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에게 권합니다

⑧ 영화 <클래식> 촬영지 대전 두계천을 가다

   다이어리에 붙은 달력을 닳도록 넘겨보고, 뚫어지게 쳐다보고, 다시 넘겨보고를 반복했다. 그제서야 실감난다. 한 해가 끝났다. 다시 한 해가 시작한다. 항상 이맘때쯤에는 상념에 젖었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면서 느꼈던 설렘엔 늘 허무함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자칫하면 한 해를 울적하게 시작하기 십상이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마련해 놓은 예방법이 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미리 눈물을 쏙 빼놓는 것이다. 대충 두 시간정도 실컷 훌쩍거리고 나면 나름대로 예방주사를 맞은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이때 볼 영화들은 본인의 취향대로 고르면 되겠지만, 통 고르지 못하겠다면 필자의 추천을 따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실은 꼭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눈 내리는 겨울날 따뜻한 외투처럼 포근한 영화인데, 주변의 아끼는 사람들에게 한 번씩 추천하는 영화다. 센스 있는 독자라면 이쯤에서 알아챘을 것이다. 필자가 독자들을 좋아하고 아끼고 있다는 것을. 추천하는 영화는 바로 <클래식>이다.
   영화 <클래식>은 이제 십년이 갓 넘었다. 손예진이 교복을 입고 나오고, 1인 2역을 했다는 것, 그 멋진 조인성의 풋풋하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구미가 당길 것이다. 겉옷을 우산삼아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장면은 모든 연인들의 로망이다.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으로 시작하는 영화의 OST는 기타 초보자들이 어지간히 연주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장면들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보건대, <클래식>은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화는 우연과 필연, 인연이라는 단어를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듯싶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날줄과 씨줄이 복잡하게 얽힌 두 연인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 초반은 소설 <소나기>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듯하다. 그때 그 소녀가 죽지 않았더라면… 했던 모두의 소망을 감독이 눈치 챘는지 영화에서는 그때 그 소녀인 주희(손예진)가 딸을 낳을 때 까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주희와 사랑에 빠졌던 준하(조승우)가 기구한 운명을 맞이하는 사이, 주희의 딸인 지혜(손예진)도 이상하게 한 선배에게 끌린다. 

주희와 준하가 반딧불이를 잡았던 두계천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하는 영화라 대사를 줄줄 외는 장면이 많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느 한적한 시골 강가에서 반딧불이를 잡는 장면이다. 그림 좋은 남녀가 인적이 드문 강가에서 반딧불이를 잡는 것 자체도 아름답고, 화면 가득히 반딧불이가 반짝이는 장면 또한 가히 환상적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강가를 머릿속에 새겼을 것이다. 그저 경치좋은 곳 만이 아니라 이 강가는 두 쌍의 연인이 결국 하나의 운명으로 갈무리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강가는 대전의 끄트머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대전의 경계에 걸쳐있는 원정동으로 가면 지금은 기차가 멈추지 않는 원정역이 있다. 이따금씩 기차가 스쳐 지나가는, 논과 밭이 펼쳐진 한적한 시골길이다. 원정역에서 조금 걸어 나오면 시원하게 강물이 흐르는데, 이 강물이 바로 두계천이다. 얼핏 보면 그냥 평범한 여느 강처럼 보이지만, 이 강은 보통 강이 아니다. 주희와 준하가 반딧불이로 마음을 주고받은 곳, 그리고 시간이 흘러 훗날 그들의 자식들이 인연을 확인한 곳이다. 영화에 푹 빠져서인지 두계천을 보자마자 영화 OST가 절로 머리에 울려 퍼졌다. 유독 영화 대사가 느릿느릿해서인지 천천히 걸어야 할 것만 같다. 반딧불이를 잡던 곳이 어디지, 그 환상적인 다리가 놓였던 곳이 여기쯤이었을까 상상하며 걷는 것만으로도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겨울의 두계천은 마른 갈대가 일품이다

   계절 탓에 영화에서 봤던 푸르고 생기 있는 전경은 아니었지만 바싹 마른 갈대가 바람에 나부끼는 것도 제법 운치 있다. 겨울의 두계천은 나름의 매력이 있다. 들어서는 곳에 수확을 마친 볏짚으로 사마귀나 장구벌레 같은 곤충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도 재밌다. 폐역이 된 원정역 뒤로 가끔 기차가 지나치는 것도 왠지 좋다. 살얼음이 낀 강가를 구경하며 걷다가 등 뒤로 기차가 지나가면 기차 탄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노라면 마치 나 혼자만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다. 
   두계천을 찾아 걸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그래, 바로 이 곳이야’였다. 그 다음에는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 번 더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영화 <클래식>과 함께 두계천을 권해야겠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충대신문 독자들이 시간이 남고 무료할 때 부디 꼭 한 번 두계천을 찾았으면 좋겠다. 센스 있는 독자들은 이번에도 눈치 챘을 것 같다. 필자가 독자들을 생각보다 많이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글/사진 안수진 기자
luckysuji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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