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과 한국의 자본주의

  1. 머리말

  한국의 국민경제는 지난 30년 동안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을 수행한 결과, 동북 아시아의 선두에 설 만큼 신장되었다. 그러나, 1970년 후반부터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에 대한 수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분배우선적 정책 수행을 위한 여론의 압력은 사회정책의 가치나 목적을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제5공화국은 「복지사회의 건설」을 체제유지의 담보물로 심기까지 하였으나, 유신체제 아래서보다 더 가혹한 그들의 병영적 사회통제는 국민의 복지를 외면하는 암담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우리는 현단계 한국사회에 있어 자본주의가 확고하게 주도적인 생산양식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내부에 자본ㆍ임노동 관계가 매우 뚜렷이 발전하여 있으며, 이들의 역학관계가 한국사회의 전체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한국사회가 성숙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한 한국사회의 자본ㆍ임노동관계는 구미 자본주의사회의 그것에 비하여 볼때, 불행하게도 대단히 열악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분명히 한국사회가 아직까지는 낙후된 생산력수준에 의하여 규정된 것이며, 세계체제안에서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와 맺고 있는 신식민주의적 예속성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이 글은 자본ㆍ임노동 관계를 바탕으로 진행되어온 사회정책의 문제를 검토하고 이와 관련된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간단히 논의하고자 한다. 우리는 현단계ㆍ미국의 선진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발되고 정착된 산업사회론이나 대중사회론은을 관심대상으로 삼지는 않는다. 이 두시각은 1960-70년대의 유럽지역에서 복지국가와 산업민주주의의 성과물과 미소간 평화공존을 향한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재편과정에서 이들 시각의 적실성은 재검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사회정책의 개념

  사회정책(Sozialpolitik)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지만, 현재에도 가장 이상적인 개념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을 우선 간단히 이해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로서의 사회문제, 특히 노동문제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에 국가는 자본-임노동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는 상부구조를 의미한다. 사회정책이 이렇게 이해되어질 때, 그것은 각국의 일상적 국민생활 속에서 자본ㆍ임노동 관계를 핵심으로 하여 작업조건ㆍ생활조건을 포함하는 사회적 제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여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회고하면, 영국은 근대적 사회정책의 정현을 보여준 나라이다. 영국에서는 19세기초부터 산업혁명을 수행하면서 초보적 수준의 노동력 보호정책으로 공장법(factory low)이 성립한다. 이 법은 취로연령 제한, 노동시간 제한, 심야영업 금지, 안전위생 확보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는데, 생산과정에서 순조로운 노동력 재생산에 기여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값싼 노동력의 효율적 확보와 경쟁조건의 균등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했던 근대적 사회정책의 단초였다고 하겠다.
  그런, 경쟁자본주와의 진전과 함께 계급갈등이 현저해지고, 노동자의 조직활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행동권을 둘러싼 노동조합입법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된다. 공장법이 억압받고 고통당하는 노동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하여, 노동조합입법은 단체행동을 통하여 자본에 대항하는 노동자, 특히 숙련공들이 중요한 대상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자본가 계급의 대임노동 가치수탈을 위협하지 않는 상호공제보험과 소비자생활 협동조합이 발전하여, 자본도 국가와 함께 어느정도 노동자의 집단성을 공인하는 정책을 취하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경쟁단계에서 독점단계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문제는 상대적 과잉인구를 전제로 하여 질량의 면에서 중대성을 지닌다. 최저임금법과 사회보험입법은 일상적 빈곤, 실업, 산업재해의 대형화, 저임금상태의 보편적 확산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정책의 형태로서 나타난다. 이 시기에는 경제구조의 변동과 함께, 탈숙련화와 노동의 희석을 가져오고, 숙련공들의 폐쇄적인 직능별 조합 대신에 저숙련ㆍ미숙련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방적 노동조합이 노동운동에서 새로운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특히 노동자들은 독자적인 정당을 결성하고, 정책형성과정에서 자본가 계급과 함께 사회개혁의 문제를 다루게 된다.
  이것은 선발자본주의 나라인 영국의 역사적 경험을 예시한데 불과하지만, 사회정책의 대상은 우리 생활에서 추출되는 일상적인 과제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국에 비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이 늦었던 일본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계급의식과 계급형성이 늦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초보적인 공장법을 비롯한 약간의 사회정책입법이 있었고, 전후에는 노동조합법을 선두로 하여, 일상적인 사회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마련되어 왔다.

  3. 한국의 노동문제와 사회정책

  오늘날 한국사회에 사회정책이 있는가라는 물음에 앞서서, 현단계 한국사회가 자본ㆍ임노동 관계가 뚜렷이 발전하여 있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의 국민경제가 국가의 경제전반에 대한 개입확대 및 국가권력과 독점자본의 유착관계등 국가독점자본주의적 특성까지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자들의 보잘것 없는 복지수준과 열악한 작업조건은 한국사회의 생산력 발전단계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이 사회가 세계체제에서 갖는 종속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다는 점도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6공화국은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을 어느 정도 보인 것으로 간주되는 200만호 주택건설이라는 새로운 주택정책을 최근에는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정책과 관련하여 무주택자의 문제는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주택문제는 노동자들의 노동력 재생산의 중요한 영역으로 열악한 주거의 측면과 부동산 투기에 의한 주거불안의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산업재해는 한국사회의 산업구조가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주도로 개편됨에 따라 중요한 문제로 부각된다.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은 대부분 불구의 몸으로 오랜 기간동안 병원의 신세를 지거나 도시의 빈민가로 흘러들어 사회적으로 완전히 격리당한 채로 버림받은 생활을 하기가 일쑤이다. 이러한 사실은 산업재해와 관련된 사회정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며, 미미한 복지상태와 열악한 작업조건으로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야 말로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할 때 그야말로 견디기 어려울 정도의 섬뜻함을 느낄 것이다.
  의료문제는 사회정책의 중요한 요소이다. 국민의료보험제도의 실시가 흔히들 본격적인 사회보장시대를 알리고 있다고 믿는데 반하여, 저소득층 특히 노동자 계급은 「세계최고의 본인부담율」때문에 이 제도를 활용하기가 어려울 실정에 있는 것이다.
  결국 의료보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의료기관을 쉽게 이용하지 못하는데서 심각한 문제점들이 노출된다. 단순한 질병에 걸렸을 때는 아예 병원을 이용하지 않고 약국ㆍ약방을 이용한다거나, 치료비가 많이 드는, 따라서 보험혜택이 적은 만성질병에 걸렸을 때는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그대로 견딜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사회정책 일반을 보았는데, 한국사회의 자본ㆍ임노동 관계에서, 노동자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 고강도 노동, 그리고 열악한 작업조건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국가는 경제전반에 대한 개입을 확대하고 자본축적에 봉사하면서 복지수준의 향상과 사회정책의 수행등 민중동원을 통한 권력정당화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사회의 사회정책은 선진자본주의 사회의 자본ㆍ임노동 관계에 비하여 훨씬 열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산력 발전의 격차가 그것의 상당부분을 설명하여 줄 것이다. 한편으로 한국사회가 세계체제안에서 가지는 신식민주의적 예속성을 고려할 때, 국가권력을 너무도 노동자들의 요구를 「공산주의자의 음모」와 관련시켜 확대해석하고 있어서 분단 국가의 문제는 한국민의 사회복지 문제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4. 사회통제와 한국 자본주의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다원론적 시각에서 해석할 때, 국가는 다양한 계층과 이익집단의 요구를 조정하면서, 사회전체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본다. 이 관점은 경제적ㆍ정치적 권력은 충분히 분산되어 있고, 모든 생산요소는 개인에 의하여 소유도 있으며, 그들의 생산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정당한 보상을 가져다 준다고 가정한다. 여기에서는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ㆍ임노동관계를 둘러싼 계급갈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파레토 최적성을 충족시키는 사회구조는 「평등」이라는 부르조아지의 혁명적 슬로건에 표현된 브띠 부르조아 사회로 나타난다.
  한국사회에서 지난 30년간에 걸친 급격한 경제성장 자체는 매우 빠른 속도로 자유방임적 경제론과 다원주의적 정치론의 이데올로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쁘디 부르조아지의 몰락을 초래하였다. 우리사회에서 자본주의의 진전 결과, 쁘띠 부르조아지를 불가피하게 부르조아지와 프롤레테리아아트로 분해되어 왔다. 정치영역에서는 정치적 쟁점이 계급이해를 반영하여 조정불가능한 것이 되고, 경제영역에서는 독점자본이 자유경쟁을 대치하게 되고, 파레토 최적성과 소비자 주권의 이데올로기는 부정되어진다. 농동적 경제주체로서 국가의 역할은 국가계획이 부분적으로 시장메카니즘을 대체할 정도로 증대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생산력의 발전은 물질적 토대(계급구조와 경제구조)와 이데올로기(자기방임주의 경제론과 다원적 정치론)사이에 존재하는 조응관계의 상실을 가져온다. 이 문제는 국가개입이 자본축적과 권력정당화를 위하여 필요하지만, 자본가가 국가를 장악하는 것이 힘들어질 때 더욱 더 복잡하고 심각한 양상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정치적 참여는 확대되고, 노동자 계급이 보통선거의 실시로 수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서, 부르조아지는 전통적인 자유민주주의의 범위를 재규정하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자 계급에 대한 억압은 정치적 (선거의 제한과 노조활동의 제약), 경제적(내핍생활의 강요), 육체적(고문과 확대), 그리고 심리적(공포문화의 조성)형태를 취한다. 이처럼 병영적 또는 파시즘적 통제를 자행하는 체제를 권위주의 체제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군부와 관료가 국가기구를 주도하며, 외국자본의 도입을 위한 사회안정과 투자 분위기의 조성을 위하여 폭력에 대대적으로 호소하며 국가기구는 기술관료적 원리에 의하여 운영되어진다. 군부와 부르조아지의 행정기능을 담당하는 분파는 세계체제 안에서 선진자본주의 국가의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열렬한 후원자가 되는데, 이것은 오늘날 제3세계 자본주의 사회가 선진자본주의 사회에 의하여 종속된 가운데 나타나는 식민주의(neo-colonialism)의 특성을 잘 대변하여 준다.

  5. 맺음말

  한국사회의 개혁, 특히 사회정책의 도입은 현재에나 미래에나 객관적ㆍ주관적 위기에서 발원하는 국가개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주도적 생산양식인 자본주의가 전복되고 자본ㆍ임노동 관계를 계급대립이 해체되는 혁명은 아닐 것이며, 단순히 노동자의 정치적ㆍ경제적ㆍ문화적ㆍ물리적 억압에 의존하지도 않는 것이다. 생산력의 향상, 자립경제의 달성, 나아가 국민복지와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는 개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ㆍ임노동 관계를 어느 정도 변화시키고 재조정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관계의 기본적 특성인 자본의 대 임노동 가치수탈을 변화시킬 수 없음은 명백하다.
  현단계 한국사회의 현재와 미래와 관련하여 두가지 유형의 개혁은 확인되어져야 할 것이다. 먼저, 축적위기와 관련된 것인데, 이것은 자본가 자신들에 의하여 시작되며, 노동력 상품가격, 고정자본 가격, 고정자본과 가변자본의 회전시간등 이윤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들과 관련되어진다. 자본회전시간은 생산력 발전의 함수이지만, 그것은 또한 총수요성장의 함수이기도 하다. 이것은 말로만 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넘어서 소련특수, 중국특수, 그리고 최근의 중동특수에 의한 총수요 증대는 자본축적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다음은 정당성의 위기와 관련된 개혁인데, 정당성을 창출하는 중요변수는 쁘띠 부르조아지의 존재와 노동자 계급의 포섭이다. 전자는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사회과학에서 강조되는 자유ㆍ평등ㆍ효율 극대화와 사회적 조화 등의 자유민주주의는 경쟁자본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하여 준다. 쁘띠 부르조아지는 독점자본과 국가권력의 유착관계를 반대하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때,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에서는 효율적인 사회통제방법일 수 있다. 그리고 후자는 노동자 계급을 어느정도 분절화하여 국가계획과 복지국가의 이념 아래 임금조건과 작업조건의 개선을 위하여 사회민주주의 제도에 포섭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동시장의 분절화과정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 지역변수이다. 성차별과 교육차별에 의한 노동시장의 분절화도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지역차별은 한국사회의 진정한 민주주의 발전을 위하여 시급히 해결되어야 할 과제이다. 물론, 이러한 개선은 최근 학생들이나 재야단체 등이 부르짓는 것과 같은 엄청난 혁명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는 이만큼의 사회 경제적 개량도 노동생산성이 증가한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허용되는 것은 아니며 투쟁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다. 환언하면, 한국사회에서도 국가권력이 정당성을 창출해야 하는 필요성 그 자체가 민중투쟁의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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