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매리 치유할 방안

 
  1999년 11월 시애틀에서 반WTO(세계무역기구), 반IMF(국제통화기금) 운동이 일어났다. 그 후 나이키와 스타벅스 등의 글로벌 기업에 대한 불매 운동이 일어나며 반세계화 시위가 일어났다. 이는 사라졌던 이데올로기인 아나키즘의 부활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1930년대 이후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라는 딱지를 붙인 채 사라졌던 아나키즘은 그렇게 21세기에 다시 등장했다.

  본래 아나키즘이란 개인을 지배하는 국가권력 및 모든 사회적 권력을 부정하고 절대적 자유가 행해지는 사회를 실현하려는 무정부주의를 뜻했다. 하지만 과거 아나키즘은 대안 없는 허무주의에 가까운 사상이었다. 그간의 아나키스트는 국가와 정부를 파괴하고 무질서를 조장하려는 무정부주의자로 비춰졌다. 하지만 새롭게 부활한 아나키즘은 과거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신여자대학교 윤리교육과 방영준 교수는 “오늘날 아나키즘은 삶의 양식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자연·자율적인 삶을 근간으로 하는 문화와 생활 의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나키즘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라져버린 아나키즘은 1980년대부터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과 함께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최근 아나키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방 교수는 “환경운동, 지역공동체운동, 협동조합운동 등이 아나키즘적 사유의 틀과 연계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나키즘이 다시 부활한 이유에 대해 방 교수는 “고전 아나키즘이 실패한 원인 중 가장 큰 요인은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소홀했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부활한 아나키즘은 성장하고 있는 욕구에 따라 끊임없이 진보하고 재조정 돼 단계적 혁명론이 됐다”고 말했다. 방 교수가 말하는 단계적 혁명론은 공동체운동, 자주관리운동, 생태운동 등을 뜻하며 고전 아나키즘의 장점만 본뜬 사상이 현재에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나키즘의 긍정적인 모습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 번째는 자유공동체운동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부터 아나키즘의 공동체 의식이 실현됐다. 3·1운동을 시작으로 현재는 녹색당이나 청년당까지 확대된 상태다. 방 교수는 “국내에서도 아나키즘의 공동체 의식이 잘 엿보이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잘 실현된 사례는 이스라엘의 ‘키부츠’다. ‘키부츠’는 이스라엘의 소규모 사회주의적 농업공동체 마을로 모든 생활을 공동소유·소비하며 전반적인 평등화를 이룩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생태주의 구현과 환경운동이다. 21세기 아나키스트들은 환경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에코 아나키즘이라 불리기도 한다. 아나키스트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나키즘의 개념에 자연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강제적인 정복과 폭력을 거부하며 자연을 지배하려는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을 고찰하고 있다. 
  세 번째는 아나키즘의 교육론이다. 아나키즘의 교육은 소규모의 토론 집단과 같은 학교가 바람직하다고 보며, 개인 교육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이는 개개인의 차이를 매우 중시함을 보여준다. 아나키스트들은 사회에 내재하는 교육력, 즉 사람들의 자발적인 상호 작용을 존중한다. 그리고 이는 곧 ‘모든 아이들을 의자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 대안학교의 배경이 됐다. 방 교수는 “대안학교는 책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의 활동이나 직접 체험에 의해 교육이 이뤄진다”며 “아나키즘적 교육 이론은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주고 비판력을 길러준다.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의 미래를 가늠하게 하는 하나의 나침판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아나키즘은 더 이상 실패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미래를 치유할 방안이 됐다. 삶의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방 교수는 “아나키즘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지하에서 흐르다가 다시 지표면으로 물을 뿜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윤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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