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요리한 음식

  난리통에도 창조는 일어난다

  전쟁 중이라고 해도 인간의 식욕은 사라지지 않는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전쟁터에서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는 군인들에게 음식은 오히려 위안이 된다. 사실 음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 화려한 파티와 평화로운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 많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전쟁 중 음식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행복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난리통에 창조된 음식들이 있다.

  나치 치하에서 탄생한 환타
  코카콜라와 함께 사랑받는 환타는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음료다. 하지만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의 저자 도현신 작가는 “환타의 탄생배경은 사실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있던 코카콜라 지사는 공급되던 모든 콜라 원액이 끊기며 큰 위기에 놓였다. 당시 독일 지사는 미국 본사에서 콜라 원액을 공급받으며 콜라를 만들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원액 공급이 끊기고 콜라 생산도 중단되었다. 이때 가장 초조한 사람은 독일 코카콜라 지사장 막스 카이트였다. 그는 공장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이게 되자 고심 끝에 콜라를 대체할 음료를 개발하게 된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한 결과 만들어진 이 음료가 바로 환타인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게도 환타는 악용이 된다. 도현신 작가는 “환타 개발 후 독일인은 환타의 기막힌 맛에 반한다. 하지만 결국 나치의 선전 도구로 악용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초창기 환타 포장지에는 호랑이들에게 난폭하게 물어뜯기고 학대당하는 유대인들이 그려져 있다. 유대인 탄압을 정당화하려는 일종의 나치 선전 도구로 이용된 것이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유대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환타 마시기를 꺼려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오스만제국을 물리치고 얻은 크루아상
  예술과 낭만의 도시 프랑스의 한 파리지엔느가 카페에서 우아하게 커피와 크루아상을 즐기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크루아상에 대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다. 하지만 크루아상의 원조는 프랑스가 아니다.
  크루아상의 과거를 파헤치려면 16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83년 유럽을 위협하는 대제국이었던 오스만제국은 이슬람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비엔나를 공격했다. 당시 오스만제국 군대는 붉은 바탕에 하얀 초승달이 그려진 군기를 휘날리며 진격했는데, 유럽인들은 이 군기를 보고 공포에 떨었다. 고작 1만 5천여 명으로 15만 대군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던 오스트리아는 굶주림까지 더해지자 항복하려 한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오스트리아를 버리지 않았고, 유럽 각지에서 동맹군이 결성돼 결국 오스만제국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유럽인들에게 비엔나 전쟁은 수백 년 동안 유럽 기독교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오스만제국을 완전히 몰아낸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된다. 도현신 작가는 “이 역사적인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오스만제국 군대의 군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든 빵이 바로 크루아상”이라고 말했다.
  크루아상은 그 후에 오스트리아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됐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왕실과 혼인하며 요리법도 함께 가져감으로써 프랑스에도 널리 퍼지게 된다. 이렇게 전해진 크루아상은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프랑스의 국민 빵이 되고, 전 세계적으로도 꾸준한 사랑을 받게 됐다.

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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