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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이야기②경제적 보상의 만족 속, 조각가의 미의식 편향돼
충대신문 | 승인 2014.05.14 15:15|(690호)

 우리는 아마도 한 두번쯤은 대전지하상가에 상품을 사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분수대 옆에 앉아 볼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대전지역의 열정적인 소장작가의 작품 그 작품의 제목은 「비상하는 날개」이다. 왜 나는 먼저 이 조각 이야기를 꺼내는가. 바로 이 작품속에서도 미술계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우리는 반추상 비구상 순수추상 환경조각 어느 범주에 적용해도 부분적으로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는 당연한 현대조각이다.
 그러면 우리 미술사속의 어떤 사람들이 어떤 계기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구축하고 정치사와 어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여 왔는지 한 번 고찰해보자.
 한일 합방이후 고희동이라는 사람이 일본유학을 다녀와 미술교육원을 차렸는데 그 초대회장이 유감스럽게 매국노 이완용이었다. 이완용이 근대화를 빙자해 주권을 팔아먹었던 상황이 1960년대에도 동어반복적으로 일어났는데 1961년 한일 협상때 학생, 독립운동가, 일제피해자, 지식인들의 반대 시위 속에서 『나는 제2의 이완용이 되어도 좋다』라고 호언하면서 5·16군사쿠데타를 강행한 김종필이 바로 그이다.
 그때, 혁명공약으로 민족문화노선의 구현을 내걸고 1967년 민족기록화전을 개최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지배세력의 장식욕구를 충족시키고 군사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만적인 행각이었다는 것이 나중에야 드러났다. 그후 87년 대통령선거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노태우가 등장하는 선거유인물에 그의 약력과 함께 시골풍경화 한 점이 소개되었는데 아카데믹한 초기 일제때의 공모전 작품과 매우 유사한 그림 풍이었다.
 비록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수탈과정의 상황과 조건이 지금과는 다르지만 다시 행세하게 되는 일제때의 복무작가들은 해방이후 한국전쟁이후 부산에서 자유의 여신상을 제작하고 파쇼독재정권 이승만, 박정희 동상등을 통해 반공교육을 이념적, 논리적 도구로 삼는데 기꺼이 복무했음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 우리의 의식 깊숙히 침투하는 경향도 있다. 한국전쟁중 유엔군의 군화에 묻어온 구미의 사조들이 그것이다. 대부분 현대미술의 추상적 양상들이었으며 미공보부원에서 최초의 집단적 전시회를 갖는 것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그것들은 유신정권에 들어 정치권력과 자본에 능수능란한 처세를 통해 재분배받게 된다.
 이것을 분석해보면 박정희의 민족문화개념이 반공이념교육을 위한 동상의 건립차원이라면 현대미술은 분열적 자의식적 자본의 쾌락성 작품의 재생산이었다. 이들을 뒷받침해 주게 된 것은 미국과 일본등 경제대국의 미학의식의 전파자였고 국내적으로도 재계나 정계의 도움을 받아 외국에서 배워온 조형개념으로 국내에서 단순조립하여 다시 외국으로 덤핑수출하는등 국제라는 환상을 비싸게 사들여 오느라 안간힘을 쓰고 문화부분에서도 팍스 아메리카의 시대를 초래하는데 공로가 컸다.
 서울대와 홍대의 구심이 되는 교수들이 일제때의 유력한 화가들이었고 해방후 국전창설때 심사위원중에 일제때의 심사위원을 그대로 위촉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심사위원의 위촉과 공모전심사기준은 민중·민족미술의 싹조차 짓뭉게버렸고 남한의 작가들은 소모적 자의식과 부역의 양상속에서 정치사의 질곡과 함께 부위했다.
 작금은 한반도의 정치경제적 상황은 어떤 국면에 봉착해 있는가 주변국이든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국가든 규정이 내려지지 못한다면 남한 사회는 개인과 개인의 분열된 의지가 봉건적 답습의 전리장으로써 생존경쟁의 투쟁만이 전부가 될것이고 작품에 대한 비평이나 작가의 의식에 대한 평가는 난감해질 것이다.
 우리 미술사의 권력기생형 작품들을 양산해왔던 큰 줄기 속에서 보면 분열과 탄압의 역사라고 여겨진다.
 남한사회있어서 민민이나 민족진영의 미술계열을 양적으로 제한된 공간 확보속에서 활동을 해왔지만 충분히 보장받고 이해를 같이 나누고자 했던 조직들의 분열이 남한 사회의 에술의 연대성이나 진보적이념으로의 발전등을 막는 방법적 성공이 아니었나 싶다.
 관학성향의 서울대 아방가드로적인 홍익대의 조형이념에 대한 싸움이 경상도 전라도 국민당 통일민주당 식의 지역분열처럼 일어난다면 그들의 관리자들은 어떤 이익이 있는가. 그들의 통일전선 사상미학이 공동목표로 인식되는 것은 은폐할 수 있고 전체적인 단결을 와해시킬 수 있고 그래도 드러나는 민중과 민족적인 싹은 무자비하게 제거하고 어쩌면 그 상징적 사건이 아마도 1956년 국전보이콧 사건 인 듯하다. 한국미협과 대한미협(본질적으로 관변)의 계파권력 투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집단의 소모적 자의식이야말로 분열정책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민주진영에 대한 콤플랙스적 탄압, 그리고 우익진영과 기타 보수진영에 대한 분열, 여기서 분열은 항상 우익을 통해 기득권을 재분배받는 형식이 아닐까.
 70여년의 역사가 오십원짜리가 사라지고 수표, 카드에 이르고 상업적 보상이라는 경제적 만족 속에 미술의 가치와 조각가의 심미적 기능들이 편향되어 오고 있었던건 아닐까.
 추상조각이라는 이름으로 내용없는 형식적 구상으로, 지하상가의 시원한 물소리를 듣다가 친구를 만나 문경서적을 들어가 '홀로서기'한권을 사서 애인에게 주고 손붙잡고 나오다 우뚝선 윤영자씨의 추상적조작품 밑에 기대어 졸고 싶은 6·29시대의 뻥뚫린 헨리무어적 구멍.

성기산(조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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