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부천시 고강복지회관

   그가 가장 싫어하는 계절은 봄이다. 그가 하는 일을 고려한다면 당연히 여름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정신적 고통을 간과하는 것이다. 그의 정신을 들쑤시는 것은 아무래도 봄이다. 그는 놀이공원에서 인형 탈을 쓰고 춤을 추고 손님들과 사진을 찍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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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계기는 평생을 괴롭힌 화상 자국 때문이었다. 평생을 공사판 위에서 일했던 아버지가 그에게 남겨준 유일한 것이었다. 흉터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1999년 여름에 이른다. 밀레니엄 시대가 열리기 5개월 전은 지난 연도의 여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몹시 더웠고 습했다. 장마와 폭우가 이어졌으며 밤마다 모기들로 인해 밤잠을 설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는 자상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무뚝뚝하지도 않았다. 그저 남들처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한여름에도 전국의 공사장을 뛰어다녔다. 아버지가 마른 수건으로 땀을 훔쳐내도 이내 땀은 송골송골 온몸에 맺혔다. 땀에 흠뻑 젖은 티셔츠는 아버지의 검은 유두를 가려주지 못했다. 땀에 전 티셔츠는 의복의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검은 유두는 여름만 되면 더욱 도드라졌다. 아버지는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느라 얼굴이 벌겋게 익었고 겨울에는 추위에 견디느라 상기되었다.
   사건이 있던 그 날은 아버지가 몇 달 만에 얻은 쉬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거실에서 선풍기를 켜 놓은 채 낮잠에 빠져있었다. 어머니도 최대한 숨소리를 죽인 채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세 식구를 위해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선풍기도 남편에게 반납한 채 뜨거운 불 앞에서 닭볶음탕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닭을 제외한 나머지 육류는 거의 먹지 않았다. 아버지가 삼겹살을 처음 먹은 것은 20살이 되던 해였다. 그 당시에도 아버지는 k 시에서 공사장에 다녔다. 반장은 가끔 목에 먼지를 빼야 한다며 인부들에게 삼겹살을 사주었다. 그래 봤자 시장에서 사온 싸구려 돼지고기였다. 상하기 직전의 돼지고기라 주인에게 말만 잘하면 거저 주기도 하는 상태의 고기였다. 그래도 인부들은 한 달에 한 번 돼지고기를 주는 날을 좋아했다. 인부들 역시 그 돼지고기가 썩 좋은 품질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대부분 혼자 사는 이향민이라 함께 식사한다는 자체만으로 만족했다. 거기다 소주까지 겸하니 인부들에게는 나름 괜찮은 휴식이었다. 아버지는 그때 처음으로 삼겹살을 먹었다. 시골에서 자라온 아버지는 돼지고기를 오로지 삶은 것만 먹었다. 돼지고기를 구워먹는다는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다. 삶은 돼지고기는 늘 비릿한 냄새가 나 잘 먹지 못했다. 돼지고기를 잘 먹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고 반장은 시골 촌놈이라고 핀잔주며 닭볶음탕을 시켜주었다. 닭볶음탕은 매콤하면서도 달콤해 아버지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허옇게 탱탱 불은 백숙만 보다가 한입에 넣기 좋게 썰어진 닭고기를 본 순간 아버지는 놀라웠다.
   쉬는 날만 되면 주야장천 닭볶음탕을 먹는 아버지 때문에 그는 유치원을 다닐 때부터 닭이 물리기 시작했다. 치킨도 아니고 백숙도 아닌 오직 닭볶음탕. 감자인 줄 알고 씹으면 당근이었고, 닭고기인 줄 알고 씹으면 닭 뼈였다. 뭐가 뭔지 잘 구별도 안가는 닭볶음탕을 아버지가 왜 좋아하는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가 먹기에 맵기까지 해 그는 더욱 닭볶음탕을 싫어했다.
   쉬는 날 없이 일한 아버지의 모처럼 만의 휴식. 어머니가 꽁꽁 언 닭을 썰자 칼과 도마가 부딪치며 마찰음이 생겼다. 아직 8세밖에 되지 않은 그에게는 소음에 불과했다. 짜증이 난 그는 어머니 다리에 매달려 떼를 썼다. 요리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도통 닭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는 닭볶음탕이 먹기 싫다며 어머니에게 소리를 빽 질렀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바닥에 드러누워 울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휴식을 무참히 박살 낸 그에게 격한 감정이 일어났다. 불행한 것은 아버지는 그가 어리다는 사실을 가끔 잊어버리곤 한다는 점이다. 일순간에 고요한 집안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활활 타올랐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 이미 그의 눈은 시뻘건 채 눈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피곤함에 쌓인 아버지는 자신에게 덮친 분노를 다스리지 못했다. 몇 달 동안 단 하루의 휴일도 허락하지 않았던 공사장 반장과 몇 푼 되지도 않는 임금을 주면서도 언제나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니던 사장이며, 공사장에서 일한다고 못 배운 사람 취급하던 사람들까지. 그동안 아버지를 억눌렸던 모욕감이 그의 울음소리에 인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행은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아버지 내면에서 터져나간 극도의 분노는 터진 댐처럼 막을 수도, 수습할 수도 없는 방대한 양이었다. 아버지는 일단 손에 잡히는 것부터 던지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아버지의 머리맡에 놓여있던 물컵을 던졌다. 그래도 화를 누그러뜨리지 못했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 유일하게 시원함을 선물했던 낡은 선풍기도 던졌다. 프로펠러가 요란하게 돌더니 이내 고꾸라지듯 부서졌다. 그러고도 화를 삼키지 못하고 씩씩댔다. 아버지는 마당으로 뛰쳐나가 다리미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가 말릴 새도 없이 아버지는 다리미를 그의 얼굴에 문질렀다. 순간 그의 살점이 시뻘겋게 익어 올랐다. 그의 얼굴이 서서히 녹아갔다. 단순히 겁만 주려고 했던 아버지는 놀라 다리미를 떼어냈지만, 그의 얼굴은 다리미가 토해놓은 열기로 인해 오른쪽 얼굴이 흉측하게 부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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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미는 어머니가 결혼할 때 가져온 몇 안 되는 혼수 중 하나였다. 연애 시절에도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젠가는 아버지도 남들처럼 양복을 입고 출근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아버지만큼 성실한 사람도 드물었다. 어머니와 연애할 때도 공사장에서 아버지를 호출하면 당장 일터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공사장으로 가도 속상해하지 않았다. 고아로 자란 어머니는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결혼을 약속하고 난 뒤 더 열심히 공사장을 나가는 아버지를 볼 때마다 흐뭇했다. 월급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일 때마다 가난도 쉽게 떠나갈 것 같았다.
   다리미는 장밋빛 같은 미래를 꿈꾸며 산 물건이었다. 매일 저녁 아버지의 해진 러닝셔츠와 팬티를 다릴 때마다 어머니는 행복했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어머니는 다리미를 놓지 않았다. 곧 다가올 남편의 양복을 다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10년 가까이 쓴 다리미는 점차 쇠약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원을 켜도 다리미는 빨리 달구어지지 않았다. A/S를 맡기려 했으나 이미 보증기간을 한참 지나 수리비를 제법 들여야 했다. 그래서 햇빛이 좋은 날이면 어머니는 마당에 다리미를 놔두었다. 햇빛에 달궈진 다리미에 전원을 켜면 새 다리미처럼 금방 달구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사건이 있던 그 날도 다리미를 바깥에 놔두었다. 아버지의 속옷과 그의 옷을 다려주기 위해서였다. 냄비 안의 닭이 익을 동안 다림질을 할 생각이었다. 다리미가 그의 얼굴로 향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다리미가 그의 얼굴에 닿은 순간 아버지의 분노는 사그라졌다. 분노가 사라지자마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주홍 글씨처럼 낙인찍힌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스스로 만든 덫에서 빠질 용기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의 얼굴을 보자 경악했다. 그리고 바로 119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살이 파고드는 고통에 어린 그는 울부짖었다. 아버지는 동요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겁을 먹고 있었다. 평생 자신을 원망할 그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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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독립하기 전까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가장 오래전 기억의 순간부터 아버지는 폭력과 떼어낼 수 없었다. 폭력을 겪어보지 못한 자에게는 폭력은 공포 그 자체이겠지만, 생의 가장 최초의 기억부터 폭력인 사람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못하다. 그저 지루할 만큼 긴 복종의 시간일 뿐이었다. 폭력의 대물림 앞에서 아버지는 깊은 한숨밖에 쉴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아버지는 그를 자연스럽게 피하기 시작했다. 그가 입원한 병원에 찾아갈 마음마저 사라져갔다. 그에 대한 미안함보다는 무서움이 그의 발걸음을 늘어지게 붙잡았다.   
  아버지는 조부의 말년이 얼마나 쓸쓸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조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건 폭력의 당연한 말로처럼 보였다. 머리 큰 자식들은 독립할 기회만 엿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조부의 곁을 떠났다. 조모는 조부의 곁을 마지막까지 남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식들이 조부의 곁을 모두 떠나자 돌연 사라졌다. 동네에는 조모가 서방질하러 떠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불확실을 확실로 확정하고 싶은 늙은 남자의 바람에 불과했다. 불확실한 것만큼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도 없었다. 떠나간 부인을 기다리다 결국 술로 인생을 마감한 조부의 장례식은 침묵만 흘렀다. 조부의 술친구 몇 명만 그의 빈소를 다녀갈 뿐 아무도 없었다. 장남인 아버지만이 우두커니 조부의 장례식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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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이후 아버지는 수입 대부분을 병원비로 지출했다. 그러나 솜털이 뽀송뽀송했던 그의 얼굴은 도무지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이 지날수록 그의 고통을 커졌다. 계속되는 수술과 치료의 반복. 그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놓는 것처럼 어리석어 보였다. 그는 매일 화상을 소독할 때마다 울부짖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아버지는 담뱃불로 자신의 얼굴을 지졌다. 상처로 가득한 자신의 얼굴을 봐야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질 것 같았다. 아버지의 얼굴에도 둥근 화상자국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화상 자국은 그의 얼굴을 점령해갔다. 그를 처음 본 사람은 그의 상처에 시선을 압도당했다. 사람들은 그의 동공이 남들보다 조금 더 크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사고가 있기 전, 그는 유달리 큰 동공 덕분에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어딜 가나 그의 눈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무엇을 갖고 싶을 때 자신의 눈망울을 이용하면 어른들이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눈망울을 무기 삼아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의 눈은 단지 다이아몬드 옆에 있는 양식 진주 일뿐이었다. 사람들은 죄다 그의 얼굴을 사선으로 그어놓은 화상 자국만 바라보았다. 상처는 그를 점점 어두운 곳으로 몰아가게 했다. 그는 길을 잃어도 아무에게도 물어보지 않았다. 학창시절 내리 명확한 이유도 없이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거울 앞에 설 때마다 밀려오는 치욕감을 그는 차마 떨쳐내지 못했다.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무렵부터는 거울을 보지 않고 살았다. 30도가 오르내리는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착용했다. 움직일 때마다 그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에 늘 땀띠가 나고 진물이 반복되었다. 갈수록 상처는 흉물스럽게 변해갔다. 해가 바뀔수록 마스크는 벗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여름을 가장 싫어했다.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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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는 인형 탈 아르바이트생 구하기가 힘들었다. 여름에는 일당도 더 많이 주고 교대시간도 훨씬 짧지만, 일할 사람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여름에 겨울 패딩 같은 털옷을 입는 것을 사람들은 피했다. 그러나 그는 여름에도 일했다. 단순히 돈을 더 주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여름은 인간의 한계를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들 신이 나게 놀기 위해 놀이동산을 찾았지만, 더위에 지쳐 짜증을 냈다. 끝없이 이어진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줄, 그늘 밑 벤치마다 사람들로 가득 차서 앉을 자리 하나도 없는 놀이공원. 날씨가 더워질수록 연인들은 예민해지고, 아이들도 더 많이 울었다. 이로써 여름에 일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계절이었다. 그는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것을 봐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장편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본 것처럼.
   그러나 봄만 되면 사람들은 길바닥으로 뛰쳐나오는 것 같았다. 놀이공원은 계절마다 퍼레이드를 준비하는데 힘썼지만, 그래도 가장 신경 쓰는 건 봄이었다. 봄은 한 해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겨울 동안 추운 날씨 때문에 오지 않은 손님들을 본격적으로 되찾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봄이 되면 새로운 인형 탈을 받았다. 춤은 지난해보다 더 유치해졌다. 그러나 어린아이부터 늙은 사람까지도 유난히 유치한 것에 더 크게 반응했다. 그가 유치한 춤을 출수록 사람들은 다가왔다. 사람들은 인형 탈속에 가려진 그의 얼굴을 상상도 못한 채 그와 함께 추억을 남겼다. 하지만 유치한 춤 때문에 그가 봄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봄은 확실히 다른 계절과 비교되는 분위기가 있었다. 첫 데이트, 첫 만남, 첫 시작, 첫 나들이. 모든 것이 처음인 계절이었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 사람들 사이에는 설렘이 곳곳에 포자처럼 분분히 퍼졌다. 그는 두꺼운 인형 탈을 입고 있지만 온몸으로 사람들의 설렘을 느꼈다. 그동안 받았던 무참한 치욕들과는 사뭇 달랐다. 무표정으로 있어도 사람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느껴졌다. 크게 웃지 않아도 그것은 은근하게 퍼져나갔다. 인형 탈을 쓴 그를 본 사람들은 다들 상냥하게 다가왔다. 팔짱을 끼거나 덥석 안기기도 했다. 처음 본 사람들의 살갗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기쁨이 묻어있었다. 사람들의 호의적인 반응은 오히려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일을 그만둘까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는 편의점, 패밀리 레스토랑, 주유소, 카페에도 이력서를 낸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쳤다. 그는 사장들 눈에 얽혀있는 암호 같은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너의 화상 자국은 손님들에게 혐오감을 준다.
 
   그는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언제까지나 어머니 밑에서 빌붙을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의 얼굴에 화상 자국을 남겨준 채 사라졌지만, 다달이 돈을 부쳤다. 어머니는 항상 그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체 잔소리가 없었다. 고등학교 첫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자퇴를 하겠다고 어머니께 일방적으로 보고했다. 
   -네가 원하면 그렇게 해라.
   어머니는 그의 손을 잡고 교무실로 향했다. 담임선생님의 계속된 설득에도 어머니는 그의 손만 잡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담임선생님은 그의 자퇴를 허락했다. 텅 빈 운동장을 걸어오면서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날 어머니와 그는 외식 했다. 워낙 사람들의 시선들을 껄끄러워했던 그는 외식을 피했었다. 그러나 그 날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식당에 가게 되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한산한 시간이라 삼겹살 식당은 조용했다. 어머니는 불판 위로 고기를 올렸다. 그도 익어가는 고기만 볼 뿐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 침묵이었다. 침묵을 먼저 깬 건 그였다.
   -고기 더 시켜도 돼?
   -그래. 이건 내 돈이 아니라 아버지가 부쳐준 돈으로 사는 거야.
   어머니와 그가 식사를 마친 뒤 어머니는 그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집 도착할 때까지 모자 사이에는 여전히 침묵이 흘렀다.
   -난 다시 일하러 가야 해.
   어머니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버스를 한 시간 타고 다시 지하철로 몇 정거장을 갈아타야 도착할 만큼 먼 거리였다. 그는 떠나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점처럼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어깨가 잠시 들썩였다. 어머니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어머니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멈췄다. 어머니는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도 어설프게 손을 들어 어머니를 배웅했다. 
 
   어스름한 새벽빛이 방안을 비추면 어머니는 이불에서 겨우 나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혹시나 그가 깰까 봐 불도 켜지 않고 옷을 입었다. 아침밥 대신에 전날에 끓여놓은 숭늉을 그릇에 조금 따라 마시고 집을 나섰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어머니는 신발을 벗고는 한참을 현관 앞에 앉아있었다. 구부러진 허리를 한 어머니는 큰 민달팽이 같았다. 어머니의 등을 살짝 밀면 현관문을 박차고 영원히 굴러갈 것처럼 어설프게 보였다. 어머니의 집은 어디로 가고 민달팽이가 되었을까?

   어느 순간 그는 가만히 집에 있는 것이 불편했다. 어머니는 자퇴하기 전과 행동이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새벽에 나가서 저녁 늦게 오는 어머니를 어쩔 수 없이 지켜보기란 갈수록 불편해졌다. 텔레비전을 종일 틀어도 집 안을 채우고 있는 침묵을 깨뜨리기란 쉽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집에 상주한 침묵은 좀처럼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창틀에 낀 먼지를 청소하고 현관문의 먼지를 쓸어보아도 좀처럼 집안 분위기는 소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이 집은 침묵이 진짜 주인이었음을 깨달았다. 침묵이 지배하는 집에 있을 바에야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은 나날이 견고해졌다. 그는 스스로 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집을 되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파트가 어머니의 집일 수도 있다. 과연 어머니 혼자 일해서 집을 살 수는 있을까? 답은 빨리 나왔다. 어머니 혼자서는 아파트를 살 수 없다. 전세를 구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는 집을 둘러보았다. 지난여름에 생겼던 곰팡이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아 벽 구석마다 푸르뎅뎅하게 흔적을 남겼다.
   -아파트는 환기도 잘 돼서 곰팡이도 안 생긴데. 때 되면 벌레 생기지 말라고 단체로 소독도 한다더라.
   언제가 어머니가 한 말이 문뜩 떠올랐다. 아파트. 아파트에서 살고 싶어졌다. 화상 자국이 생기기 전 친구 집에 간 적이 있었다. 친구의 이름은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아파트 7층에 살았던 것은 기억이 난다.
   그의 집은 일부러 그렇게 지은 듯 마당 한쪽에만 햇볕이 들어왔다.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로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햇볕이 들지 않아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장마가 지나가고 나면 집안 곳곳에는 곰팡이가 피어났다. 물먹는 하마를 집안 곳곳에 놔둬도 소용이 없었다. 물먹는 하마가 아무리 습기를 먹어도 집은 또다시 습기를 생산했다. 늘 그런 집에 살았던 그는 친구의 집도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친구의 집에 들어선 순간 베란다 큰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이 거실은 물론 방안 곳곳을 파고드는 것을 보았다. 친구는 햇볕이 성가신지 베란다로 달려가 급히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래도 블라인드 틈새로 새어나오는 햇볕이 집안에 들어왔다. 집 안은 햇볕으로 말린 빠삭한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집에서는 한 번도 맡은 적이 없는 냄새였다. 뽀송뽀송하다 못해 건조함까지 느껴졌다. 그는 친구가 자기 방이 있다는 사실보다 햇볕이 잘 들어와 해가 지기 전까지 불을 켜지 않는 것이 더 놀라웠다. 친구와 함께 컴퓨터게임을 하며 놀았지만, 마음 한쪽이 왠지 뒤숭숭했다. 슬픔과 분노 사이에 미묘한 감정을 그는 모공 하나하나로부터 느끼고 있었다.
   분명 어머니도 아파트에 간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매일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도 곰팡이가 생기는 집. 그 집조차 자신의 소유가 아니었다. 그것들은 어머니의 삶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불면증, 무기력증, 관절통, 식욕감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에게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이런 것에서부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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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봄은 사람들의 설렘이 최대로 커지는 시기였다. 손을 잡고 나들이에 나선 가족들과 한 몸처럼 붙어 다니는 연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마음은 어쩐지 미적지근했다. 그는 서둘러 대기 중인 퍼레이드에 끼어들어 갔다. 퍼레이드 끝에 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길 양쪽으로 붙어서 퍼레이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어색한 남미의 강렬한 음악이 시작되자 퍼레이드 앞 쪽에 외국 여자 무용수들이 연신 몸을 흔들어댔다. 휘황찬란한 장식들도 떨어질 듯이 흔들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퍼레이드로 향했다. 음악 소리보다 더 큰 환호 소리가 들리자 괜히 그는 움츠러들었다. 뒤에 따라오는 인형 탈을 쓴 사람들은 적당히 몸을 움직여야 했기에 그 역시도 춤 아닌 춤을 춰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퍼레이드에서 그를 주목시킨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꺼내서 퍼레이드를 찍었다.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고 무용수들은 더 신이 나게 춤을 췄다. 그는 춤을 추면서도 퍼레이드가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10분간의 퍼레이드가 끝나자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주인공은 다시 인형 탈을 쓴 사람들이었다. 그 역시 몰려드는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인형 탈 속 그의 얼굴은 담담했지만, 인형의 표정은 이가 드러나도록 웃고 있었다. 그가 정신없이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익숙한 중년 남자가 보였다. 중년 남자의 얼굴을 다시 보려고 하던 찰나 어린아이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아이를 안아 들고는 아이의 엄마 앞으로 가서 기꺼이 사진 모델이 되어주었다. 아이를 다시 내려놓고 중년 남자를 찾았을 때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였다.
 
 
   교대시간이 되자 그에게도 잠깐의 휴식이 생겼다. 그는 탈의실 옆 벤치에 앉았다. 놀이공원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땀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래도 그는 인형 탈을 벗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는 더위보다 더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여전히 저 멀리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남미음악이 뒤섞인 소리가 들렸다.
   -이거 먹고 해라. 아들.
   그는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의 옆자리는 아까 본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남자의 얼굴에는 둥글게 패인 상처로 가득했다. 그는 남자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곧 중년 남자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가 난 뒤 십여 년 넘게 못 본 아버지라 낯설었다. 그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멀뚱히 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 옆에 음료수를 놓았다.
   -네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아무거나 골랐다.
   아버지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그는 멀어지는 아버지를 지켜보았다. 갑자기 아버지는 거대한 닭으로 변했다. 붉은 닭 볏이 아버지가 걸을 때마다 덜렁거렸다. 그가 다시 눈을 비비고 쳐다보았다. 다시 아버지를 보자 민달팽이로 변했다. 그는 인형 탈을 벗어 던지고 다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그의 얼굴을 감쌌다. 아버지는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준 음료수의 뚜껑을 땄다. 쏴아-. 탄산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며 천천히 음료수를 삼켰다.

   일을 마치고 그는 집 근처 슈퍼에 들렀다. 저녁 시간이 지난 후로 슈퍼 안은 한산했다. 그는 육류 판매대로 갔다. 목이 댕강 잘린 많은 생닭이 냉동고에 잠들어있었다. 그는 닭 말고도 감자, 당근, 파를 샀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어머니가 해준 닭볶음탕을 떠올리면서 어설프게 요리를 시작했다. 냄비 속 닭볶음탕이 매콤한 냄새를 풍기며 보글보글 끓었다. 끓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곧 집 안의 침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찬장 속에 쌓여있던 그릇이 덜컹거렸다. 그러자 덩달아 냉장고도 모터 소리를 냈다. 어머니가 집에 올 시간은 멀었지만, 마당에서는 어머니의 닳은 구두 굽 소리가 들렸다. 그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으며 잠시 잠이 들었다.
   꿈에서 그는 자신이 늘 쓰고 있던 인형 탈을 본다. 인형 탈은 그를 알아보더니 꾸벅 인사를 한다. 그리곤 봄바람을 따라서 어디론가 굴러간다. 이제 그의 눈에서 인형 탈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현관문 여는 소리가 들린다. 아직 어머니가 올 시간은 멀었다. (*)
 

나정윤(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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