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우주가 있었다

『코스모스』칼 세이건,
사이언스 북스
   중학교 때 과학수업이 아직도 인상 깊다. 태양계에 대한 단원으로 기억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계와 우리 은하에 대해 배울 때다. 넓고 넓은 이 푸른 지구가 고작 태양계의 한 행성에 지나지 않는다니. 그때의 교실과 칠판과 형광등의 밝기까지 아직 생생한 이유는 우주의 광대한 규모를 처음 접한 충격 때문일 것이다. 아직 우리 동네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는데, 이 넓은 세계를 어서 빨리 밟아봐야 하는데, 지구는 한낱 변두리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저 좌절하게 만들었다. 지구의 무궁한 역사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던 그 시절, 우주를 대한 후부터는 눈앞이 아득해졌다. 처음으로 존재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었다. 그 시절에는 광활한 우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 무한대의 세계에 압도되어 버려, 수업시간 내내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천문학자들 중 자살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한번쯤 괴롭게 고민했을 이런 주제에 대한 해답을 준다. ‘자연은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자연에게도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다. 우주의 이렇게 훌륭하게 정돈된 질서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우주는 아주 정교한 법칙에 의해 돌아가고 있고 우리 역시 이 정교한 법칙에 순응할 뿐이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우주 앞에서 이 책은 우주를 감당하는 법을 알려준다.
   방대한 우주의 역사를 담아내느라 굉장히 두껍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는 『코스모스』는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나 됐다.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을 감안한다면 점점 뒤처지고 있는 혹은 이미 뒤쳐진 과학서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히 수금지화목토천해명 혹은 태양계나 우리 은하만을 가르치고 있지 않다.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류의 기원과 진화, 역사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낸다. 다른 세계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인류는 신대륙을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끝내고 이제 우주로 방향을 돌렸다. 『코스모스』는 이러한 인류의 호기심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응원해준다. ‘인류는 우주의 해안에서 충분히 긴 시간을 꾸물대며 꿈을 키워왔다. 이제야 비로소 별들을 향해 돛을 올릴 준비가 끝난 셈이다’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코스모스』를 손에 꼽는 이유는 아마 인류의 탐험 본능을 누구보다 잘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피타고라스는 우주를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전체’라고 정의했다. 우주는 지구를 품는 모태이다. 우주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전체의 일부인 우리들 또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태초에는 우주가 있었다. 드넓은 우주 앞에서 허망할 필요가 없다. 우주를 이해하고 우리의 행성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존재를 이해하면 무한대의 세계 앞에서 작아질 필요도 없다. 『코스모스』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도록 이끄는 힘은 이처럼 엄청나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