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자계급의 사랑과 투쟁전개

  실천하는 대자적 사랑만이 질척한 관념이겨

  자본주의 사회가 양산해 낸 사랑의 실체는 늘 공허한 관념의 유희적 타령조에서 시작, 상품의 생산과 소비처럼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를 확대화하여 마침내는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한 남녀는 관계를 대개는 한쪽은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또 다른 한쪽은 복종과 순종의 굴레에 몰아놓음으로서 맺음질한다.
  인간의 애정관계가 상품화되고 방종적이고 말초적인 유희의 편란이 난무, 생산적 사람의 구체화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가들의 달콤한 사탕발림속에 포장된 「사랑」이라는 관념의 폭력앞에 고스란히 노출된 이 시대, 노동자가 성취해야할 「투쟁적사랑의 구체성」은 어디에서 획득될 수 있을까.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박노해시인의 시(이불을 꿰매며)속에서 일찌기 노동자의 일상생활중에서도 자본주의적 지배관계가 극복되지 못한 채 양산되고 있음을 갈파한 적이 있었다. 평등하고 상호대등한 부부의 사랑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의 한 세포로서 지배-피지배적인 관계로 가정생활이 유지되고 있음을.
  그런 의미에서 볼때 엄우흠이라는 학생출신작가의 손으로 건져 올려진 「감색운동화 한켤레」는 이 시대 진정한 노동자적 사랑의 본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밝히는데 신선한 감성이 되고도 남음직하다.
  이 책은 제1부 「뒷산 솔수평너머 고샅으로」에서 제2부 「감색운동화 한 켤레」로 3부 「오늘 별이 뜨지 않아도」로 나뉘어져 있다. 이러한 구성은 소설적 완성도를 염두에 둔 탓인지 주인공 배종만과 전혜심이 신혼여행지로 들른 모란공원 전태일열사 묘앞에서 시작하여 그뒤 1년이 지난 12월 한겨울 같은 자리에서 마감짓는다.
  식민의 땅, 백정에서 소작인으로 낱품을 파는 아버지를 둔 전형적 농촌출신의 전혜심과 다소 희화적일 수도 있는 소위 딴따라출신의 아버지를 둔 배종만. 그들은 억압과 수탈의 구조적 모순의 폐해를 한치도 비껴설 수 없이 살아온 이땅민초의 아들 딸들이다.
  이 두사람이 자신의 삶의 뿌리를 등지고 서울로 떠날수 밖에 없게한 요인도 역시 세계경제체제속에 강제로 포함돼 두 이데올로기의 실험물로서 산업경제체제속의 해체되어가는 농촌사회의 붕괴를 함께 하는 전형적 민중의 삶이 강제지워진 아버지세대의 현실에서 유발한다. 배고픔과 배우지 못하는 설움에 대한 본능적 분노의 응어리를 안으로만 삭히던 배종만, 전혜심이 자신의 계급적 자각의 기초를 이룬 것도 결국 역사적 고통의 현장을 살다가 죽어간 아버지로부터 체득하고 이해함으로써 출발한다. 이렇듯 한 마을에서 외로움과 고통의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우애적 관계로 다져진 이들의 유년시절너머로 흐른 성장기의 끈은 후에 노동자적 삶으로 자각된 노동계급의 동지적 애정결합으로 이어진다.
  물론 각기 계급적 상향을 꿈꾼채 한 사람은 서울 유명백화점의 엘리베이터걸로, 또 한사람은 밤무대에서 퇴폐적 양키문화를 재연하는 무명 키타리스트로써 허위의식의 꿈에 대해 아슬아슬하게 살아갔던 시기를 극복한 이후 가능했던 결합이었다. 즉자적 삶의 가시적환상이 깨어지기까지는 배종만에게는 그의 예술적 파산(?)을 안겨준 선진노동운동가 서재완이, 전해심에게는 성의 상품화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던 현실이 있었다.
  그러나 실천하는 노동자, 해방의 세계를 여는 노동자로서의 결합은 그들이 꿈꾸던 아니 배종만이 요구하는 소유적 사랑관계로는 유지되지 않음을 우리의 젊은 작가 엄우홍은 이 소설의 또다른 핵심구조론인 노동운동의 지난한 현실적 조건과 상황을 통해 보여준다.
  신혼의 단꿈마저도 허락치않는 우리나라 중공업단지의 노동운동의 척박함은 이기적인 소유형태의 가부장적 가정의 형태를 잔존시키려는 배종만의 방황과 철저한 노동계급의 실천인자로서 위장폐업의 수단으로 한국노동자들을 이중착취하는 외자기업앞에 당당히 맞서는 그의 아내 전혜심을 통해 여지없이 폭발하고 또 한 매듭으로써 성장한다.
  노동자가 실천해야 할 사랑은 개인적 양심의 테두리도 본능적 감성의 세계도,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논리적 사랑도 아닐 것이다. 배종만이 지닌 개인적 영역에 국한된 관념적 사랑의 한계와 감정의 거푸집만 푸석푸석하게 날리는 그래서 구체성과 끈끈한 애정의 기쁨이 없는 전혜심의 또다른 막힌 사랑의 구조는 어떻게 전망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엄우흠의 작가적 전망의 보여주기와 인물의 형상화는 현재 우리 노동운동이 처한 질곡의 토대에서 기초한다. 경제주의와 조합주의 그리고 문화운동과 정치운동과의 분리주의, 비폭력투쟁, 과학적 사상으로서의 확고한 대오를 마련치 못하는 노동운동의 당면한 과제풀기와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노동운동가의 삶과 투쟁력은 막연한 사랑의 관념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실천하는 대자적 사랑만이 이 땅에 유포된 질척한 관념의 애정행위를 이겨낼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올바른 사랑풀기는 작가가 교조적이거나 교과서적인 사랑의 형태가 아닌 진솔한 노동자의 삶과 투쟁속에서 그 출발의 실타래를 쥐었기에 건강한 노동계급의 사상과 전망을 엄우흠 특유의 정서로 엮어낼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후기에서 밝힌 것처럼 「노동에 대한 지나친 신성화」를 피한다하며 노동자의 삶을 말초적으로 혹은 흥미유발적인 삽화넣기를 그리고 있지는 않는지 아직 엄우흠이라는 작가의 이름 이전에 우리의 민족문학계에 성실히 물어볼 일이다. 전형성이 교조주의로 탄련적 문학성이 방만한 사상과 산만한 주제의식으로 넘어가 버려서는 안되기에 말이다. 노래와 노동자의 넉넉한 낙관주의야말로 작가와 이 소설을 기계적으로 이끌어나가고 있지않는 즉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이 진실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는 듯하다.
  혁명의 견고한 실천자로 나선 배종만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 「오늘 별이 뜨지 않아도」를 함께 불러보자. 강고한 사회운동가로 적의 손에 의해 숨져간 서재완이 남기고 간 새벽의 노래를.
  더러운 허영이여/에걸튼 희망이여/오늘밤도 더운 눈물로/잠 못 이뤄하는 건/ 다름아니라/ 사랑하기 전에 사랑받아 함이니/ 지금 겨울비 내리고 오늘 별이 뜨지 않아도/ 아침을 기다리지 말자/ 타성의 아침을 맞지말자/ 망각의 꽃 향기에 취하지 말자/ㆍㆍㆍㆍ.

  김경양<영문ㆍ88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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