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기섭 시집 '발자국을 찾아서'를 읽고 -

총 80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된 손기섭 박사의 시집 '발자국을 찾아서'를 읽었다. 한마디로 잔잔한 일상적인 생활에서 평범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말 하면서 시적 응축(Dichtung)으로 무늬를 놓은 양질의 비단 같은 훌륭한 옷감이랄까, 아니면 아주 소박한 무명의 소재인데 옷을 지은이가 명장으로 그 품위나 자태가 격조 높은 고결성을 보여 주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연만한 퇴임 원로 의사로서, 교수로서, 사회 지도자로서 삶과 자연을 바라보는 의연한 순결성을 동반하면서 자아성찰의 탐구적 자세를 보여준다.
   손기섭 박사는 잘 알다시피 외과 전문의로 뛰어난 시술과 봉사로 일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시절부터 문학에 깊이 몰두하고 시와 문학예술에 열정을 쏟은 것은 한국문학의 원로 김동리 선생과의 인간관계인 듯 싶다. 향리에서 이웃으로 지내기도 하였거니와 가족적으로도 상당히 친근하게 지낸 인연으로 동리 선생을 존경했고 동리 선생은 손기섭 시인을 문학으로 성장하여 큰 나무가 되길 바랐던 시절이 있었음을 손시인 자신이 회상키도 했었다. 그러나 손기섭 박사는 의대를 가게되고 마침내 한국 의료계의 거장으로 국제적 명성까지 얻은 그 연후에 과거의 향수를 달래듯 '한국문학'에 시인으로 데뷔한 것이다.  
   시인은 의사도 되고, 정치인도 되고, 교수도 되고, 어떤 직업을 가져도 되지만 마침내 시인은 시를 잘 써야 된다는 평범한 말이 입증하듯 손기석 시인은 외과의로서 성공하였듯이 시인으로 특유한 감성의 자생적 분출이 뛰어났으며 일상적 평범한 체험이 다른 이 보다 훨씬 앞서 그 재능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항상 시적인 감정을 꿈꾸며 일상적으며 보편적 상황을 아름다운 운율적 구조로 내재화하여 창조하는데 전념한다.
   손기섭 시인은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진솔하게 표현한다. 사소한 일살생활에서 일어난 감정을 진솔한 말로 표현하고 또한 느낀 바를 자연스럽게 호소한다. 그의 작품에서 "언제부턴가 내 등에 / 점점 커가는 콩알만한 혹 하나가 생겼다. / …중략… / 그러나 잡초가 풀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 듯이 / 혹은 꿈꾸고 못이룬 스스로를 던져 새로운 삶의 지침이 된다," 작품「혹」에서 보여주듯이 별 필요치 한은 '혹'이라도 꿈꾸고 못이룬 스스로를 던져 새로운 삶의 지침이 된다고 말하는 '몸의 시학'으로 깨달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이나 우주 공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물이 쓸데없는 것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필요성과 불필요성 그 정반합의 모순을 조화와 근정의 수용적 세계로 바라본다.
   또한 그의 작품「단감」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퍼뜩 와보이소 / 억수로 맛 있임니더 / …중략… / 언제 들어도 피와 살 속으로 파고 드는 / 나 스스로의 숨소리 같이 어어가는 / 그 정다운 마음의 고리들이 / 억수로 억수로 사람 죽인다 아임니껴" 이상의 작품에서 나타낸 바와 같이 남도 방언의 인정미를 사설조로 표현했다. 손기섭 시인의 시집 가운데 중요한 테마로 표현된 가족애와 인정의 아름다운 정감을 디테일하게 나타낸다. 그 밖의 작품 「손녀들의 선물」이나 「반닫이」등에서도 밝고 포근한 향수와 그리움의 서정을 담고 있다.
   이 시집의 제3부 「아버지의 길」에서 보여준 세계는 시가 관념을 뛰어 넘어 사물의 존재로서 비유됨을 여실히 나타낸다. 적게는 한 가정의 윤리적 관계부터 자연의 우주적 섭리를 통하여 살필 수 있는 부모의 섬김이나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몰두 했다. 그야말로 애이불상(哀而不傷)을 노래했다.
   제4부 「비눗방울」, 「낙화」, 「나이」등에서는 손기섭 시인의 연륜에서 비롯된 삶의 허무와 무상을 노래한다. 그렇다고 강한 스스로의 감정 분출에만 기울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일상적인 열정 속에서 조용히 생각하고 느낀 바를 체험 속에 용해하고 있다. 손기섭 시인의 시 세계를 요약하자면 작은 이야기 속에 큰 감정의 응축을 현상화하고 있으며 항상 일상 속에서 깊은 사색에 몰두하고 있는 열정의 시인임을 알게 된다. 손기섭 시인은 사실을 뛰어넘는 진실의 파도가 넘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모든 일에 깊은 사려와 애정어린 가슴으로 감싸 안아줄 사랑과 고뇌의 포용에서 시를 얻고 있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순수체험을 가열하여 서정의 분골을 계속하는 시이다.


최원규
<명예교수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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