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 경제 질서의 재편

  세계질서 주도를 위한 미국의 필사적 전략

  Ⅰ. 서론

  최근 미국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걸프전쟁으로 인한 국제적 상황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세계의 정치ㆍ경제적 질서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글의 최근의 미국의 동향을 이해하기 위해 미국의 국제적 지위, 미ㆍ소의 관계, 유럽통합과 미국, EC와 북미지역 경제통합, 우르과이 라운드에서의 미국의 전략 등을 논의해 보고자 한다.
  
  Ⅱ. 미국의 정치ㆍ경제적 지위

  최근 동유럽의 정치적 변화로 말미암아 동ㆍ서 냉전체제가 붕괴됨에 따라 국가간의 이념ㆍ군사적 문제는 후퇴하게 되었고 한 국가의 경제력이 국력의 핵심요소로써 간주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소련에 대한 봉쇄정책을 추구하는 가운데 많은 경제적 댓가를 치루었고 결과적으로 경제적 주도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특히 2차세계대전 전후의 미국의 외교정책을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서유럽과 일본의 경제재건을 도와주었고 미국은 서유럽과 일본의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그들의 장기적 국가목적을 달성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1960년대에 와서 많은 무역적자를 내게 되었고 1971년에는 마침내 Nixon의 긴급경제조치가 단행되면서 세계경제적 지도력을 잃게되었다.
  최근 미국의 경제는 1950년대에 비해 약화되었다. 1950년 미국은 세계 생산량의 1/3을 차지하였으나 1980년대에는 미국의 생산량은 세계 생산량의 1/5정도로 축소되었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쇠퇴에 많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제력은 근본적으로 볼 때 그동안 서유럽과 일본이 경제를 재건하고 강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의 우월적 지위는 저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재정적자와 국제수지적자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고 있다. 최근 미국은 냉전체제종식과 더불어 국방비의 감축을 추구하고 있고 무역수지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보호무역주의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이 경제적으로 압박을 받는 가운데 미국은 해외공약을 축소하고 경제력에 알맞은 행동을 추구해야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미국은 걸프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단독으로 세계경찰의 역할을 행사하는데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라크와의 전쟁과정에서 미국은 군대와 장비로 싸웠으나 그 비용은 독일, 일본, 사우디, 쿠웨이트등이 분담했다. 특히 미국은 정치ㆍ경제적인 면에서 독일, 일본과 역할 분담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Ⅲ. 미ㆍ소의 관계

  1989년 12월 미소는 몰타(Malta)정상회담에서 냉전시대의 종식을 공식선언함으로써 미ㆍ소의 관계가 대립에서 협력관계로 변하게 되었다. 동서의 화해는 최근 동유럽의 민주화, 독일통일, 동ㆍ서군축, 경제협력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사실 소련은 1985년 3월 고르바쵸프 집권이후 군축제안을 포함한 평화공세를 추진했다. 이러한 고르바쵸프의 개방과 개혁정책은 냉전대결이후 소련의 발전전망이 밝지 못하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쵸프는 군사정책에 있어서 「합리적 충분성」「전쟁의 억지」를 최우선시 한다고 선언했는데 1988년 12월 UN연설에서 소련군의 50만 감축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또한 1989년 인민대의원 대회에서 소련의 군사비를 소련 GNP의 9%로 축소할 것을 발표했다.
  이러한 고르바쵸프의 방위정책의 의도는 소련의 군사비를 축소시켜 소비와 투자를 증대시키고 소련경제를 활성화하여 소련경제재건을 위한 적절한 대내외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소련의 적극적 평화외교는 NATO 동맹내부의 균혈을 균열을 가져오고 유럽에서의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주기도 한다.

  Ⅳ. 유럽의 통합과미국의 신대서양주의

  동ㆍ서의 냉전이 종식되자 유럽에서는 정치적ㆍ경제적 통합이 추진되는 가우데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점진적 해체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에대해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베를린을 방문하면서 신대서양주의에 입각하여 통일독일은 NATO에 귀속하여 NATO의 정치적 역할을 확대해야 할 것을 제의했다.
  신대서양주의는 유럽에서의 냉전질서해체와 독일의 통일이 NATO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오게 되었고 미국은 CSCE(유럽안보협력회의)가 NATO를 대체할 수 없고 NATO만이 미국과 통일독일, 유럽을 연결해 줄 수 있므을 강조했다.
  독일의 통일이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으로 완결되면서 통일독일의 NATO에 잔류여부를 둘러싸고 미ㆍ소가 대립을 했다. 미국은 통일 독일이 NATO에 잔류할 것을 주장했고 이에 대해 소련은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동시해체, 통독의 중립화를 내세웠다. 1990년 7월 소련을 방문한 콜 수상과의 회담에서 고르바쵸프가 통일독일의 NATO잔류를 인정함으로써 해결되었다.
  유럽에서는 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를 대체할 새로운 안전보장기구의 설치를 논의함으로써 신질서형성을 준비하고 있다.
  1975년 헬싱키에서 출범된 CSCE가 1990년 11월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함으로써 유럽의 신질서구축의 중심무대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냉전구조의 해체, 독일통일의 탄생과 독일의 군사대국화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독일을 집단안전보장기구의 일원으로 편입시켜 제약시키고 EC의 경제관계를 강화하면서 정치면에서는 CSCE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CSCE역할에 대해 각국의 입장이 다르다.
  프랑스, 독일, 소련은 CSCE의 위상강화에 적극적인 반면, 영국와 미국은 정치협상의 장으로써 CSCE를 활용하는 것은 찬성하나 안보조직의 중추로 삼는데는 반대하면서 냉전종식후에도 NATO가 유럽의 방위를 담당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1989년 이후의 유럽의 안보에는 변화가 있었으나 미국은 아직도 몇가지 이유로 인해 미국이 NATO를 통해 계속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소련은 군사적 강국으로서 유럽에 위협을 주고 있고 특히 소련의 개혁정책이 중단될 때 서유럽은 NATO를 통해 소련의 군사력을 견제해야 된다.
  둘째, 통일된 독일이 2차세계대전이후에 이루어진 유럽의 안정을 파괴할 수 있으므로 유럽의 통합이 진전됨에 따라 미국의 군사적 주둔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미국은 유럽에서 뿐만아니라 아시아ㆍ태평양에서도 재무장의 기능성이 있는 일본을 두려워하는 여러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군사적 주둔을 원한다고 주장한다.

  Ⅴ. EC통합과 미국의 대응

  1980년대 중반 유럽공동체(EC)의 통합운동과 함께 표면화되기 시작한 세계경제의 지역주의 추세에 미국도 적긎거으로 대처하고 있다.
  1985년에 시작한 유럽공동체의 통합운동은 1단계로 단일시장을 형성, 2단계로 통화통합, 유럽중앙은행 설립, 3단계로 유럽의 통화단위를 단일화하고자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EC통합에 EFTA(유럽 자유무역연합)가맹국들의 EC의 영향권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크고 결과적으로는 동유럽국가들도 이에 편입될 것이라는 관측이 있다.
  이러한 EC의 통합운동은 미국을 비롯한 북아메리카 대륙에 자극을 주고 있다. EC가 미국의 세계경제지배에 도전하고 나서자 위협을 느낀 미국을 대응책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다. 이에따라 미국은 1988년 1월 시행에 들어갔다.
  1990년 6월 미국은 멕시코와도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로 원칙적인 합의를 했고 최근 다른 중남미 국가들과도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용의를 밝혔다. 1991년 2월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지도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3자간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것을 선언했으며 금년 5월에 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로써 북미경제 블럭의 형성이 곧 이루어질 전망이다.
  중남미에는 앞으로 브라질ㆍ아르헨티나 공동시장ㆍ안데스 무관세 자유무역지대ㆍ중남미 공동시장등이 있으나 중남미의 각 국가는 이러한 경제통하의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고 관련국가들의 경제력이 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계획이 실행된다 해도 세계경제의 구도 속에서는 그 영향력이 미비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남미 지역에서는 미국의 후원을 받거나 북미 자유무역지대와 통합된 거대한 미국자유무역지대의 형성을 더 바라고 있고 이는 범미주공동시장의 형성을 가능케 할 수도 있다.

  Ⅵ. 우루과이라운드에서의 미국의 전략

  미국의 경제력 약화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또한 우르과이라운드와 무역압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은 1960년대까지 IMF, GATT체제를 바탕으로 해서 세계경제체제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의 경우 하공ㆍ우주ㆍ방위 부문을 제외한 대부분의 제조업분야에서는 경쟁력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었으며 반면 정보ㆍ통신ㆍ서비스부문은 크게 성장하여 미국산업이 전통적 산업에서 첨단산업ㆍ서비스산업으로 크게 변화하게 되었다.
  1947년에 설립된 세계무역규칙에는 서비스에 관한 언급이 없었고 서비스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국제규범을 GATT에 추가시키고자 하는 강한 욕구에서 1968년 미국을 중심으로 우루과이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와같이 미국은 GATT안에서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회복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이 우루과이라운드를 적극 추진하는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즉 EC가 지역협력주의라고 해서 GATT체제를 수용하는듯 하면서도 GATT의 정신을 상당히 배격함으로써 미국은 소외감을 느꼈고 EC의 협력과 단결에 대한 제한을 가하기 위해 이것을 제안하게 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미국은 농산물 수출에 비교우위가 있는 케인즈그룹과 함께 농산품도 공산품과 같이 수입을 자유화하고 농어보조금을 축소 또는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막대한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농업보조금의 지급을 없애고자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서비스부문에 있어서는 미국은 다른 선진국과 내국민대우, 무차별원칙, 영업의 자유를 주장하며 지적소유권을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미국으로서는 우루과이라운드를 성공적으로 끝냄으로써 EC를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과정에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은 또한 쌍무적 통상협상을 통해 수입적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으며 대미흑자를 많이 낸 일본등을 대상으로 미 의회는 보호주의 색채가 강한 법안을 상정해 놓고 있다.

  Ⅶ. 결론

  미국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세계적, 정치적, 경제적 지도국으로서의 위치를 회복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냉전이후의 서유럽에서의 지위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NATO존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통일된 독일의 NATO 잔류를 강력히 요구했다.
  유럽의 경제통합에 대항하여 대규모의 북미경제 통합을 추진하면서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그들의 비교우위가 있는 농산물, 서비스분야의 개방을 전세계에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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