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하위문화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깨다

 

   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 봉준호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흥행한 영화 ‘설국열차’를 기억하는가? 여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멸망한 후 온통 얼어붙은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생존자들을 태우고 달리는 열차라는 독특한 배경 설정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 흥행과 더불어 영화의 배경이 영화 제목과 동명인 프랑스 그래픽 노블에서 따온 소재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 또한 큰 관심을 받았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알고 보면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장르이다. 처음 들었을 땐 다소 생소하지만 설명을 들으면 ‘아~’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래픽 노블에 대해 알아보자.   
 
   슈퍼 히어로의 탄생
   그림과 소설이라는 다소 상반된 단어의 조합인 그래픽 노블은 만화의 한 장르이면서 소설의 특징도 가지고 있다. 만화책의 형태로 출간되지만 책의 내용이 소설만큼 길고 복잡하기 때문에 만화와 소설의 중간이라는 의미로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설명만으로 그래픽 노블의 의미가 와 닿지 않는다면 할리우드의 슈퍼 히어로 영화를 예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슈퍼맨, 배트맨, 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각종 슈퍼 히어로들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들은 모두 그래픽 노블이 원작인 영화들이다. 슈퍼 히어로를 소재로 한 그래픽 노블의 가장 큰 특징은 역동적이면서도 정교한 그림체와 영화 시리즈물로 활용될 만큼 탄탄한 내용 구성이다. 슈퍼 히어로 그래픽 노블은 만화의 그림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생하고 화려하다. 또한 작품마다 독특한 세계관이 가미된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이야기 덕분에 만화가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향유할 수 있는 장르라는 인식을 형성했다.
   슈퍼 히어로물의 절대강자 미국은 그래픽 노블이 시작된 곳이다. 만화의 형태가 한 컷인 카툰에서 네 컷 이상의 코믹스로 발전하며 미국 만화의 대표회사 중 하나인 DC 코믹스의 1938년 슈퍼맨을 시작으로 만화에 서사의 구성까지 가미한 그래픽 노블이 완성됐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단어는 1978년 미국의 만화가 윌 아이너스가 “코믹스가 멜로디라면 그래픽 노블은 교향곡”이라고 말하면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슈퍼 히어로는 1930년대 미국의 경제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사회적 배경과 맞물려 힘든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소재였다. 미국은 슈퍼 히어로 시초의 나라답게 슈퍼 히어로 그래픽 노블의 대중화에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 미국 만화의 양대 산맥인 DC 코믹스와 marvel은 각각 <슈퍼맨>과 <배트맨>,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을 영화로 제작하고 영화의 주인공인 영웅들을 캐릭터화시켜 각종 관련 상품도 만들어내며 대중화를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의미의 그래픽 노블
   슈퍼 히어로 시리즈물을 영화로 제작해 크게 성공을 거둔 DC 코믹스와 marvel은 본격적으로  상업화에 집중했다. 때문에 그래픽 노블은 뛰어난 그림체와 짜임새 있는 내용 전개라는 장점이 가려지고 만화의 새로운 장르라기보다는 단순히 만화를 상업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래픽 노블 <왓치맨>의 작가 앨런 무어는 “그래픽 노블은 DC 코믹스나 marvel같은 회사에서 만화책 값을 좀 더 올려 받기 위해 만든 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슈퍼 히어로 그래픽 노블이 상업성에 가려져 본연의 특성이 점차 가려지게 된 이후 상업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하거나 문학적 성격을 더 강하게 띄는 그래픽 노블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슈퍼 히어로 없이 일반적인 만화보다는 문학적 성격을 많이 띄거나 사회문제를 책 속에 담은 그래픽 노블을 ‘리터러리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른다. 사회적 메시지를 내포한 리터러리 그래픽 노블의 시작은 1992년 만화가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트 슈피겔만의 <쥐 : 한 생존자의 이야기>라는 작품이었다. 이 만화는 실제 작가의 아버지가 경험했던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소재로 했다. 나치 독일을 고양이, 유대인을 쥐로 의인화 해 당시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그림과 글을 이용해 사실적으로 그리고 꼼꼼하게 묘사했다. 또 지금 상영 중인 영화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원작 <파란색은 따뜻하다>는 동성애를 소재로 한 그래픽 노블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소재 이외에도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나 위트있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양한 소재의 그래픽 노블 또한 리터러리 그래픽 노블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칫 상업성의 그늘에 가려져 본연의 매력을 잃을 뻔 했던 그래픽 노블은 점차 사회적 의미를 가지면서도 허를 찌르는 기발한 소재로 끊임없이 만들어지며 발전을 거듭해오고 있다.

   그래픽 노블을 접해보고 싶다면
   그래픽 노블이 발달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그래픽 노블 전문서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래픽 노블을 접하려면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번역본에 한정해 구해야 한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보다 다양한 그래픽 노블을 접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그래픽 노블을 한 곳에 모아놓은 전문 서점이 있다. ‘책방 피노키오’가 바로 그곳이다. 책방 피노키오에서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번역본뿐만 아니라 아직 번역되지 않은 원서 그래픽 노블도 찾아볼 수 있다. 책방주인 이희송 씨는 그래픽 노블이 우리나라에 아직 덜 알려졌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라고 생각해 그래픽 노블을 특화한 서점을 차렸다. 그에게 그래픽 노블의 정의와 범위에 대해 묻자 “그림의 예술성과 내용에 사회적 의미을 담은 단편집”이라고 답했다. 또 그는 그래픽 노블의 매력에 대해 “기본적으로 만화라는 포맷 때문에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며 “그림도 회화적으로 뛰어나고 문학성도 훌륭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그래픽 노블은 문학작품을 재해석하기도 하고 주목할 만한 사회문제와 독특한 세계관으로  영화를 담는 도구로 꾸준히 사용되고 있다. 이 씨는 “그래픽 노블이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강해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대부분 출간을 꺼리는데 그래픽 노블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만 늘려도 만화에 익숙한 독자들과 기존 문학에 익숙한 독자들을 아울러 포섭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된 그래픽노블의 수가 너무 적은데 그래픽노블은 흥미 위주로 즐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권, 환경 등의 사회문제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거나 마음에 담을 수 있다”며 그래픽 노블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는 만화라는 장르를 B급 문화, 소위 하위문화로 분류하곤 했다. 때문에 만화의 한 장르인 그래픽 노블 또한 하위문화로 분류되며 그 가치만큼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그래픽 노블이 내용적으로 만화라는 장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 있는 시도를 이어나가고 그 시도에 대한 관심 또한 지속해 나간다면 그래픽 노블의 발전 가능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할 것이다.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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