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기억들은 따뜻함을 남겼네

『걸레도둑 만나러 나는 테미로 간다』  
김수남, 이화   
   20살을 갓 넘긴, 아직도 어린 사회 초년생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추억은 쌓고 있다. 나고 자란 곳이 대전인지라 대전의 구석구석에는 개인적인 추억들이 듬뿍 묻어있다. 예컨대, 목척교는 늦은 저녁 친구와 대전천을 하염없이 오가며 얘기하던 짝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중앙시장은 아빠와 손잡고 먹었던 맛있는 떡볶이를 기억하게 한다. 이 외에도 대전의 곳곳은 지난날의 흔적이 촘촘히 묻어있다. 지금도 겨울바람이 누그러진 날에는 목척교와 중앙시장을 거쳐 집까지 기억『』의 조각들을 밟으며 집으로 걸어간다. 늦가을 떨어진 낙엽을 바스락 바스락 요란하게 밟는 것처럼, 혹은 겨울날 사방으로 쌓인 눈을 뽀드득 뽀드득 밟는 것처럼, 기억의 조각들과 마주하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걸레도둑 만나러 나는 테미로 간다』는 굵직굵직한 한국의 현대사를 대전에서 보낸 김수남 작가의 에세이다. 인생의 굽이굽이를 건너고 돌아 지난날을 돌아보는 작가는 달빛과 커피빛 사이에서 수십 년의 흔적들을 담백하게 기록한다. 작가의 인생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어우러져 진행된다. 에세이 곳곳에는 걸레를 훔칠 정도로 가난했던 ‘걸레도둑’이 있던 그 시절, 대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다. 작가가 대전에서 만나는 기억의 조각들은 훨씬 많고 반짝이고 아름답다.
   작가는 모두가 힘들던 그 시절의 도둑들을 만나러 테미로 향하고, 봄이면 산에 불지르듯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눈에 담는다. 문득문득 감성을 두드리는 ‘비자발적 기억’들은 때론 뼛속깊이 스며든 전쟁의 공포이기도, 끔찍하게 비이성적인 군대이기도 하다.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의 비참한 경험도 작가는 반가운 기억의 한 조각으로 감싸안는다. 이러한 비자발적 기억들에 대처하는 작가의 자세는 수려한 문장과 잘 짜여진 알레고리이다. 목척교 아래서 구슬프게 휘파람 불던 친구에 대한 기억, 헌책방의 높이 쌓인 책 사이에 파묻혀 작가의 걸음마를 떼던 경험 또한 참신한 은유로 각인시킨다. 이런 경험들의 배경은 모두 대전이다. 대전의 구석구석은 작가 평생의 추억으로 가득 차 있다.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았던 가난과 어릴 적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한참 어려웠을 시절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면서도 읽는 내내 우울하지 않고 재기발랄한 까닭이 있다. 생각해보면 가난도 재미있었으며 인생은 한 편의 흥미진진한 영화와도 같다는 작가의 고백은 숱한 고생들을 한순간에 ‘치킨게임’으로 둔갑시킨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피식 웃음이 나기도, 울컥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한편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엿볼수도 있다. 무분별하게 변해가는 대전의 모습을, 그것을 지켜보기만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작가는 안타까워한다. 또 한글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각성시키기 위해 펜촉으로 외친다.
   평생 글을 쓰며 살아온 작가는 스스로의 문호를 ‘글보’로 정했다. 글만 좋아하는 바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에세이에서 묻어나는 노인의 지난날과 올곧은 소리들은 따뜻하고 정겹다. 한 평생을 글을 쓰면서 살 수 있는 원동력은 비자발적 기억이었을까, 그 기억들을 마주하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었을까.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비자발적 기억들은 따뜻한 에세이를 남겼고, 아직도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 불안한 마음을 데워주었다.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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