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두 바이러스 극복한 인류의 지혜

   1918년 12월, 미국의약협회 저널은 “1918년은 인류사에 가장 잔인한 해”라고 말했다. 1918년부터 1919년 사이에 발생한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명이 사망한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에 벌어졌던 1차 세계대전 전사자 수(850만명) 보다 많은 수치다.
   스페인 독감이 지구촌을 휩쓴 지 40년이 지난 1957년 아시아 독감이 유행해 100만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다시 10년 후에는 1968년 홍콩 독감 바이러스로 50만명의 인류가 희생됐다. 가까운 2009년에는 신종플루라 불린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유린해 28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는 늘 바이러스에 패배할 운명일까? 다행히도 아니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어둠으로 뒤덮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인류는 백신이라는 작은 촛불에 의지해 어둠을 걷어냈고, 다시 세상을 밝혔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류에 한줄기 빛이 된 백신이라는 놈이 천연두 바이러스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천연두 바이러스의 또다른 명칭은 두창 바이러스(smallpox)이며 사람이 걸리면 인두, 소가 걸리면 우두라고 부른다. 한 때 천연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전체 사망 원인의 10%를 차지했다. 완치에 성공해 목숨을 건진다 하더라도 얼굴에 곰보자국이 남아 환자는 평생동안 가슴에 대못이 박힌채 살아간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 기원전 3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미이라에서 그  최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원전 1500년경의 인도 문헌, 기원전 1100년 경의 중국 문헌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천연두 바이러스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류를 위협했다.
   우리나라 역시 천연두의 칼날을 피해갈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를 보면 천연두를 앓은 후 곰보 자국이 그려진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의 초상화만 보더라도 천연두가 얼마나 널리 퍼진 심각한 질병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연두를 호환 마마라고 불렀다. 호랑이이게 물려감을 뜻하는 ‘호환’과 왕과 왕비에 사용하는 극존칭어인 마마를 사용한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천연두는 우리 조상들에게 큰 위협이자 두려움이었다.

제너의 실험을 풍자한 당시의 그림 <사진출처> image website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인류의 목에 칼 끝을 겨눴던 천연두는 1800년대에 들어서야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영국의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천연두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거듭되는 실험에 실패한 제너는 우연히 흥미로운 소문을 듣게 된다. 소젖 짜는 일을 하는 여자들은 이상하게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제너는 소와 접촉해서 우두(소가 감염되는 천연두)를 앓은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 1796년 5월 14일, 제너는 이런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인류 최초의 우두법 실험을 실시했다.
   이 역사적 사건 이후, 제너는 23명을 대상으로 추가적 임상 시험에 돌입했고, 동일한 결과를 얻게됐다. 제너는 자신의 실험을 종합한 ‘우두의 원인과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작성해서 왕립학회에 제출했다.
   제너는 인류를 천연두의 재앙에서 구제해준 위인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역사의 수혜자이다. 제너 이전에는 인두 바이러스를 이용해 천연두를 치료하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가 감염된 천연두(우두 바이러스)와 달리 인간에게 감연된 천연두(인두 바이러스)는 독성이 너무 강했다. 그래서 예방을 위해 실시한 인두 접종 때문에 도리어 천연두에 걸려서 죽는 불상사가 수시로 발생했다.
   제너는 이 사실에 착안해 소의 고름을 이용했다. 우두는 인두에 비해 독성이 약했고 우두를 맞은 사람은 약간만 앓을 뿐 이내 멀쩡해져서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생겼다.  당시 제너의 우두법은 종교계의 거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신의 형벌인 천연두를 인간이 극복한다는 오만함과 더러운 소의 고름을 인간에게 넣는다는 것이 그 까닭이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종교계의 천동설을 뒤집은 것처럼, 우두법은 그 효과의 탁월함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곳곳에 퍼져나가 인류의 촛불이 됐다.   


                      
박세윤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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