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도로명주소 사용 의무화··· 그러나 저조한 이용률
며칠 전 가을 옷을 주문하려고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간 A학우는 적잖이 당황했다. 물건을 배송 받기 위해서는 도로명주소를 입력해야 했는데, 이것만으로는 집 주소가 정확한지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A학우는 주소 검색을 하기 위해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에 접속했다. A학우는 도로명주소를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며 “내년이면 도로명주소가 의무화 된다는데 이런 불편함이 더 심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도로명주소 시행은 ‘100년간 지속돼 온 지번주소체계의 문제점을 해소하고 21세기의 물류, 정보화시대에 맞는 위치정보체계를 도입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1996년부터 추진된 사업이다. 2011년 전국에 일괄적으로 고지됐고, 내년 1월1일부터 시행이 의무화 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도로명주소가 의무화됨에 따라 행정·재판 등과 같은 공공기관 관련 업무에는 반드시 도로명주소를 사용해야 한다. 국가, 자치단체, 공법인 등에는 주소뿐만 아니라 위치표시와 지리안내에도 도로명주소 사용을 의무화 하고 있으며, 국민에게는 일상 생활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하지 않아도 불이익이나 법적인 제재는 없으나 도로명주소를 사용하도록 권고한다.
말 많고 탈 많은 도로명주소
두달 후면 도로명주소가 본격 시행될 예정이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어보인다. 지난 6월 안전행정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본인의 집 도로명 주소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34.6%에 불과했다. 내년부터 도로명주소가 의무화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아직까지도 도로명주소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계속해서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으로 안전행정부 온라인 민원 게시판에 글을 올린 회사원 B씨는 “도로명주소를 시행하는 의도를 모르겠다. 업무를 볼 때마다 번거롭다. 심지어 택배기사에게 도로명주소를 말했더니 어딘지 몰라 못 온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도로명주소 시행을 통해 길 찾기를 편리하게 한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도로명주소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서수정(심리학과·1) 학우는 최근 인터넷으로 자신의 집 도로명주소를 확인한 후 의문이 들었다. 새로운 도로명주소는 주변 건물의 이름을 따서 도로 이름을 짓는다고 했지만 정작 자신의 집 주소에는 생소한 도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도로명은 다른 건물에 비해 비교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옆 동네의 공원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었다.
서수정 학우는 “도로명주소가 길 찾기를 편리하게 해 준다고 하지만 우리 집 주소처럼 전혀 관련 없는 건물명으로 이름을 붙인다면 오히려 길 찾기에 방해가 되고 혼란스러울 것 같다”고 말했다.
도로명주소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파괴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 6월 대한불교청년회는 “도로명주소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민족문화 창달 의무와 전통문화 보존 의무를 위배하고 국민들의 문화향유권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손동대 대한불교청년회 정책기획실장은 “지명은 단순히 주소로서의 기능이나 행정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이 수 천년동안 가꿔온 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며 “도로명주소를 시행함으로써 국가는 전통문화 보존의 의무를 지키기는커녕 오히려 전통문화를 파괴하고 있으며, 또한 국민들의 문화향유권도 침해하고 있다. 현재 헌법소원이 본안으로 올라가 전원재판부에서 심의가 진행 중이고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른 대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도로명주소 담당처인 안전행정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실제로 안전행정부는 도로명주소 알리기 캠페인을 벌이고 도로명주소 안내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서고 있지만 국민들의 도로명주소 이용률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에 안전행정부 주소정책과 조형선 사무관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주민등록증에 도로명주소 스티커를 부착하고 스마트폰 앱 ‘주소찾아’를 보급하는 등 국민들이 도로명주소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도로명주소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도로명주소로 택배를 보내면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시행하거나, 여러 사이트에 가입된 기존 지번주소를 한 번에 도로명주소로 바꿀 수 있게 하는 등의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면사용 50일 전에는 모든 부처, 자치단체, 공공기관이 지번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꾸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30일 전에는 국민들에게 도로명주소를 내년부터 전면 사용한다는 안내문도 배부할 예정이라고 한다.
본래 도로명주소 전면시행은 2012년부터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용률이 저조해 결국 안전행정부는 2년 미룬 2014년부터 도로명주소 의무화를 실시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도 도로명주소가 활성화돼 있지 않지만 계도기간이 더 연장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조형선 사무관은 “사실 2년 전에는 도로명주소 시스템이 정착돼 있지 않아 공공부문에서도 많이 쓰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비교했을 때 준비가 많이 돼 있다. 올 연말이 지나면 우편물의 50% 정도가 도로명주소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으며, 현재 사용률이 낮더라도 홍보를 더 강화해서 이를 높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전면시행을 유예한다면 제도 자체가 흐지부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번주소의 대안책, 도로명주소?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도로명주소 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기존 지번 주소의 불편함을 해소한다는 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조형선 사무관은 “주소의 가장 주요한 기능은 위치표시임에도 불구하고 지번주소는 그 목적을 상실한다. 지번주소를 처음 만들 당시 순차적으로 배열했지만 급속한 도시화를 거치다 보니 지번이 합병되고 분할돼 현재 불규칙한 배열을 이루고 있다. 심지어는 건물 하나가 반은 신림동, 반은 봉천동에 있는 식으로 쪼개지기도 한다”며 기존 지번주소의 비효율성을 강조했다. 조형선 사무관은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된다면 우리나라 주소제도가 체계적으로 정비돼 길 찾기가 편리해질 것이다. 또한 지번주소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토지수탈을 하려고 만든 것이다. 도로명주소를 시행하는 것은 일제 잔재를 없애는 목적과 함께 뒤죽박죽 돼 있는 현재 체계를 개편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OECD 가입국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기반한 도로명주소를 쓰고 있기 때문에 지번주소가 국제적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관련해 조형선 사무관은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심지어 북한과 아프리카에서도 도로명주소를 사용한다. 이는 도로명주소 사용이 국가경쟁력 차원에서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도로명주소를 사용함으로써 국제택배를 비롯해 소요되는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국제표준도 따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도로명주소 정책은 18년 전부터 추진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지는 못하다. 아직은 도로명주소가 정착하기에 시기상조인 듯하다. 무조건적인 홍보보다는 시간을 더 가지고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도로명 주소란?
도로에 이름을 붙이고 건물에는 도로를 따라 순차적으로 번호를 붙이는 방식으로, 기존의 지번번호 방식인 시/도 +시/군/구 +읍/면 +동/리/지번 표기 방식의 동/리/지번 표기 방식을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표기하는 방식이다. 2014년 1월 1일부터 도로명주소 사용이 법적으로 의무화된다.
예) 우리학교 주소 변경
대전광역시 유성구 궁동 220 충남대학교 ⇒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 99
글 / 최유림 기자 hahayoorim@cnu.ac.kr
사진 / 양희원 사진부 기자 hwya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