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영화, 웹툰 속 완벽한 것만 같던(?) 남자 주인공의 완벽하지 않던 실체를 파헤쳐 본다.

❶ 매력적인 조선의 어장남 <해를 품은 달> 의 ‘이훤’

 
   최근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주인공 도민준은 400년 전 조선 땅에 떨어진 외계인이라는 설정의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외계인답게 각종 초능력을 발휘하며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매력적인 도민준은 2년 전만 해도 어릴 적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사랑에 울고 웃던 조선 최고의 사랑꾼 왕 ‘이훤’이었다. 이훤은  첫사랑 허연우가 죽은 뒤에도 그녀를 잊지 못하던 지고지순한 모습을 연기하며 뭇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러나 알고 보면 훤은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상대에게 매몰차게 대하다가도 갑작스럽게 은근한 여지를 남겨 상대를 희망고문 하던 나쁜 남자였다.
   훤의 희망고문은 아버지의 권세를 업고 중전이 돼 늘 훤에게 외면 받았지만 훤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중전 윤보경과 함께 있을 때 여김 없이 드러났다. 원자 생산이 늦어진 게 본인의 불찰이라며 보경이 대왕대비에게 석고대죄를 올리던 날이 있었다. 그런 보경의 행동이 전부 가식이라고 생각한 훤은 석고대죄를 멈추게 하기 위해 보경에게 간다. 훤이 석고대죄를 거두라하자 보경은 몸을 일으키며 쓰러질 뻔한다. 훤은 쓰러지는 보경을 얼른 부축하고 “그대와 그대의 가문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나 내 마음까지는 바라지말라”고 차갑게 말한다. 이왕 차갑게 말할 의도였다면 부축해주던 몸이라도 떨어뜨리고 말하던가 흡사 포옹하는 자세로 그런 말을 하면 훤을 짝사랑하는 보경은 어떡하란 말인가. 그의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보경이 여자로서 자존심도 버리고 훤과 합방하기 위해 계략까지 꾸민 날, 훤은 보경에게 “중전을 위해 내가 옷고름 한번 풀겠다”며 그녀를 조롱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보경을 더욱 멀리한다. 그러나 그렇게 멀어지다가도 어느 날 보경이 죽은 연우의 혼령을 보고 겁에 질려 거울을 깨뜨리고 손을 베이자 손수 상처를 치료해주며 우는 그녀를 안아 달래준다. 자존심도 버리고 먼저 다가온 보경을 차갑게 밀어내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의 다정함으로 그녀를 달래주는 훤의 헷갈리는 행동은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는 여지를 계속 남겨주는 게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훤의 희망고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궁궐을 거닐다 우연히 만난 보경이 따뜻한 차를 권하던 날이 있었다. 처음에 그는 단호하게 보경의 권유를 거절한다. 그러다 이내 무슨 생각인지 보경에게 그럼 차 대신 산책이라도 하자고 먼저 손을 내민다. 아니나 다를까 산책을 하다 다다른 연우와 추억의 장소에서 훤은 죽은 연우의 모습을 대입시키며 보경을 아련히 바라보는데 이런 그의 시선은 꿈에도 모른 채 보경은 자신을 보아줄 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리며 그 아이(연우)를 잊으라고 재촉하지도 않겠단다. 이런 보경의 애처로운 사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보경을 미워할 수 없게 한다. 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부던히 노력하던 보경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우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연우를 죽이기 위해 스스로 흑주술의 제물이 되는 극단적인 행동을 벌이고 만다. 이 모든 것은 훤의 희망고문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 모질게 굴다가도 가끔씩 보여주던 훤의 다정한 면모는 보경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까지 결국 훤의 여자로 남게 되는 이유일지 모른다.  

 

   한편, 과거 흑주술에 걸려 죽을 뻔한 위기에서 살아난 연우는 8년 동안 모든 기억을 잃고 신기도, 이름도 없는 무녀로 살아가게 된다. 잠행을 나갔다가 죽은 어린 연우의 환상에 홀려 산에서 길을 잃은 훤은 8년 만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연우와 마주하게 된다. 훤은 죽은 연우와 똑같은 생김새의 그녀를 연우가 아닐까 의심하지만 기억을 잃은 연우는 자신은 그저 이름도 없는 천한 무녀라며 부정을 한다. 훤은 기억을 잃은 연우에게 ‘월(月)’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내려주고 그리움이 실체가 돼 자신을 홀린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고는 궐로 돌아간다. 그러나 월은 훤의 곁에 있어야 하는 달의 운명에 따라 훤의 액받이 무녀가 돼 훤의 곁으로 간다. 훤은 월이 연우일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월은 기억을 잃은 채 계속 자신은 연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죽은 연우를 잊지 못했지만 연우를 닮은 월에게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는 훤은 월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고백하지도, 숨기지도 못하고 계속해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훤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자신에게 보이는 연우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며 훤의 애매한 태도에 자꾸 기대를 품게 되는 마음을 정리하고자 월은 결국 훤의 액받이 무녀를 그만두고 궐을 나가려한다. 월은 갑자기 사라지려던 자신을 향해 화내는 훤에게 “전하께서 필요하신 이는 소인이 아니지 않느냐”며 자신은 죽은 연우를 대신할 수 없다고 떠나겠다고 말한다. 훤은 떠나려는 월에게 멀어지라 명한적도 없다고 소리치며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까지 멀어지지도 말라”며 왕의 지위를 이용해 권력까지 남용하며 월을 희망고문 한다.
   훤은 중전인 보경에게 늘 북풍한설 같다가도 가끔 보여주던 설레는 행동으로 혹시나 하는 기대를 끝까지 버리지 못하게 했다. 또한 연우를 잊지 못하면서도 연우를 닮은 월에게 흔들리는 의중을 티내며 자신을 사랑하는 월의 마음을 힘들게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해를 품은 달>속 훤이 연우만을 사랑했던 조선의 로맨티스트라고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짚어보면 사실 훤은 연우를 잊지 못한다는 핑계로 자신을 사랑하던 월과 보경, 두 여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 빠질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어장남이었다.
 

유정현 기자 yjh13@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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