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어둠을 불사르는 기차가 되어

  평론부문

  조성범(철학ㆍ4)

  ⅰ.

  시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로 노래한다. 이때 시인에게 주어진 현실은 단순히 시인의 시적 주관에 입각한 현실이 아니라 보편적 의미에서의 객관적 현실이다. 즉 시인에게 있어서 시적 대상이란 인식주관에 기반한 주관적 대상이 아니라 인식주관과는 독립되어 외부세계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단순히 객관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행위만으로 자신의 시적 작업을 그치는 것일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시인이 시를 쓰는 행위와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 행위 사이에서 우리는 아무런 질적 차별성을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사가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 자체는 객관적인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자신의 목적과 부합되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완결적인 의미를 갖지만 시인이 시를 쓰는 것과 같은 예술적 행위는 단지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분명 시인은 객관적 현실만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시인이 현실을 노래한다는 의미는 주어진 현실을 단지 설명해내는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능동적 반영이자 주체적 실천의 행위임을 지칭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실이라는 개념이 의미하는 바는 동시적(同時的)대상세계 뿐만이 아니라 대상세계가 현재의 형태로써 존재하게된 원인이었던 과거의 변화과정과 미래에 대한 조망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현실은 사물의 발전 과정상의 합법칙성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물질운동의 역사성 속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에게 있어서 주어진 세계, 즉 시적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현상적으로 표출되는 일면적 모습 이면에 은폐되어 있는 다층적 구조를 파악해내는 지난한 작업임과 동시에 현실의 역동적인 과정을 순간 순간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해명해 나가는 작업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80년대에 거두어들인 문학의 성과와 90년대 초반에 보이고 있는 그것의 발전 가능성은 「민중시」속에서 압축되어 표현되고 있다고 해도 과도한 의미부여는 아닐 것이다. 그만큼 민중시는 80년대의 모순된 사회구조에 대한 치열한 인식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현실성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의 과정속에서 때로는 표현형식의 빈곤과 소재주의라는 외피를 과감하게 떨구어 내지 못하는 경우도 우리 눈에 종종 뜨인 것이 사실이다. 이는 이전에 저급하거나 치기만만한 특징으로 간주되었던 문학의 소박한 소재주의와 거친 표현들이 시의 생생한 현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되고 옹호되었던 80년대 시단의 경향성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은 민중시가 올바르게 자리매김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현상에 불과하며 전반적으로 민중시는 80년대를 지나오면서 안정적인 발전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중시는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새로운 질적 성장의 준비기를 맞이하는데, 이 과정에서 새롭게 정치적 진출이 시작되는 민중의 미적 이상을 반영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러한 시도들 중 대표적인 경향으로 들 수 있는 것이 노동자문학 계열에서 발전한 박노해, 백두산, 정인화류의 「계급적대성의 미학」경향과 지식인문학계열에서 발전한 김남주류의 「혁명적 지조의 미학」경향, 그리고 김정환의 「과학적인 전망의 미학」경향이다. 이중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할 경향은 바로 김정환의 「과학적인 전망의 미학」이다. 그 이유는 바로 문학에서 제기되는 전망의 문제에 대하여 시인 스스로가 과학성을 가지고 이를 담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문학에서의 전망이란 일종의 문학 본연의 어떤 현실인식의 총체성의 극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망은 문학의 총체성을 완성시키는 최후의 관문이다.
  이런 점에서 문학의 총체성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현실주의 문학은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묘사의 진실성, 전형과 함께 문학적 전망을 문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민중시속에서도 전망의 문제는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김정환은 이렇게 민중시속에서 중요하게 대두되는 전망의 문제를 과학적인 차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시인이다.

  Ⅱ.

  김정환은 한국 시단의 질적 비약의 시대인 80년대에 등단한 젊은 시인이다. 그는 시의 진실이 어디로 향하여야 하는가를 지적하기 위해 현실을 직관으로써 마주대하고 끊임없는 자기 몸부림으로 민중시의 방향성을 부여잡는다. 이를 위해서 그는 형상의 미학에 대한 치밀한 이해와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통일시켜 새로운 전형을 통해 과학적인 전망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결국 과학적인 민중시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지만 이 나침반이 시의 진실성을 포괄해내기 위해서는 다시금 시인의 내면에 숨어버린 직관의 정서를 되찾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김정환에게 있어서 직관의 정서는 주로 「사랑」과 「그리움」으로 나타난다. 그의 첫시집 「지울 수 없는 노래」는 바로 이러한 「사랑」과 「그리움」을 시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불현듯, 미친듯이! 솟아나는 이름들은』마침내 그리움이 되어 시인의 가슴에 불을 지르게 되지만 그래도 『지을 수 없는 노래』는 시인의 목젖에 사랑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민중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으로 시인은 민중의 세계를 바라보지만 그것은 단지 김정환이라는 한 지식인이 실존속에서 행하는 양심적 반성이라는 의미 밖에는 갖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가 이제껏 노래한 민중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기존의 가치질서와 사회체계를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는 단지 소극적인 의미의 사랑과 그리움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소극성은 김정환의 두번째 시집이자 하나의 장편 연작시인 「황색예수전1」에서 어느정도 극복되어 간다. 여기서도 그는 「지을 수 없는 노래」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중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집요하다고 느낄 정도로 추구한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는 사랑과 그리움은 한 양심적 지식인의 자기반성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민중해방의 세계를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시집 속에 집약시켜 놓고 있다. 즉, 여기에서 김정환은 예수의 일생을 통해 민중해방의 과정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해방의 과정을 완결시키는 내적 동력으로 작용하는 사랑과 그리움은 이전의 『지을 수 없는 노래』에서 나타나는 사랑, 그리움과는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움이 많을수록 사랑함이 치열할수록
  부활의 나라는 더욱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 사랑, 이런 것들은 너희가 이 땅위에서
  가장 소중히 실천할 일이나
  그것은 부활에 대한 예감일 뿐
  이승의 차원과는 다른 것이니라
  너희의 마음 속에만 있고
  너희의 그리움 속에만 있고, 슬픔속에만 있고
  -「서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에 답함」부문
  결국 사랑과 그리움은 부활의 나라, 즉 민중해방의 세계로 가기위한 내적동력이므로 이 땅의 민중들은 이를 『가장 소중히 실천한 일』이라고 예수는 강변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랑과 그리움이 이전의 모습과는 다른 질을 갖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실체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상태일 뿐이다. 즉, 예수의 실체는 시인도 아니고 민중도 아닌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관념의 응집물일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과 그리움은 『너희의 마음속에만』있는 것이며 그 실체는 불분명하고 모호한 것이다.
  이처럼 「지을 수 없는 노래」와 「황색예수전1」이라는 두 권의 시집속에서 사랑과 그리움의 정서로 민중을 향해 다가가지만 결국 양심적 지식인의 관조적인 자기반성, 또는 실체가 불분명한 관념성으로 인해 궁극적인 지향점에 도달하지 못했던 김정환의 시는 특유의 일관성(1)물론 이 일관성은 민중시에 대한 방향성을 획득한 일관성이다. 과 자기부정을 통해 변모해 간다. 이는 「해방서시」와 「우리, 노동자」를 거쳐 마침내 연작시 「기차에 대하여」에 도달하는 과정 속에서 확인될 수 있는데, 특히 연작시 「기차에 대하여」는 이전의 시집들과 질적인 차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김정환에게 민중시에 대한 과학적인 초기에 출발과정이었던 「회개한 모더니스트」로서의 이미지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변혁적 전망을 가지는 시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우리는 모더니스트도
  인민주의자도 아니다.
  -「과학의 심장」부분

  그러면 지금부터 김정환이 펼치는 시세계로 구체적인 여행을 떠나도록 하자.

  Ⅲ.

  민중에 의식적 자각과 외적 역량의 성숙에 의하여 변혁의 주체로써 민중을 자각하게 된 김정환은 사회적 현실을 고백하며 세계관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비로소 자신의 시세계에 실현시킨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인식속에서 민중시학을 추구해 가던 그가 「기차에 대하여」에서 역사의 합법칙성과 현실극복에 대한 가능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는 현실이 과거의 축적 속에서 미래를 향해 열려져 있기 때문이다. 미래가 갖고 있는 이러한 개방성과 가능성은 현실에 내재되어 있는 법칙과 잠재되어 있는 필연성에 의해 연역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획득한 과학적인 전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기차는 구식이다
  음침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기름묻은 이슬이 검게, 선로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젖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
  1950년대를 생각한다.
  강철이 강철과 부딪쳐
  인간이 맘과 미래를 열망했던 시절
  눈동자여 젖어 빛나던
  검붉은 눈동자
  이 매니큐어의 세상에서
  기차는 구식이다.
  암울한 시대가
  끝났다는 듯이
  -「검붉은 눈동자」전문

  무쇠와 근육을 부딪쳐
  근육과 눈물을 부딪쳐
  울컥이며 가자 만국의 노동자
  덜커덩거리는 것은 시대일 뿐
  우리들의 심장은 촉촉하고 강하다.
  음침한 것은 또한 화려하다.
  대낮 햇빛 밝은 시절의
  영롱한 인간이여
  미래여 우리가 걸어온
  함성 위에 굵은 눈물로
  더욱 강인한
  철길 위에
  드디어 우리는 자유라고 쓴다.
  갈 길 위에 쓴다. 오 진정한 자유
  -「철길 위에 쓴다」전문

  인용시 두 편에서 우리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은 부분은 시어의 변화이다.
  위의 시에서 김정환은 시적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영역을 점차로 확대해 가고 있는데, 이는 현실 속에 용해되어 있는 일상언어를 시적 언어로 차용함으로써 현실과 더욱더 친화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현실유착의 기법이다. 놀라울 속도로 변모하는 현대사회의 성격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규명하기 위하여 사회과학의 도움을 중심축으로 활용하고 있는 그는 사회과학적 언어를 통해 절제된 감정을 표출해 내면서 미학적 서정성을 시어 속에 담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자칫 잘못하면 지식인이 갖는 관념성이라는 자기한계로 말미암아 직접적인 현장체험자인 민중과는 분리된 채 다분히 관찰자로 전락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시인은 지식인이라는 자신의 현재적 존재를 자조적인 음성으로 되묻기도 한다.
  오늘 부는 바람은 심상치 않지?
  그런 만큼 우리는 아직 소시민이야, 그렇지?
  -심상치 않지?」부분
  그러나 이것은 김정환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시민적 한계는 분명히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현재적 의미에서 자각되지 못한 존재, 즉 민중 스스로의 시대적 상황일지도 모른다.
  김정환은 문학이 가지는 쟝르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는 시인이다. 문학이 가지는 쟝르의 특성은 다양할 수도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문학이 여타의 예술에 비해 작가의 사회적 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쟝르라는 의미로 한정짓도록 하자.
  『문학은 다른 종류의 예술이 조금밖에 가지고 있지 않은 예술가의 정치적 관심, 표현되는 여러 사건에 대해 예술가가 사회적으로 능동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문학에서는 작품의 예술적 질을 손상시키지 않고, 묘사되는 여러 사건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가장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소연방과학아카데미 편, 『미학의 기초Ⅲ』, 편집부 옮김, 논장, 1989.5.6)그의 이러한 노력을 가능하게 해주는 동력은 현실의 풍부함속에서 형성되어진 시인의 사회적 태도이며, 이 사회적 태도는 자신의 시세계로 아무런 여과과정이 없이 그대로 인입되어 버리기 때문에 역설적인 면에서 더욱 진한 시적 감동을 우리가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때로는 절제되지 못한 직접적인 표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에 긴장감이 결여되기도 하지만 그가 갖는 구성상은 치밀함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에 충분하다.

  결국엔 구체성에도 꼭 마찬가지로 계급성이 있다. 서정성에도, 그렇지?
  그것은 25평 아파트로 가는 통론가?
  -「서정의 통로」전문

  물론 그렇지 단순한 모순은 우리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
  자본주의는 복잡하다.
  그러나 단순성에는 반동적인 것과 혁명적인 단순성이 있다. 요는 단순성에도 계급성이 있다.
  이를테면 그것은 태권V와 외계 로버트의 싸움이 아니다.
  …………
  이미 사랑과 투쟁은 둘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하기보다는 기본적이고 
  이를테면 지는 해와
  찬란한 완성의 단순함이다.
  -「사랑과 투쟁은 둘이 아니다」부분

  인용시에서 그는 자신의 사회적 태도, 다시 말해서 「구체성에도 계급성이 있다」는 사실과 「사랑과 투쟁은 변증법적 통일관계」라는 사실을 시 속에서 표현해 내고 있는데, 그 특유의 치밀한 구성력은 절제되지 못한 표현으로 발생하는 긴장감의 결여를 극복해 내면서 시적 감동을 극대화 시키고 있다.

  ⅳ.

  현실이 갖는 다양함 속에 자칫 은폐되기 쉬운 총체적인 세계관을 획득하게된 김정환은 자신의 과학적 전망을 시에 체화시킨다.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과학적 전망을 들려준다.
  마침내 눈물을 씻으라 찬란한
  우리의 세상 앞에서
  전망의 광채를 보아야 한다
  너그럽고, 치열하게
  더욱 과학적으로, 더욱 진보한
  노동자의 젖은 눈망울로
  마침내 인간이 만들어낸
  피땀의 꽃을 보아야 한다.
  -「피땀의 꽃」부분
  그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자연보다 불멸인/우리들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물론 그 미래는 「더욱 과학적으로, 더욱 진보한」미래일 수 밖에 없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실의 연장선상에서 이룩됨을 시인은 잊지 않는다.
  그 나라를 멀리에서 찾지 말라
   멀다는 것은 옛날이라는 뜻이다
  ............
  그 나라를 멀리에서 찾지 말라
  멀다는 것은 발이 허공에서
  떨여졌다는 뜻이다

  -「그 나라를 멀리에서 찾지 말라」부분

  그러므로 시인은 현실의 밖으로 벗어나지 말고 현실 속으로 들어 올 것을 요구한다. 「사랑은 차창밖에 있지 않다」며. 그리고 그는 마침내 현실에서 출발하여 미래를 향해 달리는 기차를 발견하게 된다.
  사랑은 차장 밖에 있지 않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아직」부분

  이제 시인은 기차를 운행하는 주체, 기차를 달리게 하는 동력에 대해 계급적 자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자각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며 숱한 시련을 거쳐온 축적의 과정이었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생겨나지 않았다
  노동자 계급 또한 돌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벗」부분

  철커덩철커덩
  빠르게, 강하게, 뜨겁게, 조직적으로
  용광로 쇳물은 기나긴 주형을 따라
  아직 식지 않은 채, 쇠막대기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공장 노동자
  세상을 변화시키며 동시에
  스스로를 강철로 변화시킨다
  -「용광로 쇳물은」부분

  두번째 인용시에서 김정환은 자신이 자각한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에서 보이는 물질운동의 한계로 인하여 『우리는 아직 우리의/힘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있음을 실토한다. 이는 그의 시가 갖고 있는 진실성의 표현이며 객관세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인 것이기 때문에 그는 시대의 어둠을 노래할 수 있고 미래에 대한 과학적이 전망을 시 속에 투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둠을 노래할 때 그들은 우리와
  同精한다. 그러나 나는
  어둠 때문이 아니라 빛을 위하여
  이 땅을 퍼 담는다. 노동자
  -「이 땅을 퍼 담는다. 노동자」부분

  김정환은 시의 어둠을 노래한다. 어둠을 불사르는 빛을 노래한다. 그리고 시대의 어둠을 불사르는 기차가 되어 달린다. 그러나 무작정 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디로 달려가는 것일까?

  인산인해의 기차여 길은 단 하나이고
  오늘밤 우리가 이렇게 엄청난
  몸과 몸을 섞듯이
  몸을 섞으며 덜컹덜컹 달리듯이
  -「최고의 사랑은」부분

  아름다운 것은 이미 시간이고
  역사이므로, 서정성에도 화살표가 있고
  인간이 있고 물질운동이 있다. 기차는 역사이므로 아름답다.
  -「아름답지 않은 것은」부분

  기차는 현실에서 출발하여 과학적인 미래를 향해 달리는 역사이며 물질운동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차를 운행하는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 그는 단호하게 대답하다.
 
  기차는 민족이다가, 인민이다가, 근로인민이다가
  마침내 노동자 계급으로 달린다
  일관된 길이다.
  -「우리들의 깃발은」부분

  기차는 분산지로 가는 것이 아니다.
  집결지로 가는 것이다 문명의
  -「집결지로」부분

  기차가 가는 길은 「법칙과 자유의」길이며 「화살표」가 가리키는 길이다. 그리고 기차를 집결지로 인도하는 것은 「기관차」이며 바로 우리들의 「두뇌」이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들의 「두뇌」와 「심장」은 통일되어 단일한 집결지를 향해 달리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지금은 「두뇌」가 없는 「무뇌아」의 시대라고, 그러면서 그는 간절하게 「무뇌아」의 시대를 극복할 기관차를 찾는다.

  왜 사랑이란 말은 고향 앞에서
  녹슬은 철교인가 무기는
  그리움인가 기관차인가 왜
  질주하는 시대는 아름답지 않은가 마침내
  철교를 이을 기관차는 누구인가
  -「질주하는 시대」부분

  그의 초기시에서 나타났던 관념적이던 사랑과 그리움이 여기서는 분명한 실체를 드러낸다. 사랑은 「고향」에 대한 사랑이고 그리움은 「기관차」를 갈구하는 그리움인 것이다. 이러한 사랑과 그리움은 기차 안에서 통일될 것이라는 과학적인 전망 또한 가지고 있는 김정환. 그는 고향으로 가는 길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고향으로 달려갈수록
  기차는 덜거덕거린다.
  강제로,
  -「질주하는 시대」부분

  그러나 덜거덕거리며 「풀어놓는」「눈물」「보따리」에서 시인은 기차가 현실로 다가왔음을 확인한다.
  무쇠는 집결한다. 사람이 밀집할수록ㆍㆍㆍㆍㆍㆍㆍ
  뒹구는 몸도 얼굴없는 눈물만큼
  편안할 것인가 그러나 무쇠는
  집결한다. 눈물이 밀집할수록
  그리고 무쇠를 만난 눈물은
  더욱 강고하게 조직화된다. 고독은
  철기시대 탓이 아니다. 비정한
  검은 기차가, 서울역으로 입성한다.
  -「무쇠의 고향」부분

  서울역으로 입성한 기차를 보면서 자신은 과학적인 전망을 확신한 김정환은 마침내 기차에 자신의 몸을 싣는다.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는 계속되는 전망을 노래한다. 무척이나 과학적으로 이로써 연작시 『기차에 대하여』는 자체적인 완결구조를 갖게 된다.

  노래하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멸망과 건설에 대하여
  단절이 없는 사랑에 대하여
  노래하리라 푸르름과 생명과
  과학에 대하여
  ㆍㆍㆍㆍㆍ
  전철의 아침이 밝은 것은
  세상을 밝히는 노동자 때문이고
  전철의 밤이 어두운 것은
  아직은 그들이 사명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ㆍㆍㆍㆍㆍ
  노래하라 철기기대의 종말과
  강철과 합류한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노래하라 그날의 
  반찬과 세계평화에 대하여
  그날, 우리들의 출근길과
  사랑에 대하여, 울산에서 마창에서
  서울에서 전철역에서, 가슴에 벅찬 눈동자에 대하여
  -「불멸의 역사」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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