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치 경제 질서의 재편

  일본중심 아시아경제권 통합과 유교「이데올로기」

  Ⅰ. 「선망」과 「경계」

  일본에 대한 논의 는 대단히 민감하고 복잡한 심정적 반응을 불러 일으킬 소지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식민지 통치를 받았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일본에 대한 혐오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이다. 오히려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형성되어 온 한일 관계의 총체적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심리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일본의 경제력에 대한 「선망」과 함께 국제적정치적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가 복합된 스테레오타이프가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종결 이후 진행되어온 장기적 주한미군 감축에 위협을 느끼는 일부 보수적인 식자들도 일본이 군사력을 강화하여 북한의 침략으로 부터 남한을 보호해 줄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는 뜻을 비춰왔다. 일본의 정치ㆍ경제적 지위에 대한 이러한 굴절된 의식 상태는 반공 분단 국가체제하에서 식민지 통치의 잔재가 어설프게 정리되었으므로 일본이 객관적 인식 대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일본을 객체로 인식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정치적 행동인 것이다.

  Ⅱ. 경제적 선공에 대한 선망

  일본 경제가 세계적 선망의 대상으로 등장한 계기는 1973년의 제1차 석유위기가 초래한 세계적 경기침체이다. 일본경제는 철강ㆍ조선ㆍ석유화학ㆍ비철금속 정련등 자원 및 에너지 다소비형 중화학공업으로 부터 자동차ㆍ전자기기 등을 중심으로 하는 조립가공형 중화학공업 및 정밀화학 부문으로 주력산업을 전환시킴으로써 수출경쟁력을 강화시켜 상대적으로 신속히 불황에서 벗어 났다. 동시에 정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소품종 다량생산 방식으로 부터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신속히 전환하여 부가가치를 높여왔다. 이는 미국과 EC지역에 대한 막대한 무역흑자의 누적 및 무역마찰 문제의 심각화를 가져왔다. 1985년의 선진 5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합의된 대폭적 일본 엔화 환율 인상 조치는 예상과 달리 강력한 기술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 수출사업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 수출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오지 않았다. 따라서 「무역마찰 회피형 투자」가 구미지역에 집중되는 결과가 되었다. 즉 세계적 채권자로 등장한 것이다. 또한 외환표시 명목임금은 세계 최고수준에 도달했다. 따라서 부품가공등 노동집약적 공정을 풍부한 저임금 단순 노동력이 동원 가능하고 지리적으로 근접한 ASEAN제국등 동남 아시아 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정비되어 있는 한국 대만등 아시아의 신흥공업국 지역(ANIEs)은 대량생산 기지로써 일본의 기술 및 자본재 수출대상지역이라는 위치를 가지게 되었다. 반면에 일본 자체는 연구ㆍ개발ㆍ관리의 거점 및 금융 중심지가 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이상과 같은 위상 변화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하여는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을 정점으로 편성되는 지역적 경제통합에 대한 논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언급한 일본 ANIEs, ASEAN으로 구성되는 지역간 분업 체제에 덧붙여 소련의 극동지역 중국 동북부ㆍ북한ㆍ남한을 포함하는「동북아경제권」에 대한 논의가 일본측으로 부터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즉 사회주의권이 자급자족적 계획경제에서 벗어나 개방적 시장경제로 이행하고 있다는 기본적 정세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자금ㆍ남한의 대량생산 능력ㆍ중국의 노동력ㆍ소련 극동지역의 자원을 결합한 경제권 개발이 가능하다는 구상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도 자기만 빼놓고 이웃끼리 벌리는 잔치에 끼어들기 위해 일본과의 경제교류를 서두를 것이며 결과적으로 남북한을 동시에 일본이 주도하는 「동북아 경제권」내부의 대량생산 기지로 장악할 수 있다는 암묵적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다. 여기에 편승하여 남한의 보수정권도 사회주의 체제의 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함으로써 이념적 정당성을 내부적으로 확립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북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동남아와 동북아 지역을 포괄하는 일본 중심의 경제권 통합 구상은 1992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EC시장통합 및 현재 협의가 진행중인 북미자유무역권과 함께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에 의한 세계 시장의 지역적 분할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시장통합이 진행되는 EC와 북미지역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하여 일본은 이들 지역에 대한 투자들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선진 자본주의 국가간의 경제적 상호 결합이 일층 촉진되는 결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국제수지의 흑자ㆍ적자를 가지고 국민경제의 자립상태를 논의하는 작업의 실질적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즉 한국에 있어서 일본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선망은 동시에 일본 중심의 경제권 통합 구조에 편입되어 물질적 생활이 향상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전화된다. 또한 대량생산 기지화에 따라 파생되는 분배문제 및 환경문제 등 내부의 사회문제를 국제경제적 지위상승에 의해 은폐하는 국내 정치적 효과에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Ⅲ.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

  일본 자위대의 동향 문제는 향상 주변국가들의 날카로운 관심의 대상이 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 가시적 군사력이 크기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국제관계속에서 가지는 자위대의 성격에 대한 고찰이 보다 중요하다.
  일본의 정치체제의 성격을 분석하는데 있어 군사력 보유를 포기한 「평화 헌법」과 실질적 무력 증대를 요구하는 「미일ㆍ안보조약」과의 상호모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패전직후 파시즘의 해체와 민주적 개혁이 강조된 시기에 성립한 「헌법 체제」에 있어서는 군국주의 부활 방지가 강조되어 있다. 「안보 체제」는 미소간 냉전의 격화에 따라 일본이 아시아 지역의 「반공의 요새」및 군수산업기지로 규정되었다는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한국전쟁에 출동한 미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1950년 설치된 경찰예비대를 모체로 하는 자위대의 역할과 행동범위는 미일 군사동맹체제 안에서 어디까지나 미군의 보조적 군사력으로써 규정되어 오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의 입장에서 반공이라는 명분을 강조할 경우 미군의 동맹군인 자위대의 무력 증강에 대한 시비는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오히려 미일간의 군사적 역할 분담관계에 있어서의 비중변화가 가져오는 영향력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일본 자위대에 대한 문제제기가 바로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논리로 귀결될 가능성도 있다.
  페르시아만 해역에 대한 일본 소해부대 파견이 가지고 있는 상징적 의미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군사적 야욕이라는 감정적 단순 논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다. 페르시아만 전쟁에서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이 일방적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페레스트로카 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는 소련이 군사적으로 제3세계 지역에서 무력화되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제2차 세계대전 종결이후 미ㆍ소 양국을 축으로 하여 편성되었던 냉전시대의 국제 질서가 일단 미국의 군사적 단독우위를 전체로한 질서로 재편성되고 있다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전쟁의 명분 자체에 있어서도 「자유」라는 이념적 성격을 벗어난 「석유」라는 현실적 이익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따라서 일본 소해부대의 파견 역시 사회주의 세력의 진출 저지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총체적 이익 실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자위대의 존재 이유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위대의 국제적 역할 증대가 가지는 의미는 경제적 주도권의 상대적 약화에도 불구하고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려는 미국의 정책 기조 안에서 파악될 필요가 있다. 즉 현재 일본의 가시적 군사대국화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는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집합적이며 총체적인 이익을 좌우하는 분쟁이 아닌 일본 주도 경제권 내부의 지역적 분쟁에 대해 일본이 상대적 자율성을 가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는 확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수단으로써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역시 제약되어 있다. 오히려 유엔등 국제기구의 임무를 수행한다는 명분을 가진 자위대의 상징적 참가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군사력 증강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정치적 영향력 증대에 대한 경계론은 미국이 행사하는 정치적 헤게모니의 성격을 전제로 할 때 정당하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헌법의 개헌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제도적으로 대규모 군사력 동원이 불가능한 현실도 중요하다 이는 물리적 군사력의 양적 지표가 가지는 위협적 요소만이 아니라 일본 내부의 평화지향적 사회세력의 존재로 고려해 넣을 때 자위대 문제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위대 증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경우에도 일본의 극우 보수세력과 2차대전 이후 제도화된 민주주의 질서를 지키려는 세력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소위 「친한파」가 우익 보수세력이라는 딜레마가 있다는 것이다.

  Ⅳ. 「유교 문화권」이데올로기

  한국등 아시아 제국의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일본에 대한 선망과 경계라는 인식의 양면성에 대응하여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1980년대 이후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 및 미국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에 대한 저항감이라는 복합적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는 과거의 천황제 파시즘에 대한 어두운 기억과 침략전쟁에 대한 어두운 기억과 침략전쟁에 대한 죄의식이 희박해지는 경향에 덧붙여 풍요한 사회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무관심이 중요한 배경이 된다. 즉 보편적 가치에 입각한 정치의식의 공백 상태를 메우기 시작한 일본판신부수주의가 고도 경제성장을 근거로 하여 현실적 존재 정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점에서 「유교 문화권론」은 일본과 아시아 신흥공업국의 경제성장을 유교라는 공통된 가치관에 입각하여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논리체계로써 주목된다. 구체적으로는 유교 문화의 영향에 의한 높은 교육수준과 업적주의가 자본주의 발전에 기능적으로 작용했다는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말하자면 서구자본주의에서 강조되는 청교도 윤리의 동양판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지향적 근대화 과정에서 가족주의적이며 전근대적인 가치관으로 간주되어 탈피 대상으로 되었던 유교에 대한 평가 자체가 상황 변화에 따라 정반대로 전환되고 있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제권 통합 과정을 심정적으로 합리화시키는 동원 기능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로써 「유교 문화권」개념이 사용되고 있는 측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1868년의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전통 문화가 강조되는 시기는 항상 「서양의 선진국으로부터 배울 것이 더이상 없다」고 보수 세력들이 자신감을 가지면서 아시아의 맹주(盟主)를 자처하고 나설때였다. 그러나 현재의 「유교 문화권」논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효율성이라는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으며 현실 국제 정치적 쟁점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즉 국제 정치 질서에 대한 미국의 주도권을 수용하는 입장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되는 자본주의적 발전이 시민적 주체성에 입각한 민주주의 및 이에 기초한 국가적 자주성과 반드시 결부될 필요가 없다는 논리적 함축이 「유교문화권」개념안에 들어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또한 여기에는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경제발전에 효율적이라는 내용의 발전도상국 지역 대중 설득 수단이 「일본 모델론」과 혼합되어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동시에 퇴색하는 냉전 논리를 보완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Ⅴ. 국내의 일본 영합구조

  일본의 정치ㆍ경제적 위상 변화가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국내문제와의 연관 속에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1987년 이후 사회운동 세력으로 본격화된 노동운동에 대한 반대논리로 제도권 언론은 끊임없이 「일본행과 남미행의 기로」라는 대중적 협박을 자행하여 왔다. 그러나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자본주의적 시장경쟁 메카니즘의 활성화가 이룩된 배경에는 재벌해체ㆍ농지개혁ㆍ노동조합의 합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경제개혁이 미군 점령기에 수행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있다는 측면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다. 또한 남미지역의 공업화가 군사정권 하에서 분배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시장적 한계에 부딪쳐 좌초하였다는 사실도 망각되어 있다. 정치적 분야에서 통일에 대해 일본의 협조를 바라는 논리도 확실히 군사대국화에 대한 경계론과 모순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한일간의 고우급 정치회담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닌 「안정」이 일본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표현의 삽입이 한국측으로 부터 요구되어 왔다. 이러한 현실을 가장 집약적으로 표현하는 사례는 침략전쟁을 합리화하는 교과서 내용에 대한 항의가 힘을 길러야 한다는 「극일론」으로 정리되어 「약했으니까 당했다」고 약육강식논리를 스스로 받아들인 결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결국, 일본의 정치ㆍ경제력 세력증대가 한국내의 일본 영합구조를 경유하여 기득권 집단의 현상 유지에 기여하게되는 구조적 연관에 대한 파악이 중요하다. 바다 건너에 있는 일본의 실체를 파악하는 작업은 동시에 한국 사회구조내부에 정착된 의존적 체질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Ⅵ. 맺음말

  이글에서 끊임없이 강조해온 논점은 일본의 정치ㆍ경제적 위상의 상승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안에서 담당하는 역할의 증대 과정으로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이다.
  일본은 핵무기에 의한 군사력의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는 미국 주도 세계 정치질서안에서 경제적 발언권을 증대시켜 오고있는 경향을 보여 왔다. 한국의 입장은 경제적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으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직접적 동맹관계에 놓여 있다. 따라서 일본에 대한 문제 파악은 미국과 일본의 상호 역할 분담 관계를 기초로 하지 않으면 실질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또한 일본 「성악설(性惡設)」에 입각한 감정적 반일이 국내의 일본 영합구조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흐리게 할 우려가 있음이 지적되었다. 결론적으로 사회의 민주화와 민족 통일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하여 일본문제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 필요하다는 관점을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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