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잊지 말아줘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사

   눈앞에 펼쳐진 세계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개인적으로 화창한 주말 오후 방안에 혼자 틀어박혀 있을 때가 그렇다. 문 밖에서는 사람들이 조잘조잘 떠들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고 있고 TV를 틀어도 자지러지는 웃음 소리밖에 없다. 그럴때면 나만 저들의 세계에서 똑 떨어져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예를 들자면 원래 있던 저들의 세계에 ‘나’는 어쩌다가 불시착한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방안에만 콕 박혀 있다가 ‘나’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지고 동그라미에서 작은 점으로, 그러다가 소멸하고 만다는 식의 공상이다. 여기서 소멸한다는 것은 모두가 나의 존재를 잊는 것이다. 
   결국 밖으로 나가고 평소와 같이 지낼 것을 알면서도 종종 이런 공상에 빠진다. 나의 존재를 잊고 그래서 하나의 점으로 소멸되어 버릴까봐 겁나 애써 밖으로 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잊혀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데 익숙한지도 모른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혼자 남겨지는 것 만큼이나 잊혀지는 건 가슴아픈 일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의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다. 비틀즈 노래의 제목이라고 한다. ‘깨어나보니 나는 혼자였고 그녀는 떠나버렸네’라는 노래 가사와 소설의 내용은 꼭 들어맞는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주인공 와타나베가 깨어났을 때는 그녀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사람이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원제보다는 『상실의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작가의 요청으로 인해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됐다고 한다. 대부분은 이 책이 ‘전 세계의 청년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청춘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고 소개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전 세계 청년들 중 하나인 필자도 금방 빠져들어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다 읽고 나서도 책장을 만지작거리게 되는 여운이 금방 가시지 않는 소설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정말 보통의 학생이다. 유일한 친구였던 가즈키가 돌연 자살하면서 보통의 삶에는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듯한 파장이 일기 시작한다. 도쿄의 기숙사에서 지내고 그곳에서 가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를 만나기 시작한다. 기숙사 룸메이트인 ‘돌격대’는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별종이고 모두의 추앙을 받는 나가사와 선배와도 친분을 쌓는다. 또 연극사 수업에서는 도발적이지만 어딘가 결여된 미도리를 만나 관계를 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주변 사람들은 하나 둘 그의 곁을 떠난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라지곤 한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그의 주변은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잊지 않겟다는 와타나베의 말을 시험하듯 나오코는 훌쩍 생을 마감한다. 나오코가 떠나자 혼자서 긴 여행을 떠난 와타나베는 그래도 사람을 찾는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걸면서 어디에 와있는지도 깨닫지 못하지만 그래도 와타나베는 사람을 찾고 다시 살아간다. 때론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지고 잊혀지는 것 같더라도 살아가는 것이다. 소설 속의 와타나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살자’고 말하는 것 같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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