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언어, 사과

 

『쿨하게 사과하라』
김호·정호승 , 어크로스

   아이에게나 어른에게나 사과는 쉽지 않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정재계 인사, 법조인, 의사 등의 사회지도층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과’는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명예나 경제적, 법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사과를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올린 명성, 부, 사회적 관계망 등 수십년의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잘못을 부인하는 것은 그들의 탈출구로써 그럭저럭 괜찮은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러한 행동은 자충수를 두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에는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일부 언론만 입막음 하면 진실을 덮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누구나 손쉽게 정보를 공급하고 또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개개인 간의 소통이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획득한 것이다. 
   저자는 효과적인 사과모델의 예로 미시간 대학 병원의 ‘진실 말하기’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미국의 미시간 대학 병원은 2001년부터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투명한 사건 자료 공개와 의료진의 적극적인 사과’를 병원 방침으로 도입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도입 당해 262건의 의료 소송건수가 6년 뒤에 83건으로 크게 줄었다. 게다가 연간 소송에 들어가는 병원의 재정이 300만 달러에서 100만 달러로, 소송기간은 평균 20.7개월에서 9.5개월로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미시간 대학 병원은 환자와 그 대리인들로부터 신뢰라는 가장 큰 자산을 얻게 됐다.
   저자는 올바른 사과를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한다.  단순히 “미안합니다”라는 표현보다는 “지난번 제가 □□실수해서 △△피해를 드린 점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와 같은 표현은 상대방과 공감의 기회를 갖게 한다. 또 만약(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내가 미안해 식의 표현도 피해야 한다. 이러한 조건부 식의 사과는 잘못이 전적으로 가해자의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책임도 있다는 표현인 동시에, 피해자를 상대방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좁은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사과는 유년시절부터 강조된 기본 중의 기본 덕목이다.‘먼저 사과하는 것이 이기는 거다’라는 어린시절 어른들의 듣기 싫었던 잔소리가 책 한권으로 탄생한 것이다. 유년시절엔 당연시하던 기본적인 덕목도 잊은 채 경쟁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저자의 단순한 ‘잔소리’로만 치부될 수 없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과는 성공을 위한 개인의 처세술로 어린아이의 순수한 사과와 어느 정도 다르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연일 이어지는 일본의 망언, 여야 정치인, 공직자들의 논쟁으로 국민들 마음이 편하지 않다.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 점이 있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식의 책임을 회피하는 조건부 사과로는 국민들 마음을 달랠 수 없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사과는 진실을 밝히고 진심이 담긴 사과가 아닐까? 저자가 제시하는 사과의 방법이 쿨한 것이라면, 이들의 사과는 너무나도 미지근하다.

                                                   
박세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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