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읽히는 신경장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이마고
   아내를 모자로 착각했다니? 언뜻 현대소설의 제목 같다. 마침 책의 표지에는 난해하고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어 학술적인 저서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정말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환자에 대한 임상 보고서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리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남자, ‘왼쪽’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여자 등 다양한 신경장애를 앓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신경학 분야에서 엄지손가락으로 꼽힌다는 올리버 색스는 그동안 만났던 환자들의 증상을 상실, 과잉, 이행 등으로 나눠 정리했다. 20여명의 다양한 신경장애 환자들이 앓은 생소한 증후군들과 믿을 수 없는 증상들은 그렇게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책은 크게 상실, 과잉, 이행, 그리고 단순함의 세계로 나눠져 있고, 각 장에 맞는 환자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환자들의 사례는 의사(저자)와 환자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환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신경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해한다. 의사 역시 처음 겪는 사례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한다. 검사 과정에서 환자들은 불쾌해하고 당혹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아직도 30년 전의 일은 고스란히 기억하지만 불과 몇 초 전의 일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노년의 환자는 몇 초전에 자신이 휘갈긴 필기에 당황스러워 한다. 손의 감각 기관은 고스란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도 있다. 반듯하게 걷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점잖은 할아버지는 사실 몸이 20도 기운 채로 다니고 있었다. 이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의사는 적잖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성공적으로 치료한 이들을 진심으로 축복하기도 한다.
   신경장애 혹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증상 때문에 애를 먹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 장애가 꼭 부정적이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한 가지 사례로 소개된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사람들의 억양을 통해 거짓을 알아낸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말의 표정으로 소통한다.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태도와 표정, 말의 억양으로 거짓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대통령의 연설을 들을 때 모두 웃음이 터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말의 표정을 가려내는 이들에게는 교묘한 논리로 무장한 어떤 연설도 힘을 쓰지 못한다.
   도무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증상이 일상인 이들이 있다. 신경계의 어느 조그마한 한 부분이 잘못돼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올리버 색스는 이런 이들의 터무니없는 것 같은 얘기를 들어주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려 한다. 개중에는 인식불능증을 딛고 일어서 장님 조각가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자도 사소한 신경장애가 있었다고 들은 것 같다. 올리버 색스는 이렇게 신경장애를 끝없는 관심으로 보듬어 새로운 삶으로 재탄생시켜, 한계를 극복하게끔 했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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