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잡이가 전하는 왼손의 세상

 

   나 같은 아이 한 둘이 어지럽힌다고. 모두가 똑같은 손을 들어야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 하지마. 난 아무것도 망치지 않아. 난 왼손잡이야. 패닉의 1집 수록곡 ‘왼손잡이’의 가사다.
   이 세상을 지배해버린 오른손잡이 때문에 항상 소외받고 불편해야만 하는 왼손잡이. 그들은 우리 주변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소수자다. 그래서일까. 아무리 불편하다고 외쳐보지만 어느 누구하나 제대로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른손잡이 세상 속, 이제는 희미해버린 왼손잡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오른손잡이가 만든 오른손잡이를 위한 세상
   얼마 전 지하철역에서 오른손에 들고 있던 짐 때문에 왼손으로 교통카드를 갖다 대야 했던 상황이 발생했다. 오른편에 있는 카드 단말기에 왼손을 갖다 대니 팔이 꼬이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연출돼 버렸다.그 일이 있은 후 지하철역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곳에서 시설물들이 오른손잡이에 맞춰진 것을 느끼게 됐다.
   이렇듯 왼손잡이를 배려하지 않은 시설은 학교 안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강의실에서 볼 수 있는 ‘ㄱ’형 의자다. ‘ㄱ’형 의자는 전적으로 오른손잡이를 위한 의자다. 마치 오른팔을 책상에 올려놓고 강의를 들으면 된다는 듯이 ‘ㄱ’자 모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상적인 면에서 불편한 점을 찾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공공시설이라면 모두 비치돼 있을 법한 정수기. 보통 사람들이 정수기를 찾는 이유는 뜨거운 물보다 차가운 물을 마시기 위해서다. 이런 까닭에 차가운 물이 나오는 파란 스위치는 오른쪽에, 뜨거운 물이 나오는 빨간 스위치는 왼쪽에 있다. 하지만 왼손잡이가 차가운 물을 마시려다 실수로 왼쪽 스위치에 손등이라도 닿는다면 그대로 화상을 입고 만다. 정수기의 구조를 탓할 수도 없는 어이없는 상황인 것이다.

   오른손잡이의 세계에서 오른손 법을 따르라?
   불편하다 못해 24시간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왼손잡이. 이런 그들에게 오래전부터 세상은 오른손잡이로 고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해 왔다.그렇다면 왼손잡이가 느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학교 왼손잡이 학우들을 만나 그 속사정을 들어봤다.
   강민구(경영·4) 학우는 왼손잡이로 태어났지만 오른손을 쓰기 위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는 “6살 때부터 연습했다. 주변의 강요 때문에 왼손을 쓰고 싶어도 참았다”고 말했다. 이경일(영어영문·4) 학우 역시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오른손으로 바꿀 것을 강요받았다. 그는 “담임선생님께서 왼손으로 글을 쓸 때마다 혼내셨다.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자세가 어정쩡하고 종이를 사선으로 놓고 쓰다 보니 선생님께서 보시기에 안 좋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왼손을 사용하면 애매한 자세가 되기 마련인데 특히 글을 쓸 때면 이 자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장수임(중어중문·3) 학우는 “왼손으로 글을 쓰면 글을 손으로 가리게 되다보니 어떤 내용을 썼는지 확인하기 위해 종이를 기울여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왼손으로 글을 쓸 때면 또 다른 애로사항이 발생한다. 바로 손에 묻는 흑연이다. 오른손잡이가 미술 시간에나 겪어볼 법한 일이 왼손잡이에겐 일상이 된지 오래다. 장수임 학우는 “간혹 손에 땀이라도 나게 되면 글씨가 번져 무엇을 썼는지 알아보기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왼손잡이가 겪는 불편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왼손잡이 학우들로부터 공통적으로 언급된 이야기는 바로 식당에서의 일화다.
   신기하게도 테이블의 가장 왼쪽 자리는 ‘왼손잡이 전용좌석’이란다. 왼손잡이는 식사를 할 때 물리적으로 옆 사람과 팔이 맞닿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식당의 구석자리를 찾아 앉곤 한다. 참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른손잡이에게 자연스러운 물건이더라도 왼손잡이에겐 예기치 못한 문제가 된다. 야구를 즐길 때조차 왼손잡이는 마냥 편안히 즐길 수가 없다. 보통 야구공을 던지는 손은 글러브를 끼지 않는 손인데 왼손잡이는 오른손에 글러브를 낄 수밖에 없다.
   이경일 학우는 “시중에 파는 글러브가 전부 오른손잡이용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왼손에 글러브를 끼게 되는데 캐치볼을 할 때 매우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왼손잡이가 부딪치는 사소한 장애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가위와 커터칼, 작은 병뚜껑 하나까지 수많은 물건이 오른손에 맞게끔 만들어졌다. 이경일 학우는 “전자제품을 비롯한 많은 생활도구가 오른손잡이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억지로 오른손잡이가 되지 않고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수임 학우 역시 “최근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아이스크림을 푸는 방법을 설명 받게 됐다. 그런데 가게에서는 오른손으로 사용하는 방법만 설명해줬기 때문에 일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틀린’이 아닌 ‘다른’ 존재
   오른손에게만 친절함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왼손을 위한 물건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다. 그나마 몇 해 전부터 왼손잡이용 물건을 파는 쇼핑몰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왼손잡이 생활용품을 연구하는 회사까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런 기쁨은 왼손잡이에겐 아직 먼 현실이다. 장수임 학우는 “실제로 시중에서 왼손잡이용 제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살면서 왼손잡이용 물건은 구경도 못 해봤다”고 말했다. 이경일 학우 역시 “왼손잡이용 물건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며 “애당초 왼손잡이는 이런 상황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많은 것들이 왼손잡이에겐 벅찬 일상이다. 이제 왼손잡이를 위해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경일 학우는 “왼손잡이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은 아니다”라며 “왼손잡이 역시 오른손잡이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고 말했다.

   오른손잡이로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 이미 우리는 왼손잡이가 소수자로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지 모른다. 왼손잡이용 물건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진정한 배려는 왼손잡이를 받아들이고 편견을 갖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 아닐까.


최병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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