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에 숨겨진 제주민의 한과 삶

  -손종호시인 두번째시집 「한라의 저녁 마라도의 새벽」

  「한라의 저녁 마라도의 새벽」은 본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손종호 시인의 두번째시집이다.
  시인이 말한것처럼 이 시집은 그의 『아내가 제주에 있던 지난 5년동안 제주 기행시』들로 엮어져 있다. 시인은 부인이 제주대학 교수로 재직한 여러 해 동안 방학이 가까워질 무렵 대전에서 증발하여 개강후에야 우리 앞에 얼굴을 보여주곤 했는데, 그 사이 제주에 흘려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제재 또는 핵심적 주제를 놓고 50여편의 작품을 쓰고, 그것을 한권의 시집으로 엮어낸다는 것은 강한 집중력과 감수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탄탄한 정신적 토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해외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는 근래에는 다소 달라졌지만, 제주는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국의 이국적인 풍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때문에 며칠 간의 여행을 즐긴 관광객에게 제주란 야자수로 된 가로수들, 발이 뛰노는 초원, 구멍 뚫린 돌들이 신기하지만 한 낙원인 것이다. 그러나 돌아와 보면, 곳곳에서 같은 처지의 육지 사람들과 마주쳤을 뿐, 진짜 제주사람이나 제주의 참모습은 보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시집 「한라의 저녁 마라도의 새벽」에서 독자는 여러 형태의 제주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시<그리운 땅>에서 시인은 제주를 신혼여행 길에서는 『신화의 땅』으로, 서른 여섯 나이에는 육지안을 거부하는 낯선 유배지로, 마흔의 나이에는 제주 사람들의 수난에 찬 삶의 현장이자 그 신비속에 아직 이상향을 숨겨 가지고 있는 마지막 은신처로 차례 차례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다시 말해서 시인은 제주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하여 세 가지 시각을 선택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아름다운 풍물을, 스쳐가는 외지인의 눈으로 본 제주, 둘째 역사적 수난의 장으로서의 제주, 세번째로 현재의 제주 본토박이나 제주에 상주하는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 제주이다.
  시인은 먼저 제주 자연의 특이한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서귀포>는 그 감동을 특유의 화사한 어법으로 노래한 시이다. 『여기에선 모든 것이 기대어 서 있다. 사람들은 햇빛에, 햇빛은 도 창유리에 창유리는 야자나무 그늘에ㆍㆍㆍ 아주 드물게 내리는 눈조차 여기에선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바삐 움직여 푸른 감귤나무 숲 그늘 아래 가 기대어 선다』모네의 그림에서처럼 부드러운 빛과 여유 있는 공간처리, 인간과 자연 그리고 자연과 자연의 화해로운 조화의 순간을 「기대어선다」는 말로 교묘하게 잡아낸 감각이 뛰어나다. 시 『서귀포에는 별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어요』나 <돔박꽃>, <아라국민학교 운동장>등은 제주가 인간의 마음에 끼치는 부드러운 영향을 노래하고 있는 같은 계열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방문이 거듭될수록 시인은 그 아름다운 겉모습 밑에 육지사람에게 수탈당하고 짓밟혀 온 제주 사람과 제주의 자연의 한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육지사람인 한 침입자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제주의 자연은 그에게 친밀하면서도 일면 냉혹하고 냉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서준섭이 해설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풍물의 표면에 머무르지 않고 그이면에 가리워진 제주의 역사와 제주 사람의 그리움을 따라 한라산에서 마라도까지 순례의 길을 떠나기도 한다. 시인에게는 이제 섬 전체에 흐드러지게 피는 유채꽃이나 유두화들 조차 심상찮은 암시로 보인다. 『꽃』에서 그는 『왜 제주의 꽃들은 몰아서만 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주민이 몰살을 당하다시피 한 역사적 참극들, 즉 삼별초의 항몽이나 좌ㆍ우익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빚은 현대사의 비극인 4ㆍ3사태 등에 의해, 『집집의 제삿날이 하고나 같아/밤늦도록 제물 나눠 먹는/피묻은 풍습 그대로/꽃들마저 이제는 쉽게 흩어질 수 없기』때문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제주의 수난사를 정리한 <사월꽃>에서는 육지 사람에 의한 수탈의 상태가 오늘날의 관광객에게까지 연장되고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제주의 패배주의를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노란 촛불들의 바다>에서 시인은 제주의 힘을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깍인 것들은 깎인대로 힘이 되고/가파른 것들은 가파른대로 언덕을 이룬/무한의 숨결 속에서/물새는 여전히 알을 낳고/수초는 그 부드러운 힘으로 바위를 껴안는가』라고. 그가 감득한 것은 조용한 힘이다. 바람에 휘말리지만 꺾이지는 않는 갈대, 역시 바람에 휩쓸리지만 그 노란 빛의 등불을 끄지 않는 유채꽃발, 태고 이래로 알 낳기를 계속하는 연약한 물새들, 그 부드러움으로 인하여 풍랑에 쓸려나가지 않는 바위에 엉긴 수초, 육지사람에게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면서도 기실은 자신들의 독특한 생활양식과 언어를 고수해 오고 있는 제주의 사람들과 자연, 이것들이 시인이 발견한 힘이다. 그것은 그 부드러움으로 인하여 멸망당하지 않는 역설적인 강함 같은 것이다.
  그런데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의 몰락이다. 제주사람의 삶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 <동문시장 일우>에서 우리는 심해에서 잡혀온 물고기들과 그것을 거래한느 사람들이 들끊는 어시장 바닥을 보게 되는데, 곧 그 활기 밑바닥의 심연과 맞닥뜨리게 된다. 『ㆍㆍㆍ한자리에서 십 년을 넘게 옥돔을 팔아 온 병천이 어멍이 엊저녁 중품으로 쓰러졌단다. 삶을 떨이로 파는 싸구려 좌판은 없을까. 눈이 퀭한 삼치는 노려본다ㆍㆍㆍ』
  이것은 치열한 생존과의 싸움에서의 연속적 패배를 보여주며, 삶의 현장이 속악한 죽음의 현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시속의 자아는 자신이 도마에 올라 회로떠지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또 하나의 탑동 또 하나의 바다의 무덤>은 그러한 몰락의 원을 지적하고 있다. 바다를 매립하고 관광사업을 끌어들여 제주의 자연과 인심을 훼손하는 육지의 가진자들의 횡포 아래 제주는 『새로운 바다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 제주가 지닌 신비한 마력을 신뢰하고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제주사람이나 제주에 유배된 사람들, 지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꿈꾸는 전설의 이상향인 이어도라든가, 의미 깊은 제주의 자연현상 앞에서 비로소 순수한 자연의 아들로서의 자신을 발견하는 소중한 체험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익는 독자들은 시인에 대한 인간적 교감을 느낌과 동시에 그를 매료시킨 제주의 힘에 대하여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양애경(국문ㆍ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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