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과 돈, 취업성공으로 연결되는 인문학

  인문학의 위기가 지나고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열풍의 열기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인문학의 봇물이 터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대학과 지자체,마을, 도서관, 시민단체 단위에서 많은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있다. 이와 함께 참된 인문학,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은 무엇일까를 두고 다양한 책들을 통해 논쟁이 일고 있다. 
 
  인문학으로 스펙하라?
  신동기인문교육연구소 대표인 신동기 씨는 인문학이 기업 조직원들의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고, 대학생들의 비전 설정과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신 대표에 따르면 종교와 신이 학문이 아닌 것처럼 인문학 역시 숭배와 예찬의 대상이 아닌 내 것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인문학 강의 수요가 가장 많은 곳이 기업의 임원인데 인문학이 CEO들의 현명한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세계화에 발맞춰 외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지구촌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수단 역시 인문학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는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 역시 인문학을 통한 직원들의 창의성 발현에 있다고 본다. 이어 21세기 가장 창의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Ⅱ를 발표할 때 자신의 창의력 원천이 인문학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를 피력한다.
  또한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학문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함께 동료들에 대한 인정으로 직장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상시적인 학습커리큘럼이 이루어지는 조직구성원들의 조직에 대한 자부심은 상당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인문학은 수많은 역할 모델뿐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일을 이루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과 지혜까지도 자상하게 안내해준다. 인문학은 곧바로 생산과 돈, 취업성공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인문학적 CEO 인가?
  반면 스티브 잡스는 과연 인문학적 CEO인가 반문하는 의견들도 있다. 이들은 인문학 조차 자기계발의 도구가 된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인문학은 어떤 것일까를 묻는다. 계원예술대학교 성동진 교수는 새로운 자본주의가 인문학을 끔찍하게도 애호한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신자유주의가 장려하는 새로운 인간 모델을 기업가라고 말할 때, 기업가란 인물의 모습은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기업가란 열정적이고 창의적이며 자발적이고 반 규범적인 인물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잡스가 인문학에 빚졌다고 말할 때의 인문학은 문사철을 가리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이란 인간에 관한 학문으로 변신한 경영학과 기술에 관한 지식들로, 굳이 철학과 문학 따위에 신세를 질 이유가 없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새로운 자본주의에 필요한 정신을 집약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나 잡스는 억만장자 자본가이기에 앞서 히피 성향의 괴짜에 외골수, 반사회적 인물로 표상된다. 그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거대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신화를 만들어 냈다. 자본가는 이제 창의적인 예술가란 가면을 쓴 모험적인 사업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제품을 이야기하는데 가혹한 노동조건을 견디다 못해 잇달아 자살한 폭스콘 노동자의 처지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상품에서 정작 사회화된 노동을 보지 못한다. 그 안에 창의적인 개인의 열정과 상상력이 들어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런 탓에 성 교수는 노동이라는 고역이 부재하는 것처럼 상상하게 하는 우아한 가림막이 바로 인문학이라고 규탄한다. 이를 테면 서울형 복지란 이름으로 고안된 ‘희망의 인문학’이란 프로그램은 ‘기업가 정신’을 통해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고 살아가라는, 악명 높은 노동연계복지의 복음이 스며있다고 비판한다. 이는 사회연대 원리에 근거해 위험에 대처하는 종래의 복지를 철두철미하게 개인화한다. 급여, 후생, 복지 같은 ‘사회적인’ 테크닉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창업, 교육, 훈련 같이 기업가처럼 행동하는 개인을 제한 지원하는 신종 복지 테크닉이 들어선다. 여기서 인문학은 바로 그런 개인과 경제활동을 매개하는 윤리로 자리 잡는다. 성 교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러한 인문학 이데올로기, 인문학이란 물신 곧 말로 사유를 중단시키는 미끼를 소멸 시켜야 할 때가 아닌가를.

  사전은 인문학에 대해 정치·경제·사회·역사·철학·문학 따위 정신 과학의 총칭이라고 정의한다.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논의는 인간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그리고 질문하게 한다. ‘어떤 것이 더 인간다운 것인가’하고 말이다.  요즘 미셸 푸코나 슬라보 지젝 같은 현실 참여적 철학자들이 인기를 끄는 것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사람들의 지적 노력으로 보인다. 인문학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현실 속에 들어가 깊은 고찰을 하게 하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주무늬 대학원생기자 snowmoon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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