인 2009년까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가 그 해 3월 마을회관에 치킨과 생필품 등을 가져다 놓으며 공사 시작을 알렸다. 이보나 상황실장은 “공시공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소수의 주민들만을 상대로 주민설명회를 했다”고 말했다. 이에 한전 상황실 관계자는 “법적절차는 모두 준수했으며 모든 주민설명회가 주민들의 100% 참여 속에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송전탑 위치 선정에 있어서도 한전과 주민간의 소통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삼평리에는 3개의 송전탑(22~24호기)이 들어선다. 그 중 공사가 완료된 22호기와 24호기는 마을에서 의미 있는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22호기가 들어선 노인봉은 예부터 비가 안 오면 기우제를 지내고 득남을 기원하던 장소였다. 24호기는 할아버지 당산나무가 있는 곳에 들어서 있다. 할아버지 당산나무는 마을에서 당산제를 지내왔던 곳이다. 뒤늦게 송전탑의 위치를 알게 된 주민들은 한전에 위치를 옮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위치보다 마을과 떨어진 곳에 공사할 예정이었던 23호기는 마을 제실을 피하기 위해 위치를 옮기며 마을을 관통하게 되었다. 농성장에 나와 있던 주민 A(78·여) 씨는 “제실은 죽은 사람을 위한 곳이고 우리는 산 사람들인데 산 사람 말을 듣지도 않는다. 죽은 사람 때문에 산사람 다 죽이려고 한다”며 울분을 내뱉었다. 
   22호기와 24호기의 공사가 끝난 현재, 반대 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23호기의 지중화 공사다. 그러나 한전은 지중화 공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한전 상황실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지중화는 힘들다. 지중화는 기술적, 법적, 경제적으로 검토를 해야만 가능하다. 지중화 공사가 안 된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몇 번이나 설명을 드렸고 지중화 공사를 한다고 주민들이 걱정하는 전자파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지중화 공사를 한다고 해도 철탑 두 개를 따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 개발 지사장은 지난 4월 25일 반대 주민 측에게 ‘협상을 통해 마을과의 합의가 모두 끝났다’고 전달했다. 그러나 반대 주민들은 합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이은주 부녀회장은 “(한전이) 협상 내용을 전부 공개하지 않아 협상 내용도 모르고 조건도, 과정도 모른다. 게다가 이미 찬성한 사람들과 협상해 합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반대 주민과는 어떤 소통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전 상황실 관계자는 “오히려 한전 측은 반대 주민을 계속해서 찾아가 소통을 하려 했으나 주민들이 농성 텐트에서 나오지 않는 등 대화의 창을 열지 않았다”고 입장을 전했다. 실제로 몇 번의 면담이 존재했으나, 반대 주민이 요구하는 공사 중단과 공식적인 설명회, 공청회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2차선 도로 한쪽에 위치한 농성 천막
노인봉에 위치하고 있는 22호기 송전탑
공사장 앞에서 면담 중인 삼평리 주민들
 자재 적재장소로 바뀐 삼평리 평화공원

   경찰曰
   “인권 따위는 필요 없다”

   소통의 부재는 인권문제까지 야기했다. 이보나 상황실장은 “이곳에서 인권침해는 일상다반사”라고 말했다. 농성장에 나와 있는 주민들 중 많은 사람들이 파스를 붙이거나 붕대를 감고 있었다. 이은주 부녀회장은 “공사자재가 들어갈 때 농성이 극렬해 할머니들이 실신하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다. 공사차량 때문에 구급차 진입이 늦춰져 쓰러진 할머니가 도로 위에 20분 가량 방치돼 있던 적도 있다. 그럼에도 한전과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최계향(78·여) 씨는 “경찰들이 안아서 끌어내고 손목, 발목을 잡고 끌어내는데 농성 시작하고부터는 매일 같이 병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경찰의 진압과정에서 미란다 원칙 고지는 지켜지지 않았으며 활동가들의 핸드폰을 압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강경진압이 논란을 빚자 청도경찰서 측은 강경진압을 방지하겠다며 아무 이유 없이 주민들을 구급차에 강제로 태워 병원으로 이송시키기도 했다.
   지난 7월 21일 공사가 재개된 후에도 인권문제는 계속해서 대두되고 있다. 이보나 상황실장은 “38도가 넘는 날씨에 연세가 많은 할머니들이 은박롤 하나 깔고 아스팔트 위에 있어 햇빛 가리개를 설치하려 했다. 그러나 기동대를 몰고 들어온 청도경찰서는 이를 제지했다. 인권침해로 인권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하자 청도경찰서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해. 나는 인권 따위는 필요 없어’라고 말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삼평리 농성장 뿐아니라 경상북도 도청에서 농성 중인 주민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김관용 경상북도 도지사는 한 언론매체와 인터뷰 당시 청도 송전탑 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후 주민들이 도지사를 찾아갔지만 한전과의 협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협상 다음날 제 2회의실에서 면담을 기다리고 있던 주민들을 퇴거불응죄로 끌어내기까지 했다. 삼평리 주민 김춘화 씨는 “갑자기 경찰들이 들이닥쳐서 정신없이 끌려 나왔다. 끌어내는 과정에서 팔이 다쳐 응급실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하여 한전 측과 청도경찰서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한전 상황실 관계자는 “그 부분은 경찰과 관련된 일이니 뭐라고 말하기 애매하다”고 답했고 청도경찰서 측은 계속된 인터뷰 요청에도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마지막 남은 23호기도 공사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한전 측은 이르면 8월 말에 공사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이보나 상황실장은 “철탑이 들어선다고 송전탑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선례로 철탑을 세웠다가 다시 뽑고 지중화 한 지역도 존재한다. 할머니들이 먼저 손을 놓지 않는 이상 우리 활동가들이 손 놓을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르신들이 이렇게 고생하기에 지금의 세대가 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피눈물 흘려가며 싸우는 현장에 와봤으면 한다. 이러한 현실을 알고 한 번쯤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 / 곽효원 수습기자 kwakhyo1@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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