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3세계」의 등장

  제2차 대전 이후 구래의 식민지 나라들은 속속 정치적 독립을 획득했고, 그리하여 「신생독립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독립 직후 신생독립국들은 식민지 시대가 남긴 경제적 유산을 가지고 있었다. 인구의 대부분은 낡은 관계로 특징지워지는 농업부문 속에 잠겨 있었고, 식민지 시대에 형성된, 몇몇 1차산품의 생산으로 특화되어 있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생독립국들의 경우 제국주의에 대한 구래의 경제적 종속은 독립이후에도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일면적이고 낙후한 경제구조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은 비참한 것일 수밖에 없었고, 경제가 이런 식으로 종속 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는 획득된 정치적 독립도 실질적인 것일 수가 없었다.
  따라서 독립 직후 신생독립국들이 당면하게 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발전된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고, 이로써 정치적 정치적 독립을 실질적으로 공고화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가지의 전제조건이 필요했다. 하나는 주민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을 전근대적인 착취로부터 해방시켜 공업이 필요로하는 내수시장의 확대와 식량, 원료, 노동력의 원활한 공급을 가능케 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천연자원 생산부문을 필두로 하는 주요 경제부문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를 일소, 통제하고 이로써 민족 자본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이 두가지의 조건이 마련된 바탕 위에서 특화되어 있는 경제를 다양화하는 과제, 특히 공업화 중공업화의 과제를 해결하는 길을 나아가야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었던 나라들에서는 독립 후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는 반혁명세력이 국가권력을 장학하게 됨으로써, 위의 두가지 전제들의 창출이 매우 미흡했다. 이는 자립적인 산업화에 필요한 만큼의 민족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심하게 제약 당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종속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고, 제국주의의 지원을 받은 반혁명 세력이 국가권력을 담당하고 있고, 거기에다 자립적인 산업화에 필요한 민족적 자본의 본원적 축적은 아직 심하게 제약되고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이 나라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었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도 어쨌든 공업화는 추진되어야 했다.
  공업화 전략을 전개해 가는 과정에서는 공업과 농업의 관계, 생산재 생산부문과 소비재 생산부문의 관계, 공업화와 대외무역, 국내자본과 외국자본과의 관계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생겨났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국가의 지도성과 국가자본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립적 산업화의 조건이 미비했던 상황하에서 이 나라들의 국가권력은 종속자본주의적인 발전의 길을 선택했다. 이리하여 이나라에서는 외자도입, 노동자에 대한 심한 수탈, 소재 보전과 가치 보전, 모두에 있어서의 해외시장(주로 제국주의 시장)에 대한 심한 의존을 특징으로 삼는 산업화의 과정이 추진되었다. 그 과정에서 제국주의 나라에서 주형되어 신생독립국들로 유포되어 갔던 「근대화론」의 이데올로기가 함축하는 바와는 달리, 종속이 가져다주는 각종의 해악들(종속 심화, 선진국과의 격차 심화, 빈부격차 심화, 정치적 민주화의 지체등)이 들어나게 되자, 이 나라들은 제국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들과는 다른 그 무엇인 「제3세」로서 파악하게 되었다. 제3세계라는 범주가 주형되게 된 것이다.

  2. 종속, 그리고 제3세계의 성장과 분화

  초기(대체로 1960년대와 1970년대초)종속이론이 한 중요한 갈래(종속저발전론)속에서는 제3세계가 종속(그것의 중요한 내용은 「경제잉여」의 이전이다)으로 인한 저발전을 특징으로 하는 「주변부」(Periphery)로서 일외적으로 개념화되어 왔다. 또 사용하는 개념들은 달랐지만,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경우에도 오랫동안(적어도 1960년대까지는)제3세계 나라들(발전도상국들)의 특징을 제국주의에 대한 종속(형식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식민주의와 똑같다고 일컬어지는 「신식민주의」적 종속)과 저발전(낮은 생산력과 「다우클라드」사회구성)으로 파악해 오기는 마찬가지였다. 두 이론 모두 제3세계는 자본주의적 사업화에 성공할 수 없고, 선진국과 제3세계간의 격차는 커질 것이라고 보아왔다. 그러나 적어도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이와같은 전통적인 설명들과는 달리, 제3세계 나라들이 자본주의 세계경제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지기 시작했다. 그 증가분의 대부분은 소수의 나라들에서 진행된 사업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제3세계 나라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분화가 진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종속된 가운데서도 상당히 다양한 공업부문들을 발전시키는데 성공을 거둔 일부 나라들은 「신흥 공업국」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나라들은 심지어 일부 소련권 문헌들속에서도 「중진 자본주의 사회」, 또는 「아류 제국주의의 지역적 중심」등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 나라들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 사이에서도 생산력과 경제구조의 발전 정도나 세계체계 내에서의 위치에 있어서 상당한 편차들이 존재한다. 제1세대 신흥공업국들에 이어 제2세대의 신흥공업국들도 발전되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제3세계에 속하는 개별 나라들의 발전 문제를 더이상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일의적으로 다룰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심지어 제3세계 나라들 중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들인 신흥공업국들의 경우에 조차도 비록 산업화에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그 발전의 정도는 선진국들에 비해 여전히 현저히 낮으며 종속 역시 여전히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나라들은 다른 제3세계 나라들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조건들과 선진국 대비해서 현저하게 낮은 생산력 발전수준으로 인한 현저하게 낮은 생산력발전수준으로 인한 현저하게 낮은 노동력 재생산비 (임금)을 무기로 사아 노동집약적 산업들을 담당하면서 산업화를 시작했던 나라들이다. 오늘날 이 나라들은 상당히 다변화된 산업부문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성공」을 거두게 되기까지, 이 나라들은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시장에 크게 의존하면서 선진국들이 주도하는 자본주의적 국제분업의 부단한 재편과정 속에 종속적으로 참여해 왔다. 이 나라들의 자본주의적 제조업부문은 과학기술혁명의 시대를 맞아 더욱 발전되어 가는 자본주의적 국제분업망(오늘날 초국적 기업-신흥공업국-기타 발전도상국으로 위계적으로 조직되는 국제분업이 확산되어 가고있다)속에 그것의 한 유기적 구성부분으로서 깊이 편입되어 갔다. 그리하여 오늘날 이 나라들의 경제구조는 그 재생산의 중요한 계기들에서 제국주의 나라들과의 교류관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데, 이 교류관계는, 포포프(Yuri Popov)가 말하듯이, 『말과 기수사이의 상호의존관계』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산업화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더 낮은 제3세계 나라들의 경우 더 심한 빈곤과 구식민지 시대의 그것에 더욱 가까운 모습을 하고있는 종속으로 인해서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경제뿐만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인 수준에서의 종속도-비록 국제정치무대에서 제3세계 나라들의 발언권이 어느정도 강화되었다고는 하더라도-여전히 심각하다. 이를 감안한다면 제3세계 나라들은 단순히 경제구조의 재생산에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구성체 자체의 재생산에 있어서 제국주의 나라들에 심각하게 종속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3. 세계질서의 재편과 제3세계

  1980년대 중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 나라들의 발전에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질서에 있어서의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들 중에서 특히 중요한 것들로서는 소련을 필두로 하는 현실사회주의 사회들의 모순 심화, 페레스트로이카로 상징되는 사회주의권과 개혁운동과 냉전체제의 퇴조, 「신데땅뜨」를 맞이하여 진행되고 있는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 미국지배하의 평화)체제의 강화 시도 등을 들 수 있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전통적으로 제3세계 나라들의 발전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주의 나라들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사회주의 나라들은 제3세계 나라들에 대해 발전 모델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이 나라들에서의 진보적인 운동들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최초의 사회주의 사회로서의 소련의 탄생에서부터, 2차대전 후의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성립과 1950년대 말의 쿠바 혁명을 거쳐서 적어도 월남전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 주장은, 비록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주장하는 액면 그대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이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게 됨으로 말미암아, 사회주의 사회들의 발전 모델로서의 지위는 현저하게 약화되고 있고, 자체 문제의 해결이 급급하여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주의 사회들의 발전 모델로서의 지위 약화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의 진보적인 운동들을 개방적인 수준의 것으로 묶어두는 효과를 갖는다. 「신데땅뜨」는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에 내포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명시적 포기」로 말미암아, 제국주의가 제3세계를 다툼에 있어서 더 이상 사회주의권으로부터의 강력한 견제를 감안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팍스 아메리카나」는 이후 세계의 진보적인 세력들(세계 사회주의 세력, 자본주의 나라들 내부의 계급투쟁 세력, 제3세계 나라들의 반제민족해방운동세력)의 운동을 막기 위해 미국을 맹주로 해서 생겨난 세계(특히 선진국)부르주아지들의 동맹체제이다. 그것은 경제적으로는 GATT와 IMF를, 정치-군사적으로는 다수의 집단안보체제와 쌍무적인 군사동맹들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데, 이것들은 각기 미국의 세계 최대의 경제력과 세계 최강의 군사력에 의해서 뒷받침되었다.
  제국주의 나라들간의 관계는 경쟁의 측면과 협력의 측면이 모순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관계이다. 세계의 진보적인 운동들을 막는 데에 있어서 제국주의 나라들은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이를 위해 협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가져다 주는 이익들을 나누어 갖는 데에 있어서는 이들은 경쟁을 면할 수 없고, 이 경쟁은 때로 첨예한 대립으로 발전할 수 있다(두 차례의 세계대전).「팍스 아메리카나」는 제국주의 나라들간의 모순을 평화의 틀 속에 묶어두고자 하는 것이기도 했는데, 미국이 이 체제의 맹주가 됨으로써 제3세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미국을 제외한 여타의 선진자본주의 나라들도 주권의 상당부분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팍스 아메리카나」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서의 불균등발전과 냉전체제의 이완이라는 두 가지 사정에 의해서 비롯된다. 자본주의는 불균등발전을 그 속성으로 한다. 「팍스 아메리카」체제 속에서도 제국주의 나라들 사이의 불균등발전은 진전되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내에서의 미국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미국은 몇몇 첨단산업과 군수산업에서만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주요 근간 제조업들에서는 일본과 유럽공동체 나라들(특히 독일)에게 추월 당했고(노동집약형 제조업들에서는 심지어 신흥공업국들에게까지도 추월당했다), 거액의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불균등발전의 진행과 더불어 진행과 냉전체제의 이완과 전세계적인 수준에서의 우경화는 제국주의 나라들의 모순적 관객들 중 협력의 측면보다는 경쟁의 측면을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갖는다. 이는 진보적 세력들에 대한 동맹체로서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정치군사적 측면에서의 존재이유가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런 사정들이 기존의 「팍스 아메리카나」체제에 위기를 가져다 주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블럭화를 추진시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세계최대의 경제력과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은 이 체제의 유지, 강화를 위해서 비상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권의 약화와 평화공존 정책, 제국주의 나라들간의 경쟁의 격화와 경제의 블럭화, 「팍스 아메리카나」체제의 위기와 헤게모니 강화를 위한 미국의 비상한 노력등, 이러한 사정들은 제3세계에 대한 지배를 위한 제국주의 나라들(특히 미국)편에서의 행동들이 전반적으로 더욱 강압적이고 호전적인 것이 되도록 추동할 가능성이 크다. 개방압력, 신흥공업국들의 산업들에 대한 견제, 제3세계 나라들의 보수반동적인 정권들에 대한 지원, 제국주의가 기대되는 만큼의 종속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제3세계 나라들에서의 운동에 대한 탄압 등의 조치들이 더욱 강압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을 가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은 사정은 제3세계 나라들에 대해서 각별한 대응책을 마련한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제3세계 나라들은 개별 나라들의 수준에서는 물론, 전체적 수준에서도 단결하여 제국주의로부터의 이와같은 강압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개별 나라들 수준에서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여 탈종속을 지향하는 산업화를 추진하고, 내부의 민주개혁을 추진하여 민족국가적 통합을 공고화하는 것, 그리고 제3세계 나라들 상호간의 호혜적인 국제분업과 무역을 확대 발전시키고, 제국주의 간섭에 공동대응할 국제정치적 조직들을 마련해 가는 것, 이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제3세계 나라들이 자기 운명의 주체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할 과제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충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