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스펙에 밀린 4년 공부의 상징

 

   매 학기 통과의례처럼 졸업논문을 쓰는 대학생들의 모습은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그러나 막상 힘들여 쓴 논문은 졸업과 동시에 집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간다. 이런 미미한 영향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졸업논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무엇이 대학의 필수과정인 졸업논문을 이런 상황으로 만든 것일까?

   학사 졸업논문, 답습되는 형식적 운영
   졸업논문이 필수 졸업요건이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졸업논문의 비중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는 사회에서 졸업논문을 중시 여기지 않는 풍조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과거보다 석·박사를 따는 학생의 수가 줄어들었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학생들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재호(지역환경토목·3) 학우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지 않으면 졸업 논문은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이 어려운 시기인 만큼, 졸업논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것 또한 졸업논문의 기피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 교수도 학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 적극적인 피드백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전공학부 김정숙 교수는 “사회가 자격증·스펙 등을 요구하면서 졸업논문의 우선순위가 자연스레 뒤로 밀리게 됐다”며 “교수 한 명당 담당 학생이 많아져 피드백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학생들이 졸업논문을 통과 목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에서 졸업논문에 대한 충분한 지도가 없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영어영문학과장 민경택 교수는 “졸업이수학점이 줄면서 논문작성법을 가르쳤던 과목들이 사라졌고 자연스레 학부졸업논문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도 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자격증으로 대체하는 추세 늘어나
   이러한 현실에서 졸업논문을 자격증으로 대체하는 학과들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인하대학교 해양과학과의 경우 학과 관련 자격증 취득으로 졸업논문을 대체하고 있다. 이외에도 강원대 경제학과, 한국외대 경제학과의 경우 테셋시험(한국경제 종합경제시험)으로 졸업논문을 대신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경제학과 이종민 교수는 “졸업논문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스펙으로 쓸 수 있는 테셋을 졸업요건에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학교에도 자격증으로 졸업논문을 대체하고 있는 몇몇 학과들이 있다. 영어영문학과의 경우 졸업 조건은 졸업논문과 토익점수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제출하게 하고 있으며 일어일문학과도 일본어 능력시험인 JLPT N1급으로 졸업논문을 대신할 수 있게 했다. 인문대학의 외국어계열 학과 중 중어중문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학과가 관련 어학자격증으로 졸업논문을 대체 가능하게 했다. 민경택 교수는 “현재의 학부교육체계는 제대로 된 졸업논문을 쓸 수 있는 여건이 아닐뿐더러 우수한 졸업논문을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런 연유에 영어영문학과는 일정수준 이상의 토익점수를 제출하면 졸업논문을 면제받을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다. 이번 학기 졸업을 앞둔 김사무엘(영어영문·4) 학우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해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이번에 졸업논문을 토익으로 대체하면서 시간도 아끼고 다른 일들에 더 많이 집중할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졸업논문 필요성, 무시할 수 없어
   하지만 졸업논문을 필수 졸업요건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외면할 수는 없다. 중어중문학과장 김명학 교수는 “대학이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졸업논문까지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취업과 스펙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졸업논문을 자격증으로 대체한다면 대학의 본기능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자격증이 졸업논문을 대신할 수단으로서 확실한 입증도 얻지 못한 상황이다.
   또한 졸업논문의 필요성과 관련해 학생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졸업논문은 4년 간 학생들이 공부한 것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김정숙 교수는 “졸업논문은 학문 연구에 대한 축적된 결과물이다. 또한 논문작성은 학생들에게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문제에 대한 해결력과 대응력을 길러준다”고 말했다.

   몇 해 전부터 졸업논문에 대한 수많은 의문이 제기돼 왔지만 졸업논문이 필요하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학문의 요람이었던 대학이 이젠 시대의 흐름에 맞춰 취업을 준비하는 공간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학생들은 취업과 스펙이라는 사회의 무거운 강요를 감당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 졸업논문에만 목을 매는 것이 벅찰 뿐이다. 학문에도 취업에도 어느 하나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 우리사회의 현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때다.

 

 

글 / 오주형 기자  jhoh24@cnu.ac.kr
사진 / 유정현 기자  yjh13@cny.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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