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가야인들 두개골·치아 인공적으로 변형한 흔적 드러나

   성형은 현대인만의 특권일까? 쉽게 생각하면 근대적인 외과술의 발전에 따른 결과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려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미얀마의 소수민족인 카렌족 여성들은 목에 딱딱한 링을 착용하여 목의 길이를 늘리는 전통이 있으며, 문신이나 입술 피어싱 같은 행위는 원시적인 삶을 유지하는 부족들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서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양악수술처럼 얼굴의 골격을 변형하는 정도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의 선조인 가야인들은 현대에도 위험할 수 있는 골격을 변형하는 수준의 성형을 감행했다.

예안리인골 〈출처:이미지 웹사이트〉

   성형에 대한 역사의 기록
   “아이가 태어나면 돌로 머리를 누른다. 머리를 모나게 하려는 것이다(兒生 便以石厭其頭 欲其片)”. 위서의 마지막 30권인 위서 동이전(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순서별로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揖婁), 예(濊), 한(韓), 왜인 등의 동양 민족 고대사에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사료에서 진한(신라와 가야지역) 사람은 모두 편두다. 편두는 머리를 돌이나 나무로 눌러 납작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편두를 한 가야인 인골사진 〈출처:이미지 웹 사이트〉

   김해 예안리의 인골
   1976~1980년에 김해 예안리 고분에서 발굴된 인골에는 편두가 발견되었다. 총 210구의 인골 중 10구의 인골에서 머리가 인공적으로 변형된 흔적이 발견된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나온 사료를 입증하는 발굴 결과였다. 편두의 인골들은 이마 부분이 들어가고 뒷머리가 튀어나온 뒷짱구의 형태였다. 이를 복원해 본 결과 현대의 미인형처럼 코가 높고 턱이 유난히 작아지며 눈 안쪽이 아래로 처지고 눈꼬리가 올라가는 형태의 얼굴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의 일부를 발치한 흔적과 인공적으로 이를 연마한 흔적도 발견되었다. 편두를 만들기 위해서 영아 시기 머리를 무거운 물건으로 누르는 행위를 했던 것이다. 이럴 경우 몸 속에서는 압력을 줄이기 위해 뼈를 녹이는 세포가 생겨난다고 한다.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또한 이와 잇몸을 인공적으로 연마하는 구함구의 습속 역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복원한 가야인 인골 〈츨처:이미지 웹사이트〉


   목숨을 걸고 편두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체적인 분석은 편두를 한 이들이 무당이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동양에서 편두와 발치 구함구(돌구슬 등을 이용하여 이나 잇몸을 연마하는 풍습)의 풍습은 동이족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1980년대 지린성(吉林省 - 지금도 조선족이 살아가는 연변자치주가 있다)의 고대 유골에서도 편두가 발견되었다. 전설상 동이족 신들에게도 편두의 흔적들은 나타난다. 우리가 흔히 대한민국 축구 응원단의 상징으로 알고 있는 치우도 편두의 흔적이 보인다. 동이족 한 부족의 부족장이었다. 치우는 팔다리가 여덟 개이고 머리는 소수(疎首)이다 라고 옥함산방빕일서에서 전하고 여기서 소수가 편두를 했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주역의 팔궤를 만들었다는 복희나 전욱이라는 인물도 동이족에 속하는데 이들도 사료에 따르면 그들의 외모를 묘사하는데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편두의 흔적이다. 동이족의 전통상 새를 숭앙하는 풍습이 있었고, 신과 소통을 하는 무당이라는 존재가 이를 닮아가기 위해 편두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의견도 있다. 일반인들 역시 편두를 했을 것이며, 이는 당대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고대인들이나 현대인들 모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외모에 대한 기준과 이를 변형하기 위한 성형을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김선근 대학원생 기자
kmunja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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