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꺼내든 기자의 다시 읽기

  2006년 4월. 처음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관 편견』을 손에 잡게 됐다. 어릴 적에 사다놨던 책을 그제야 책장에서 꺼내 든 것이다. 당시 『오만과 편견』은 영화로 개봉돼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다. 쾌쾌히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한 장 한 장 손에 땀을 쥐며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책장을 덮자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7년 8월의 한 여름밤, 방 안 침대에서 빈둥거리던 기자의 눈에 책꽂이 정중앙에 위치한 『오만과 편견』이 다시 보였다. 또 한 번 읽고 싶다는 강한 끌림에 책을 집어들었다. 두 번째 책 읽기를 마치고 그 여운을 기억하고 싶어 책 속지에 날짜와 시간을 적었다. 그리고 바야흐로 2013년 4월, 기자는 또다시 『오만과 편견』을 찾게 된다. 7년이 흐른 지금, 오랜 시간 묵혀왔던 『오만관 편견』을 세 번째 꺼내 책장을 펼쳤다.
  막상 책을 펼치기는 했지만 그때의 감동과 여운이 또다시 느껴질지 의문이 들었다. 책의 첫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첫 문장에 강한 수긍을 하는 기자의 모습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기억을 곰곰이 되돌려보면 기자가 중학생이었을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반면 지금은 돈 많은 독신남자의 외로움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다.

▲영화 '오만과 편견'중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고백하는 장면

  책의 도입부를 지나면 극 중 여주인공 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친구인 샬럿이 결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한다. “서로의 취향을 아주 잘 알거나, 혹은 서로 아주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둘의 행복이 더 커지는 건 결코 아니야. 취향이라는 건 계속 변하게 마련이라 나중엔 누구든 짜증이 날 만큼 달라지게 마련이야.” 샬럿은 이렇게 말한다. 기자는 결혼관에 대한 샬럿의 뼈 있는 조언을 속으로 되뇌었다. 예전에는 빠르게 지나갔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기자의 삶과 견주며 곰곰이 따져봤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세 번째에서야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뜻밖의 수확을 거뒀다. 
 『오만과 편견』을 읽어본 독자라면 남자주인공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고백하던 격정적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7년 만에 만나는 다아시의 고백에 어떤 느낌을 받을지, 예전과 같은 감동이 밀려올지 여러 생각이교차했다. ‘애를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 봤자 안 될 것 같습니다. 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당신을 얼마나 열렬히 사모하고 사랑하는지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아시의 엘리자베스를 향한 사랑이 터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다아시에게 돌아온 건 냉혹한 답변뿐이다. 극 중 엘리자베스는 평소 다아시에게 안 좋은 감정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다아시를 시원하게 차버린다. 다아시의 고백 이후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은 남자 주인공을 오만에서 벗어나게 하고, 그에 대한 편견에 얽매였던 여자 주인공을 자유롭게 한다. 기자는 여기서 제목이 왜 오만과 편견인지를 알게 됐다. 그동안 두 번의 책 읽기에서도 눈치 채지 못했던 사실을 이번 세 번째 리리딩을 통해 비로소 찾게 된 것이다. 남녀 주인공이 각자의 오만과 편견을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작가는 남자 주인공을 오만, 여자 주인공을 편견으로 비유한 것이다. 제목에 대한 이해만 했을 뿐인데 기자는 200년 전 작가와 비밀을 공유한 느낌이 들었다.
  책 읽기를 끝마치고 기자는 어릴 적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애절한 사랑에 울며 맘 졸이던 기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7년이 지난 지금은 작가가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왜 이런 표현을 썼는지를 알고자 했다. 7년 전 단순히 주인공에만 매료됐던 기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리리딩은 매번 새로운 것을 깨닫게 한다. 등장인물의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대화들은 어느 순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도 책장 속 한 편의 추억을 다시 꺼내든 이가 있는가. 다시 읽기는 그동안 잊혀진 과거와 마주하고 지나온 시간의 향수를 기억하는 특별한 만남을 갖게 할 것이다.

오수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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