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안-원안 논쟁 속에 사업 추진 늦어져

사진 출처.국토교통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대전시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지원 지역공약을 바탕으로 거점지구(신동·둔곡지구)와 기능지구(청원·오창·오송·세종·천안)의 연계를 강화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것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현 정부는 예산절감을 근거로 과학벨트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대전시 과학벨트 산업 수정안을 내놓았다. 대전시는 4대 조건을 제시하며 정부와 수정안을 추진하고자 했고, 반면 기능지구가 속한 지자체들과 야당은 원안 사수를 주장했다.
   결국 지난달 30일 미래창조과학부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본계획 변경안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엑스포과학공원에 들어서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올해 말 공사를 시작해 2016년 완공 예정이고, 당초 부지였던 신동·둔곡지구는 내년 상반기부터 토지보상 등 부지조성을 위한 절차가 추진된다.
   그러나 원안을 바탕으로 계획된 국제중·고교 설립, 원안 기능지구 보상 문제 등이 겹치고 여당과 야당이 과학벨트 논쟁을 이용해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민심 잡기에 나서면서 대전시 과학벨트 논쟁은 정치적 문제로까지 변질되어 몸살을 앓고 있다.

   실효성 생각하면 수정안이 정답?
   정부 측에서 수정안을 제시한 주요 근거는 IBS 부지 매입비를 줄이고 토지 수용 과정 등을 생략함으로써 예산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지 이동으로 기존 과학벨트 기능이 훼손될까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염홍철 대전시장은 “계획 수정이 아니라 단순한 건물 이전이다. 기본계획 수정은 중앙정부가 하는데 확인 결과 단 한 자도 수정되지 않았다”며 부지매입비를 줄여 예산을 절약해도 과학벨트의 기능에는 차질이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양성광 미래부 미래선도연구실장은 지난 7월 3일 과천종합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IBS가 엑스포공원에 입주하게 되면 주변의 대덕 연구단지에 위치한 정부출연연구소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충남대 등 대학들과 교류를 활발히 할 수 있고 정주여건도 좋은 편이어서 여러모로 긍정적”이라며 “엑스포과학공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신동·둔곡지구보다는 접근성과 우수 과학자 유치  등에서 유리한 엑스포과학공원이 과학벨트의 입지 부지로 적당하다”고 강조했다.

   원안기능지구보상, 수정안 절차적 정당성, 국제중·고교설립 문제는?
   그러나 수정안의 실효성만을 바라보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크다. 가장 큰 문제는 수정안에 따라 신동·둔곡지구에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서 벤처기업을 유치하면 원래 공약에서 이 역할을 담당하려 했던 기능지구가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제 2의 세종시 사태’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민주당 측은 “사업추진에 목말랐던 충청권은 과학벨트 정상추진에 대해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과학벨트 수정안을 내놓으며 과학벨트의 발목을 잡고 심지어 근간까지 흔들려 하고 있다”며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현재 미래부에서는 보상 문제와 관련해 대전을 제외한 3개 시,도에 요구안 마련을 요청하였지만 의견 조율이 잘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권선택 대전미래경제연구포럼 고문은 “현 정부는 당선 이후로 과학벨트에 대한 의지 발표, 향후 추진계획에 대해 한 마디도 없다. 기능지구 측에 요구안을 마련하라고 했지만 이미 원안을 엎어놓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뭐라고 대답한단 말인가. 요구사항을 반영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라며 미래부의 보상책이 형식에 그쳤음을 비판했다.
   과학벨트 수정안 확정 절차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전시와 미래부는 기능지구 지역 등 주변 관련 기구와 상의 없이 수정안의 내용을 담은 업무협약서(MOU)에 합의했다. 권 고문은 “과학벨트는 지역사업이 아니고 국가사업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수정안도 공조의 틀 내에서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나 전혀 그런 과정이 없었다. 지난달 27일 열린 공청회도 형식에 그친 것이었다. 시민, 전문가, 국회의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좀 더 천천히 결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또한 권 고문은 “대전시가 추진했던 롯데테마파크 조성 사업, 엑스포 재창조 사업 등이 논란이 많아지자 출구전략으로 수정안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냐”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수정안은 교육문제와도 마찰을 빚는다. 시도 교육청은 과학벨트 수정안에 따라 국제중·고교 설립 부지를 애초 계획했던 신동·둔곡지구에서 도심권으로 변경했다. 권 고문은 “과학벨트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의 자녀들에게 양질의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해외에서 초빙하는 연구원들을 위해 교육시설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대전 국제중·고교를 설립하려 했다. 따라서 과학벨트에서 벗어나 국제 중·고교를 설립한다는 것은 이미 과학벨트를 위한 것이 아니다. 결국 피해를 입는 것은 일반 주민들, 학생들”이라며 수정안이 대전시의 교육환경까지 오염시키고 있음을 강조했다.

   과학벨트, 추진-폐기의 기로에?
   한편 대전시 과학벨트는 어떤 안이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추진 또는 폐기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치킨게임이라는 주장도 있다. 수정안을 선택했기 때문에 과학벨트 사업이 시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손규성 대전시일자리특별보좌관은 “과학벨트는 폐기 경로를 밟고 있는 중이었다. 과학벨트 조성사업을 들고 나온 이명박 정부는 2년간 추진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새 정부에서도 국정과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올 여름에 편성하는 내년도 예산안에 과학벨트 부지매입비가 반영되지 않으면 사실상 무산의 길로 치닫게 돼 있었다”고 말했다. 과학벨트의 원안과 수정안이 문제가 아니라 선택과 폐기의 기로에 놓여 있음이 문제라는 것이다.

   수정안과 원안의 팽팽한 대립 속에 대전시 과학벨트 산업은 허송세월만 보내왔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하루빨리 과학벨트 산업의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여당, 야당 모두 대전시 과학벨트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결부시켜 정쟁 대상으로 삼아 여론 몰이를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제는 정치권에서 벗어나 대전시 과학벨트의 성공을 위한 합의점 도출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최유림 수습기자
 hahayoorim@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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