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2주년 세계 노동절기념 「대전ㆍ충남 노동자 대회」

  세게노동절(May Day) 1백2주년을 기념하여 「노동운동 탄압분쇄와 임투승리를 위한 대전ㆍ충남 노동자대회」가 대전ㆍ충남지역의 민주노조를 모두 망라한 소속 노동자들과 시민ㆍ학생 7백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5월1일 저녁 7시 기독교연합봉사회관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특히 이번 대회는 그동안 단위사업장에 매몰되어 전개한 임금투쟁(이하 임투)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강고한 연대투쟁을 위한 자리였으며, 지난 1월 23일 대전ㆍ충남 업종노조협의회(전문기술노동자연맹, 병원노련, 언론노련, 전교조)가 발족된 이후 처음 단결의 장을 갖는다는 점에 있어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이는 대회집행위원장 윤희종(동일계전 노조위원장)씨의 경과보고에서 『그동안 뿌린 씨앗이 너무 적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로 모였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고 강경대 열사를 비롯한 애국열사들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된 Ⅰ부행사에서는 시종일관 엄숙한 분위기에서 연사들의 열띤 성토가 이어졌다. 대회사에서 대전노협 준비위원장 선재규씨는 『이제 우리는 굴종적 노예생활과 노동해방의 양자간에 선택해야 할 때이며 이자리는 축제마당이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91임투를 5월 총파업 투쟁으로 전개하는 연대의 틀을 마련하는 자리로 만들자』고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현창희(전자통산연구소 노조위원장)씨는 기념사에서 『오늘은 우리를 억압하고 있는 모든 세력들에 대한 경고의 날이며 자신의 무능력한 책임을 한자리수 임금인상으로써 강요하는 그들에게 단결투쟁으로 승리 나가자』고 말하기도 했다.
  연초 정부는 임금인상에 한자리수 입장을 고수했다. 특히 대전지역은 타지역에 비해 전반적으로 임금이 낮은 수준이고 이는 상대적 노동운동의 침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전공단지역내 노조들은 지난 1월부터 임투에 조직력 확보와 연대의 틀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2월26일 25개 노조가 공동임투를 결의한데 이어 4월3일 회사의 압력과 회유에도 14개노조가 교섭을 진행하는데 성공했다.
  조상익(삼왕 노조위원장)시는 『우리의 단결된 움직임이 보이자 회사쪽에서 지레 겁을 먹더니 「한자리수」는 금새 박살나더라』고 하여 웃음을 자아냈고 『더 나아가 정치적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쇠사슬에 묶인 삶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을 각인해야 한다』고 강변하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고 강경대열사 살인만행 규탄대회」로 뒤늦게 도착한 대전대협의장 윤원철<본교 총학생회장(행정ㆍ4)>군은 연대사에서 『대전대협 6만학도는 노동운동에 가해지는 정권ㆍ자본의 탄압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며 조그만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모든 투쟁을 다해 나가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Ⅱ부 행사에서는 노동자들의 다채로운 공연이 관중들의 뜨거운 호응속에서 펼쳐졌다. 유전공학연구소 소리패 「열린소리」의 「금을 준들 너를 살까」공연을 시작으로 동양강철 노동자 노래모임인 「어울림」의 「총파업가」, 제조업 연학노래패 「노동자의 함성」의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등의 공연이 이어졌고 세 소리패가 다같이 「총단결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에 관중들은 대회 시작부터 간간히 불렀던 「철의 노동자」로 답하기도 했다.
  노동가요의 주인인 노동자들의 이구동성에서 나오는 가락 하나하나에 힘과 감동이 배어 있었다.
  또한 동일계전 노동자 변상순 아주머니의 주먹을 불끈 쥔 선동연설은 많은 시선과 박수를 받았다.
  충남문화예술운동연합 소속 노래패 「그날」의 소공연이 있은 후 대전지역 노조 풍물패가 연합한 「몰아쳐가자. 단결로!」라는 주제의 풍물판 굿이 벌어졌다. 모두 세째거리로 구성된 풍물굿은 착취받는 노동자계급이 단결진군하는 가운데 가진자들의 교묘한 탄압에 부딪쳐 균열되나 결국엔 승리한다는 내용으로 무대위를 가득 메운 노동자들의 징, 꽹과리, 장고, 북들을 흥겹게 울리며 단결을 호소하였으며 세번째거리에 등장한 전노협깃발에 관중들은 큰 박수로 맞기도 했다.
  이날 마지막 순서에서 참석자들은 특별결의문을 통해 「노태우 정권의 퇴진을 위해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하여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만국 노동자의 축제가 되어야 할 5월1일, 왜 우리 노동자들은 늦은 시간에 조그마한 실내에 모여 투쟁을 결의해야만 하는 것일까? 노동해방의 그날, 해방광주의 5월에 환한 웃음으로 만날 것을 결의하면서 노동자들은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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