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B급 문화의 반란

   최근 모 식혜회사의 광고가 화제가 됐다. 의리 이미지의 대표주자인 배우 김보성이 나와 “우리 몸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아메‘으리’카노 대신 ‘으리’집 ‘으리’음료인 신토부‘으리’의 식혜를 마시자”고 말하는 광고다. 다짜고짜 김보성이 외치는 의리와 식혜는 아무 연관성이 없지만 김보성하면 떠오르는 의리를 이용한 말장난은 어이없는 웃음을 자아낸다. 밑도 끝도 없는 말장난을 이용한 광고지만 실제로 의리 광고 이후 해당 제품의 매출이 크게 증가한 것을 보면 이런 밑도 끝도 없는 ‘병맛’광고에 대중이 반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에서 파생된 하위문화인 병맛 코드는 어떻게 모니터에서 나와 스크린, 브라운관에까지 번진 것일까.

 

사진 출처. 1.팔도 홈페이지 2.무한도전 홈페이지

   양면적인 의미를 지니며 빠르게 확산
   병맛은 인터넷에서 생긴 유행어로 어떤 대상의 맥락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병맛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인터넷 커뮤니티 DC인사이드의 카툰연재 갤러리에서 연재되던 <정재황>이라는 만화에서 였다. 무악공고라는 닉네임의 작가가 실제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 만화인 <정재황>을 그리며 병맛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림체나 이야기 구조는 조악했지만 그래서 더 웃긴 <정재황>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사람들은 너도 나도 병맛 만화를 그렸다. 하지만 병맛 만화가 지나치게 범람하면서 병맛의 의미는 네티즌에 의해 어떤 대상을 조롱하거나 수준 이하임을 비난하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고보면 병맛이라는 단어가 인터넷 만화에서 제일 처음 사용되긴 했지만 병맛 코드의 특징인 허를 찌르는 의외성과 어이없음을 자아내는 허무성은 대중문화에서 계속 사용되어져 왔고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코드들이었다. 그래서 그 전까진 확실히 명명하지 못했던 독특한 소재나 컨셉도 병맛이라고 부르며 병맛은 양면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가령, 내용은 없으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사람들을 낚는 인터넷 낚시성 기사를 병맛 기사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적인 조롱의 의미로, 개그프로그램의 인기코너들의 유행어를 사용한 맥락 없는 개그를 병맛이라고 부르는 것은 희극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며 다양하게 쓰였다.
   ‘평균 이하 여섯 남자들의 무모한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출발한 <무한도전>의 웃음 코드 역시 병맛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무모한 도전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진짜 선거 못지 않게 뜨거운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낸 선거 특집까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했던 소재를 사용해 매번 웃음을 준다. 브라운관뿐 아니라 스크린에도 병맛이 쓰인다. 그 예로 황당한 병맛 설정으로 점철된 영화 <롤러코스터>를 들 수 있다.

사진 출처. 3.롤러코스터 공식홈페이지 4.까탈레나 MV

   문화콘텐츠 살찌우는 병맛 

   아이돌의 홍수 속에서 꾸준히 독특한 콘셉트로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그룹 오렌지 캬라멜은 최근 초밥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을 모티브로 한 병맛 콘셉트로 그 전보다 한층 진화된 병맛을 뽐냈다. 오렌지 캬라멜이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난해한 콘셉트를 조롱했지만 점차 그 난해함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대중들은 이제 오렌지 캬라멜이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한다는 소식이 나오면 ‘이번에는 어떤 병맛 콘셉트로 나올지 기대된다’는 반응까지 보일 정도다.
   박지종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들이 적극적으로 병맛이라고 불릴만한 내용이 담긴 콘텐츠를 수용하고 즐기고 있으며, 직접 생산까지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며 “병맛 코드라는 것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과거부터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형태를 변화하여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병맛 코드가 대중 문화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이끌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그는 “병맛 코드가 문화콘텐츠의 질적 하락을 이끈다기 보다는 오히려 색다른 문화적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질을 떠나 문화콘텐츠 자체를 풍성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웰메이드만 각광받던 시대는 지났다. 맥락 없는 병맛 코드는 인터넷에서 파생된 B급 문화지만 빠른 시간 안에 그 어떤 웰메이드보다 강한 인상을 대중에게 심어주며 사랑받고 있다. 조롱과 희화를 모두 아우르는 병맛을 이용한 다양한 대중문화는 앞으로도 그 활용 범위를 점차 확대해가며 계속 발전해나갈 것이다.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